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트린” |
보스톤코리아 2013-02-11, 15:06:08 |
웹으로 역사속의 오늘을 뒤적거리다보니 1911년2월 6일 미국의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 (Ronald Wilson Reagan)이 출생했다고 적혀있다. 레이건은 1980년 대선에서 당선, 1984년 대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레이건에 이어 1988년 대선에서도 공화당은 부시 (시니어)를 내세워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으니, 1980년대는 레이건이 열어젖힌 공화당의 시대였다.
레이건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추진하면서 정부의 권한과 역할을 확대시켰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정반대편에 서 있다. 선거시기 레이건은 복지와 전쟁했다.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 복지 혜택을 악용해서 호화생활을 누리는 일명 “웰페어 퀸”이 존재한다며 정부 재무 건전성 악화의 주범으로 복지 수혜 계층을 낙인찍었다. 더 나아가 “정부는 해법을 주지 못한다. 정부 자체가- 문제다” 라든가 “정부의 크기를 줄여야 경제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식의 <작은 정부론>을 펼쳤다. 많은 학자들은 레이건의 <작은 정부론>을 신자유주의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슬로건과는 달리 레이건 행정부의 재정 적자가 실제로는 줄어들지 않았다지만, <작은 정부론>은 레이거노믹스, 즉 시장에 대한 정부의 규제 완화, 개입의 축소와 같은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 정책을 공공연히 승인하고 있다. 그런데 언뜻 보면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복지, 복지를 위한 증세, 혹은 기업 규제에 소극적이었던 레이건 시대, 부자들을 위한 감세를 단행하면서도 군비 지출의 규모는 오히려 큰 규모로 늘렸다. 왜였을까? 답은 강대국인 미국 주도의 패권적인 “미국식” 평화를 의미하는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에서 찾아야 한다. 레이건의 팍스 아메리카나는 노골적이게도 군사력을 바탕으로한 평화였다. 레이건 시대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것은 단지 냉전의 연장선상에서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위한 군사비 지출의 증가에 그치지 않는다. 1986년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측이 적성국으로 규정, 무기 수출 금지국으로 지정한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판매했다. 사건이 알려진 후 레이건 행정부가 내놓은 명분은 레바논의 무장 테러 단체에 납치된 미국인 인질들을 구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스캔들은 중동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란에 수출한 무기 밀매 대금이 남미 니카라과에서 1979년 새롭게 세워진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력단체 (혹은 친미적인) <콘트라>에 대한 군수지원 자금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언뜻보기에 별개 사건일 수 있었던 이란-콘트라 스캔들은 “테러범과 협상하지 않는다”는 외교 원칙을 깼고 “반란군에게 군수 지원을 할 수 없다”는 블랜드 법을 위반한 사례로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게다가 미국민들은 국지전이 전면적 개입으로 비화하는 또하나의 베트남 전쟁을 우려했다. 하여간에 레이건은 왜 그랬을까? 사실 이란-콘트라 사건이 맥락 없이 툭 튀어 나온 사건은 아니다. 가령 1985년 2월 6일, 레이건대통령이 그해의 연두교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연설하였다. “자유는 선택받은 소수만의 특권이 아니다; 그것은 모든 하느님의 자식들의 보편적 권리이다. 자유를 배양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미국의 사명이다. 우리는 우리의 민주주의 동맹들을 지원해야한다. 그리고 우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니카라과에 이르기까지 모든 대륙에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소비에트가 지원하는 억압에 맞서 태생적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들의 신뢰를 배반해서는 안된다. 자유의 전사들에 대한 지원은 정당방위 self-defense다.” 적(소비에트)의 적에 대한 군사 지원 프로그램을 “자유의 전사들에 대한 정당방위”로 정당화하고 있는 이 연설의 요체는 훗날 <레이건 독트린>이란 이름으로 이해된다. 실제로 1980년대 초반에서1991년 소련이 붕괴하기까지 미국은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개적으로, 어쨌거나 지속적으로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의 반(反)공산주의 게릴라 투쟁을 지원했다. 이는 소련의 지원과 영향력을 거쳐 세워지는 반미-공산주의 정권을 무력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즉, 미국의 대외정책의 골자가 되는 레이건 독트린은 미국의 냉전 정책 전반이 과거의 컨테인먼트 (Containment, 즉 봉쇄 혹은 견제)에서 보다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롤 백 (Roll Back, 즉 원상회복)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준다. 미국사에는 대통령의 이름을 딴 다양한 독트린들이 등장한다. (최근 비핵화, 다자주의, 인권을 키워드로 내세우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 정책은 오바마 독트린으로 명명한다. 물론 오바마독트린이 시험 문제로 등장할 것 같지는 않다.) 다음에 등장하는 각종 독트린을 꼼꼼히 이해해두면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냉전의 변화가 한눈에 보일 것이다. • 먼로독트린 (Monroe Doctrine, 1823) – 불간섭, 고립주의 •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 1947) – 유럽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한 경제, 군사 원조 • 아이젠하워 독트린 (Eisenhower Doctrine, 1957) – 중동의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한 원조 • 케네디 독트린(Kennedy Doctrine) – 남미의 반미, 공산화를 저지하기 위한 공산권 봉쇄 정책 • 닉슨독트린(Nixon Doctrine, 1969) – 베트남전의 실패 이후, 고립주의 외교 정책으로의 회기. 직접적인 혹은 과도한 군사적, 정치적 개입의 지양. * 연두교서 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 대통령이 연초 의회를 상대로 국정 보고 및 새해의 정책방향을 설명하는 연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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