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보스톤코리아  2013-03-27, 14:40:25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내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이다. 사랑이란 말을 매우 남사스럽게 생각하던 어머니도 이 말에서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자식인 나를 보며, 푸념삼아 자주 입에 담았다. 사랑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온다. 자식이 부모를 열심히 공경한다 해도, 부모의 자식 사랑을 따라 갈수 없다는 말이다.

자연과학에서 위치에너지란 게 있다. 높이 있는 것이 더 큰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말인데, 나뭇 가지위에 걸터 앉아 있다면 위태롭다 한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자연은 항상 안정한 상태로 되고 싶어하는데, 에너지를 줄이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말이다. 따라서, 계곡물은 산꼭대기에서 계곡 입구로 흐르는 것처럼, 나무에서 내려와야 보는 사람이 덜 불안하다.

물이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바람은 고기압에서 저기압쪽으로 분다. 같은 이치로 사랑도 반드시 밑으로만 전해 지는 모양이다. 하나마나 한 소리를 어렵게 들먹였다.

아이는 더 이상, ‘아빠, 사랑합니다.’ 라고 영어로도 말하지 않는다. 녀석이 머리가 컸나 보다. 대신, 내가 사랑한다 할 적에, ‘미 투’라고만 말한다. 스스로도 매우 간지러운 모양이다. 그래도 미 쓰리 (Me Three) 가 아닌게 다행이다만 사랑은 내리사랑임을 아이가 아는가. 하기는 나도 내 아버지에게 ‘아버지 사랑합니다.’ 라고 고백 한적은 없다. 아마 그랬다면, 내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셨을지도 모른다. ‘혹시 뭘 잘못 먹은 건 아니냐.’ 라고 걱정스레 물었을 것이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사랑이란 말은 유행가 가사에나 나오는 것이고, 텔레비젼 연속극 제목이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야망’ 이다.

춘원의 무정에서 비련(?)의 여주인공 이름이 영채다. 내가 유난히 이 이름을 좋아헀다. 촌스럽지 않은 듯 하고 싱그럽다. 오월 찬물에 세수하는 느낌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영채라는 이름 만큼 내게 정겨운 다른 이름은 신애다. 신애라는 이름은 믿을 신信에 사랑애愛 이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중에 그 중에 믿음과 사랑, 신信과 愛애인거다. 하긴 소망과 사랑의 망애望愛라면 부르기 민망하다. 뜻은 가상하다만 부르기 난감하다는 말이다. 이야기가 다시 샜는데, 믿음과 사랑의 신애가 봄날 민들레 꽃가루마냥 가볍다. 뭐 그렇다고 내 첫사랑의 이름이 영채나 신애 였던 건 아니다. 대신, 내 친구 여동생 이름이 신애였긴 한데, 내 첫 사랑은 아니었다. 아내의 눈총이 매섭다.

예수가 물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럽다. 하지만 대답해야 하는 나는 우물쭈물 하고 자신이 없다.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 라고 말머리만 슬쩍 돌린다. 치사랑은 없을 것이라 둘러 대면서 말이다. 그리고 덧 붙였다. ‘당신의 사랑을 감사합니다.’

= 겨우내내 한국엔 추웠다 했다. 어머니와 장모의 건강을 걱정만 한다. 그나마 봄이 되어 날이 풀려 다행이다. 공경하고 봉양하기를 소망하는데, 말과 마음만 앞선다. 자식된 도리 다 못하고 이렇게 산다.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요한 21:1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객원 컬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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