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100배 더 즐기기 35
보스톤코리아  2013-07-22, 11:29:13 
좌: 고흐가 지냈던 정신병원의 실제 모습, 우: 아를 병원의 정원 (Garden of the Hospital in Arles), 1889
좌: 고흐가 지냈던 정신병원의 실제 모습, 우: 아를 병원의 정원 (Garden of the Hospital in Arles), 1889
아를에서의 2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고흐는 작품의 표현력에 정점을 찍고 작가로서 독특한 정체성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의 짧았던 삶은 말년으로 성큼 성큼 다가가고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이 가족과 떨어져 사는 생활은 정신적으로 나약했던 고흐에게는 힘겨운 삶이었다. 아를의 따뜻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고흐의 몸과 정신상태는 점점 악화되어갔고 그곳에서의 안정된 생활도 차차 흔들리기 시작한다. 또한 아를 지방 사투리를 쓰지 않아 단번에 이방인으로 보이는 자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외로워했다. “커피와 식사를 주문하는 때만 빼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가기 일쑤였다.” 고흐는 당시 심정을 테오에게 이렇게 전했다. 

이처럼 사람들과 쉽게 섞이지 못하고 외로워했던 고흐에게 고갱의 방문을 알리는 편지는 그의 삶에 다시금 활력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고갱과 함께 작업하며 깊은 우정을 쌓고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어 갈 생각에 부풀어 올랐다. 고흐는 마치 신혼 집을 꾸리는 신부처럼 분주하게 고갱의 방에 필요한 가구를 장만하고 직접 그린 해바라기 꽃으로 벽 장식을 하며 고갱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1888년 10월. 마침내 고갱이 ‘노란집’으로 찾아왔다. 둘은 함께 박물관을 찾거나 야외 스케치를 가기도 하였고, 고갱의 조언으로 고흐는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을 기반으로 하는 작업에서 벗어나 상상이나 기억에 기반한 그림을 몇 점 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내 그 둘은 종종 그림에 대한 의견차이로 말다툼을 하였고 고흐의 불 같은 성격과 고갱의 높은 자존심과 우월의식은 논쟁들에 기름칠을 하기 일쑤였다. 고흐는 고갱이 자신을 동등한 위치의 예술가로서 대접하길 원했지만 고갱은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자신의 그림이 더 우월한 그림이라 굳게 믿었고 보이는 것을 기반으로 그린 고흐의 그림을 낮게 보았다. 

1888년 12월23일 오후, 그 동안 쌓여왔던 작가로써의 자괴감과 고갱과의 다툼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정신병이 발작한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다. 그리고 그는 아를의 사창가에 있는 매춘부에게 신문지에 싸놓은 자신의 왼쪽 귀 조각을 건냈다. 고흐의 정신병적 증세를 목격한 고갱은 이내 노란집에 남겨진 자신의 짐과 그림들을 채 다 싸지도 않고 파리로 떠나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아를의 주민들은 그를 “미친 네덜란드 사내”라고 부르며 마을을 떠나라고 강요했다. 고흐는 결국 자진해서 아를의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고흐는 정신 병원에서 지낸 시간 동안 ‘아를 병원의 정원’(1888)을 그렸는데 그 당시 병원 건물이 같은 장소에 그림 속 모습 그대로 보존 되어있다. 건물 입구에 서면  ‘에스파스 반 고흐’ (Espace Van Gogh) 즉 ‘고흐의 공간’이라는 작은 표지판이 보인다. 이 건물의 새 이름이다.

에스파스 반 고흐는 오늘날 지역의 문화센터로 개조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과거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이 줄 것이라 예상했던 삭막하고 무거운 공기는 전혀 없고 노랗게 칠해진 기둥과 정원에 화사하게 핀 꽃들로 가볍고 정겨운 분위기였다. 정원 주변으로는 문화센터를 찾은 청소년들이 정원에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을 유심히 살펴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 건물의 그늘진 한 켠에 화구와 이젤을 들고 외롭게 그림 그릴 장소를 찾아 주변을 서성이는 고흐를 상상해본다. 낡은 코트를 입은 그는 땅 어딘가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고 굳게 다문 입으로 그 누구에게도 먼저 인사를 건넬 것 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고흐는 한 달간 입원 후에 퇴원하게 되지만 끊임없이 찾아오는 환영과 정신착란증세로 지속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그를 깊이 이해해주던 유일한 친구 우체부 조셉도 마르세유로 전근을 떠나게 되는데 이로써 아를은 처음 고흐가 희망을 품고 찾아 온 따뜻한 빛의 마을이 아닌 시리도록 차갑고 몸서리치도록 외로운 마을이 되었다. 그는 점점 더 고립되어 갔고 계속되는 병원 치료에도 증세는 악화되었다. 1889년 5월8일 고흐는 아를에서 30km정도 떨어진 셍레미의 한 정신병원에 1년간 입원을 하고 오베르 쉬르 오와즈 (Auvers Sur Oise)라는 작은 마을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문화/예술 컬럼니스트 장동희
Museum of Fine Arts, Boston 강사
보스톤 아트 스튜디오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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