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진단 만들기의 수고스러움
보스톤코리아  2013-01-21, 14:38:44 
지난 연말 한해 동안 아껴주시고 사랑과 성원을 보내주신 가족과 지인분들께 무슨 선물을 하면 좋을까 고심하다가 공진단(供辰丹)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한국에서는 공진단이 대중적 인지도가 높아서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고 장복하지만 미국에서는 구하기도 어렵고 고가의 한약환이라 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수요가 적다 보니 한의원에서 만들어볼까 하다가도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마침 가까운 친지로부터 오래 전에 히말라야 고산에 갔다가 구입한 사향노루의 사향이 있으니 공진단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만드는 김에 약재 준비도 어려우니 좀 많이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친지분은 중학생 아이가 자주 아파서 학기 중에도 몇 번씩 입원을 하는데 공진단을 꾸준히 먹였더니 체력이 많이 좋아져 성적도 올랐다고 합니다.

공진단이 이렇게 특별한 처방일까 생각을 해봅니다. 동의보감에 보면 공진단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훌륭한 처방이 많은데 유독 공진단이 대중적 유명세를 누리는 것이 대중 광고 매체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먹어보지 않았으니 일단은 만들어서 먹어보고 판단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공진단은 보기만해도 그 모양새가 무척 화려합니다. 5g 정도의 둥근 원모양의 환으로 금박을 입혀 각각의 통에 담겨 멋진 목각 상자에 열 개씩 들어갑니다.

금색의 통에 든 환약을 하루에 한알씩 천천히 씹어 먹는 것입니다. 우선 먹는 법은 매우 간편한 것 같습니다.
드디어 한국에서 사향이 도착했고 재료들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의보감에 나온 대로 그대로 재현해서 만들자 계획하고 녹용 당귀 산수유를 정량으로 준비했습니다. 동의보감에 녹용 당귀 산수유는 모두 160g으로 하고 사향은20g으로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녹용은 연유에 3-4시간 재어서 연유가 잘 스며들게 한 후에 프라이팬에 구우면서 법제를 했습니다. 연유에 재는 이유는 좀 더 영양 성분이 풍요로워져서 신기(腎氣)가 허한 증상을 잘 다스리게 한다 했습니다.

단순한 작업 같았는데 막상 얇게 썬 녹용을 한 장 한 장 불에 구우려니 팬을 2개 놓고서 해도 서서 꼬박 2시간이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오래 서 있으니 다리는 아팠지만 불에 잘 구워져 갈색이 도는 녹용을 바라보고 있으니 뿌듯한 마음이 듭니다.

동의보감에 나온 공진단(供辰丹)에 관한 설명을 그대로 옮겨보면 ‘남자가 장년시기에 진기(眞氣) 가 약한 것은 타고난 것이다. 음혈을 보한다고 하는 처방들은 약재는 많으나 약효가 매우 약하여 효력을 보기 어렵다. 다만 타고난 원기를 든든히 하여 신수와 심화가 잘 오르내리게 되면 오장이 스스로 조화되고 온갖 병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런 때에는 이 처방을 쓴다’고 하였습니다. 공진단이 기를 보하는 약이면서 동시에 음혈을 보하는 약이니 기본 원기를 끌어올리면서 음혈도 함께 보하여 남녀노소 모두에게 좋은 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귀 산수유는 술에 담궜다가 꺼내 5일 정도 반음반양으로 햇빛에 말리는 주세(酒洗)법제를 합니다. 약재로 쓰는 산수유는 거핵(씨를 없앰)한 것을 씁니다. 산수유 씨는 오히려 누정을 하게 하므로 햇볕에 말릴 때 씨가 들어가지 않도록 잘 골라내야 합니다.

사향노루의 배꼽은 사실 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약재입니다. 우황청심환처럼 정신을 깨어나게 하는 처방에 들어가는데 사향노루 자체가 사라져 가는 동물이라서 희귀약재라 할 수 있습니다. 진품 사향을 구하기 어려워 침향이나 목향을 많이 사용합니다. 사향은 토치불로 털을 그을려 사포로 문질러 잘 닦아낸 후에 곱게 갈아놓습니다. 분쇄기로 잘 갈아놓은 네 가지 약재를 술을 넣고 쑨 밀가루 풀로 잘 반죽하여 환약을 만듭니다.

저울에 일일이 재가며 정확한 용량의 환재를 약 백환 정도 만들다 보니 무게를 재지 않아도 정확히 5g이 됩니다. 환재를 만들다보니 오후에 시작한 일이 벌써 새벽 3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조심스럽게 한장 한장 금박을 입힙니다. 환약용 금박은 순금으로 굉장히 얇아서 다루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숨 한번 잘 못 쉬어도 획 날아가 버리기 일쑤입니다. 작은 금박 한장에 일불이라 정말 조심해서 작업을 하게 됩니다.

드디어 긴긴 수작업이 끝나고 그 맛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공이 많이 들어간 약이라 정말 입에 넣기 아까울 정도였습니다. 약이라 조금 쓰긴 하지만 그래도 씹는 감촉이 부드럽고 입안에서 녹는 질감이 좋습니다. 그리고 약 보름간 매일 한 알씩 먹었습니다. 처음 며칠은 별 다른 점을 못느꼈습니다. 한 보름을 먹으니 뭔가 기운이 다르고 오래 일해도 덜 지치는 것 같습니다. 역시 녹용 사향이 들어간 약이라 다르긴 다르구나 생각됩니다. 가격이 부담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공진단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연로하신 부모님께 정기적으로 만들어드려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한의원 선유당 원장 이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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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칼럼닌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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