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의 횡포, ‘을’의 반격 |
보스톤코리아 2013-05-13, 11:50:15 |
(보스톤 = 보스톤 코리아) 오현숙 기자 = 최근 '라면상무', '빵회장' 폭행 사건에 이어 남양유업 직원이 대리점에 물품을 강매한 사실까지 뒤늦게 알려지면서 왜곡된 ‘갑을관계’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고 있다. ‘갑’과 ‘을’은 원래 계약관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갑을’은 양자가 합의한 계약내용을 이행하는 대등한 주체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우월한 계약자를 '갑'으로, 그렇지 못한 계약자를 '을'로 표기하는 관행 때문에 지위의 차이나 불평등한 관계를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된다. 최근 잇따르는 비슷한 파문들은 우리 사회에서 ‘갑을관계’의 불평등이 얼마나 심화됐는지 보여주고 있다. ‘갑’의 횡포 지난달 15일 포스코의 한 임원이 항공사 승무원을 폭행한 ‘라면상무’사건이 발생한데 이어 24일에는 제빵업체 회장이 호텔 직원을 때린 일명 ‘빵 회장’사건이 터졌다. 뒤이어 30일에 롯데백화점 매니저가 회사의 매출 압박에 못견뎌 투신자살했고 이번달 4일에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 폭언을 퍼붓는 녹음파일이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왜곡된 갑을관계, 즉 갑들의 횡포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다. 이렇게 드러난 사건들 외에도 갑의 횡포에 피해를 입은 사례는 허다하다. 지난 7일 국회 경제민주화포럼과 민주통합당 이종걸 의원실,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경제위원회, 경제민주화국민운동본부 공동주최로 열린 ‘재벌•대기업 불공정•횡포 피해사례 발표회’에서는 ‘슈퍼갑’ 재벌•대기업의 횡포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중소기업•중소상공인•가맹점•대리점•백화점 관계자들의 억울한 사연들이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경쟁과 효율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분위기 탓에 ‘계약관계’가 ‘권력관계’로 변질됐다고 지적한다. 인터넷•SNS타고 ‘을’ 목소리 커져 갑의 횡포 사례가 잇따라 터져나오자 인터넷 게시판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또다른 을들의 성토장이 됐다. 갑의 횡포에 시달려야 했던 을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 곪을 대로 곪아있던 기형적 갑을관계의 패러다임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갑’과 ‘을’ 사이에서 속앓이 했던 개인적 불만들이 SNS와 인터넷을 통해 공론화되면서 권위적 갑의 행태가 대중적인 비난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라면이 설익었다'는 이유로 승무원에게 폭행을 가했던 ‘라면 상무’ 사건은 당시 상황을 기록한 항공사의 내부 문서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일부 네티즌은 해당 상무의 신상을 낱낱이 공개했고, 결국 기업 측의 공식사과와 상무의 사표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호텔 입구에 차를 못 세우게 했다'는 이유로 직원의 따귀를 때렸던 ‘빵 회장’ 사건은 언론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지만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해당 업체 회장이 폐업 절차를 밟겠다고 밝힌 뒤에도 비판은 봇물을 이뤘다. 본사 직원이 대리점주에게 물건을 강매하며 욕설을 퍼부은 ‘남양유업 사건’ 역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욕설 녹취파일이 공개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결국 남양유업은 검찰 수사라는 칼날을 맞게 됐다.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최근 갑의 횡포와 관련된 잇단 사건으로 갑과 을 사이의 권력관계가 역전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고 진단했다. 인터넷과 SNS 발달은 물론 휴대전화로 녹화와 녹취가 언제든지 가능한 시대가 되면서 을이 억울함을 알리는 방법이 다양해졌다는 설명이다. 기업들도 내부단속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갑으로서의 처신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기업들은 임직원이 유사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도록 내부 단속에 나섰다. LG 계열사는 업무 관련자로부터 경조금품을 받지 못하게 올해 초 윤리규범을 변경했다. 5만원 이하라도 허용하지 않는다. '을'의 처지에 있는 협력업체 임직원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취지다. 포스코는 이달 22일 인천 송도에 있는 그룹연수원에서 정준양 회장이 주재하는 전체 임원 워크숍에서 반성의 뜻을 담아 윤리실천 다짐대회를 열 예정이다. 삼성 계열사는 2011년 4월 '준법 경영'을 선언하고 금품 수수 금지, 공정경쟁, 법규 준수를 원칙으로 내세웠다. 임직원에게 준법 교육을 하고 자체 감시도 강화하고 있다. 여직원의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했던 롯데백화점은 매장 관리자 교육 과정에 '갑을 관계'를 되돌아보도록 하는 강의를 이달부터 도입했다. 판촉사원이나 협력업체 직원을 신중하게 대하고 예의를 지키도록 당부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도 지난 7일 지나친 반말이나 하대를 하지 말자는 내용이 담긴 ‘권위주의 타파 14계명’을 발표했다. 반성 필요, 감정싸움은 경계 전문가들은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갑을 문화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도 군중 심리에 기대 감정싸움으로 비화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이른바 '갑'들의 의식 변화가 중요한 데 이를 위해서는 언론이 공론의 장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갑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공론장에서 의제로 살아있게 된다면 갑의 성찰이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이 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군중심리도 커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경계해야 한다"며 "을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군중의 감정 드러내기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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