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100배 더 즐기기 34 |
보스톤코리아 2013-07-15, 11:27:57 |
‘무엇을 그릴까?’ 그림을 진지하게 그리기 시작한 예술가라면 피할 수 없는 창작의 고통은 보통 ‘무엇을 그릴까’에서 시작될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고흐는 무척 단순한 대답을 들려준다. 그림으로 남길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때론 아주 가까운 곳에, 일상에,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에 있다는 것. 그는 아를에서 지낸 2년 동안 공원에 나무들, 밀밭, 농장, 과수원의 풍경, 농부의 모습, 해바라기 꽃, 그리고 허물없이 지냈던 친구 우체부 조셉과 그의 가족들의 그림 등을 200여점에 걸쳐 화폭에 담았고 이들 작품 중 많은 그림들이 예술사에 길이 남을 풍경과 인물이 되었다. 흔하디 흔한 나무들과 꽃, 그 누구도 특별히 돌아보지 않을 평범한 외모의 우체부는 고흐의 그림 속에서 특별한 아우라를 풍기며 우리의 시선을 잡아 끈다. 아를 시내에서 동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떨어진 한적한 교외지역으로 나가면 배가 지나갈 때 다리를 들어올려 뱃길을 여는 작은 목조 개폐교를 만날 수 있다. 이 다리 주변으로 폭이 좁게 축대를 쌓아 작은 배가 지나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이름 모를 수풀과 나무들 속에 숨어있어 일부러 찾아가지 않으면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이 평범한 다리를 주제로 고흐는 4점의 유화, 1점의 수채화, 4 점의 드로잉 작품을 남겼다. 한 곳에서 이처럼 많은 작품을 남긴 것에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란 고흐가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폐교를 보고 향수를 느껴서일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랗고 단순하게 칠해진 하늘색, 노란색 땅과 다리에서 고흐가 그토록 사랑했던 따듯한 빛과 대지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우체부 조셉 룰랭(Joseph Roulin)의 초상화에서도 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예술적 영감을 찾았던 고흐를 만날 수 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몸집, 주름진 얼굴과 덥수룩하게 얼굴의 절반을 다 가린 수염의 중년 남자.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로 이어지는 김춘수 시인의 ‘꽃’ 에서처럼 지극히 평범했던 조셉은 고흐와 만나고 고흐가 그의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꽃이 되었다. 이방인이었던 고흐는 아를에서 불 같은 성격과 소극적인 기질로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해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소수의 친구들 몇 명과 가깝게 교류하는 생활을 유지했는데 그 몇 안되던 친구들 중 한 명이 조셉이었다. 고흐는 저녁에 카페에 가면 어김없이 압셍트에 얼큰하게 취한 조셉을 만날 수 있었는데 얼마 후 그 둘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허물없이 지내는 술친구가 되었다. 조셉은 고흐가 아를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와 정신쇠약으로 요양원에 갔었던 힘든 시기에 고흐의 곁을 지켜준 친구였다. 동생 테오에게 보낸 고흐의 편지에 ‘룰랭 씨는 아버지뻘이라고 할 정도로 그렇게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나를 대할 때 젊은 병사를 대하는 노병처럼 조용하면서도 위엄이 있고 다정하단다’라고 언급하였는데 그 속에서 조셉을 향한 고흐의 깊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고흐는 총 6점의 조셉 초상화를 남겼고, 그의 아내와 세 명의 아이들의 초상화도 각 각 한 점 이상씩 그렸다. 룰랭 가족의 초상화를 여러 점 그린 이유는 경제적 사정상 모델을 구하기 힘든 점도 있었지만 모델을 서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가족 각각에 그들의 초상화를 한 점씩 선물하였기 때문이다. 고흐가 그려준 초상화로 장식이 되었을 조셉의 거실과 침실을 상상하면 웃음이 난다. 어쩌면 고흐의 그림은 화려한 박물관보다 소박한 집의 벽면이 더 잘 어울릴지 모르겠다. 오늘날 더 이상 룰랭 가족들의 초상화가 걸려져 있는 집은 남아있지 않지만, 보스톤에 거주하고 있다면 조셉과 그의 부인의 초상화를 가까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다. 보스톤 박물관은 (Museum of Fine Arts, Boston) 고흐의 드로잉과 유화작품을 여러 점 소장하고 있는데, 조셉과 그의 부인의 초상화가 나란히 유럽 인상주의관에 전시되어있다. 문화/예술 컬럼니스트 장동희 Museum of Fine Arts, Boston 강사 보스톤 아트 스튜디오 원장 167 Corey road, suite 205, Boston MA 02135/ph) 857 756 2557 / www.bostonartstudio.com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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