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보스톤코리아  2013-07-22, 13:44:14 
오리는 빨리 자란다. 아마 한두달이면 중년과 청년을 구별할 수 없을 게다. 날이면 날마다 새끼들이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거다. 내 일터는 폭좁은 시냇물을 끼고 있고, 시냇가 오리떼들을 매일 보기에 그걸 안다. 오리떼들이 제집 앞마당인양, 주차장에서 노닐기 때문이다. 지난 늦은 봄에 두 오리가정에서 새식구를 보았다. 어미아비 오리들이 각각 대여섯마리 새끼를 거느리고 유유히 잔디밭이며 시냇가를 두루 헤집고 다녔다. 새끼들이야 천방지축이다만, 아비오리는 항상 경계태세인 걸 본다. 몇주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 새끼들이 틴에이저쯔음 되는가 한다. 하지만 아직도 어른은 아닐 것이니, 어미아비와 같이 다닌다. 틴에이저 오리는 여전히  아비와 어미에게서 배울 것이 남은 듯 싶다. 

어머니는 연민이라 했다. 아버지는 다른 듯한데, 누구는 태산이라 했고 혹자는 넘어야 할 벽이라 했다. 요사이는 돈벌어 오는 기계라고도 말한단다. 아니면 투명인간이라 했던가. 집안에 있으나 없으나 흔적을 볼 수 없다 했으니 말이다. 바람처럼 집으로 출근(?)  했다가 구름 타고 일터로 퇴근(?) 하는 모양새라 해야겠다. 아버지가 없기는 없는 모양이다. 아비가 가정에서 죽지는 않았는데,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집으로 출근하면 아버지가 된다 했으니 말이다. 

아비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표어인데, 말을 바꾼다.  ‘아비가 보여야 가정이 산다.’
‘이건 아버지가 하는  일인데.’ 집안에 사소한 일을 마지 못해 해야 하는 탓에 자주 입에 올리는 불평 할때 마다 ‘네가 아버지이고 가장이다.’ 아내가 일갈하는 말을 감히 한 귀로도 흘리지 않는다. 아비인 내가 툴툴거릴 때마다 아내가 꺼내드는 옐로카드이고 질책성 바가지이기 때문이다. 남들과 다르지 않아 나도 아버지가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전기 코드 연결하는 일. 문고리 고장난것 고치는 일, 두꺼비집 퓨즈 가는 일. 모두 아버지가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흔치 않게 돕겠다 나서면 손사래를 치셨다. 당신의 기막힌 손재주를 물려 주시지는 않았다는 걸 아셨나 한다. 헌데, 이런 일을 내가 해야만 하는 세월이 제법 흘렀다. 집 마당 잔디깎는 일, 쓰레기통 내 놓는일, 그나마 내가 어렵게 하는 일이다. 그래 그래 이건 모두 아비인 내가 해야하는 내 일이다. 집에 있으면 나는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버지다. 

바쁜 사람들도/굳센 사람들도/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
(김현승, 아버지 마음)

아직 유학생일 적이다. 경제적 문제로 고민하던 유학생 하나가 말했다. ‘아버지가 주신다 했다’. 간증이 터져 나오나 했다. 기도하고 있었고 응답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한국에 계신 아버지다.’ 대답에 듣던 모두가 뒤로 넘어졌다. 은혜충만이라 해야 한다. 아버지는 은혜이며 화수분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을 적에, 아버지만 걱정하고 도와주신다. 
내 아버지에게는 엷은 담배냄새가 났다. 그건 구수한 냄새였고, 나뭇가지 아궁이 재 냄새와 크게 다르지 않아 매캐하지 않았다.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디모데전서 5:23)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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