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
보스톤코리아 2013-01-28, 15:17:48 |
현재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손자 부시”인 George Prescott Bush (41대 대통령 ‘아버지’ 부시의 손자이자 43대 대통령인 ‘아들’ 부시의 조카)가 2014년 텍사스의 토지 집행 위원장 (Land Commissioner) 선출을 위한 선거에 도전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텍사스에서 토지 집행위원이 어떠한 권력을 가지는 지는 솔직히 감이 잘 오지 않지만, 그는 그 자리를 미래의 정계 진출에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고 한다.
조지 P. 부시의 출마는 여러 모로 화제다. 일단 그 집안에 대한 이야기는 큰아버지 – 할아버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2000년 대선 당시, 득표수에서 승리한 고어가 선거인단 수에서 고배를 마시게 되는 성패는 플로리다에서 537표 차이로 갈렸는데, 뒷말이 무성히도 많았더랬다. 그 말 많았던 2000년 대선 당시 플로리다의 주지사가 잽 부시, 즉 지금 주목 받는 조지 P 부시의 아버지이자 43대 대통령 조지 부시의 동생이었다. 조지 P. 부시가 출마 의사를 밝힌 지 불과 두어달 만에 그의 집안 식구들을 비롯한 빵빵한 정계 인맥은 그에게 무려 130만 달러라는 선거 자금을 모아 주었다. 그 어마 어마한 정계 인맥에 더 해, 조지 P. 부시에게는 남들이 가지기 힘든 정치적 자산이 있는데, 바로 멕시코 출신인 “어머니.” 물론 텍사스는 이미 공화당의 텃밭이긴 하지만, 그의 “절반의 라틴계”라는 혈통은 증가하는 라틴계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에 이상적인 조건일 수 밖에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836년, 텍사스가 미국에 합병을 신청하다 텍사스가 미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약 1820년대다. 멕시코 정부는 정착 인구가 희박했던 멕시코 북쪽 지역 텍사스에 미국으로부터의 이주를 적극 권장했다.이에 1822년 미조리의 스티븐 오스틴이 텍사스로 이주한 이래, 텍사스로의 이민이 줄을 이었다. 이주를 결심한 미국 백인들로서도 면화 재배에 적합한 텍사스 땅은 탐나는 곳이었던 탓이다. 그런데 182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멕시코 정부가 내린 점진적 노예제 폐지 결정이 미국 남부 출신의 이주자들을 자극하게 된다. 이들의 주된 이주 이유는 면화 플랜테이션이었기때문이다. 여기에 종교 갈등 등이 겹치면서 텍사스에 정착한 미국계 이민자들은 멕시코 정부에 반발했다. 1835년 당시 텍사스에 정착한 미국인은 이미 멕시코계 인구의 두 배를 넘는 수였다. 결국 1836년 텍사스는 멕시코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이때 생긴 군사적 소요를 독립 텍사스의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 샘 휴스턴 장군이다. 휴스턴은 곧장 미국 정부에 합병 신청을 냈다. 그러나 당시 대통령이었던 앤드류 잭슨은 그리고 휘그당의 헨리 클레이 등은 텍사스 합병안에 반대한다. 노예제를 인정하는 영토를 추가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재개될 노예주-자유 주 간의 지역적 갈등을 우려했던 탓이었다. 이후 1844년까지 텍사스는 Lone Star Republic이라는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 1844년 선거, 텍사스를 다시 호출하다 그렇게 묻어두었던 텍사스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된 것은 1844년 선거 때문이었다. 휘그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헨리 클레이는 남북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밖에 없는 영토 확장 대신 부강한 미국 (American System)을 위한 주로 관세나 산업 발전 중심의 공약을 내놓았다. 반면, 민주당의 제임스 포크 대통령은54°40' or Fight이라는 슬로건으로 오레곤 (현재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몬태나, 워싱턴, 오레곤 등)을 획득하는 문제와 함께 Texas는 혼자가 아니라는 즉, 텍사스 합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캠페인을 펼친다. 1844년 대선 결과는 영토 확장론에 기댄 포크 대통령의 승리였다. 그리고 1845년 2월, 포크 대통령이 취임하기 나흘 전, 의회가 텍사스 합병안을 통과시킴으로서 텍사스는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미국 의 텍사스 합병안이 통과되자 멕시코 정부는 미국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해버렸다. 텍사스, 멕시코 전쟁의 불씨가 되다 멕시코와 미국 간에는 또다른 분쟁의 씨앗이 남아있었다. 미국이 텍사스를 합병하면서 자국의 영토를 리오 그란데 강까지라고 주장한 데 반해, 멕시코 정부는 텍사스 (즉, 미국)와 멕시코의 경계가 누에세스 강 북쪽까지라고 주장했던 것. 포크 대통령은 만약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훗날 대통령이 되는 재커리 테일러를 텍사스로 보냈다. 물론 이즈음 포크 대통령은 텍사스 뿐만 아니라 현재의 뉴멕시코라든가, 유타, 캘리포니아 지역 등 멕시코의 다른 영토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멕시코가 파견나간 미국 군대를 건드렸다”는, 하지만 다소 석연찮은 이유로 멕시코와의 전쟁 (1846~1848)이 시작되었고, 1848년 누구나 예상하다시피 미국의 압승으로 전쟁은 끝났다. 관달루페 이달고 조약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영토 구입도 진행 되었다. 그리고 오늘… 부시 집안의 원래 백그라운드는 예일 대학이 위치한 뉴 헤이븐이지만 부시 집안의 정치적, 경제적 발판은 텍사스였던듯 싶다. 그 옛날 ‘오스틴’과 ‘휴스턴’이 그러했던 듯. 텍사스의 라틴계 특히 멕시코계 유권자들은 조지 P 부시를 바라보며 “우리가 남이가”라고 생각을 할까, 아니면 오래전 역사를 한번 쯤 떠올려볼까, 솔직히 궁금해졌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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