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 희망의 아이콘에게서 삭제된 68년 |
보스톤코리아 2013-01-07, 14:19:04 |
1789년 1월 7일, 미국에서는 새로 만든 헌법에 따라 첫 번째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조지 워싱턴은 선거인단 electoral college 만장 일치로 제 1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아직까지 “대통령제”는 한 번도 실험되었던 적이 없었기에 워싱턴이 재임 후 스스로 물러나는 전례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민주주의는 왕정 비스무레 한 것으로 발전했을 지도 모르겠다.
지난12월 19일, 개인적으로는 생애 두 번째로 참여할 수 있었던 대한민국 대선이 치러졌다. 사실 내가 지지하는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게다가 내가 뽑았지만 낙선한 후보에 대해 선거기간 내내 남들처럼 열정적 지지를 보내줬던 것도 아닌데, 이번에는 결과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주 내내 약한 우울증에 빠져버린것 아닐까 싶기도 했다. 직업상 연말이 무척 바빴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어제 뉴스를 넘겨보다가 문재인 후보가 지인이 보내주었다며 남겨놓은 글귀에서 눈길이 멈췄다. “하나의 행복의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그러나 가끔 우리는 그 닫힌 문만 너무 오래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삼중 장애인 헬렌 켈러 (1880~1968)가 남긴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가 덧붙인 헬렌 켈러의 또 다른 명언, “비관주의자들은 별의 비밀을 발견해낸 적도 없고, 지도에 없는 땅을 향해 항해한 적도 없으며, 영혼을 위한 새로운 천국을 열어준 적도 없다.” 내가 최근 읽었던 글귀 중에 가장 마음을 “힐링”하는 글귀들이었다. 어제 나에게 그랬듯, 어린 시절 전기 속의 헬렌 켈러 역시 희망의 아이콘으로 학습된 채로 남아 있다. 헬렌 켈러라는 명사는 “불가능은 없다”는 문장과 동의어였다.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 장애를 딛고, 아직 여성들이 투표권조차 행사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시각 청각 장애인 최초로 대학을 졸업했고,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고, 활발하게 대중활동을 했던 사람의 스토리를 감동 없이 존경 없이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설령 헬렌 켈러 전기의 주 독자층인 어린이들이라고 할지라도.어쨌거나 어렴풋이 기억나는 전기 속 헬렌 켈러가 대학을 졸업한 뒤 “장애인 권익 활동을 비롯해 활발한 강연과 저술 활동을 했다”는 부분은 왕자랑 공주랑 키스하고 나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처럼 잽싸게 마무리가 되는 경향이 있다. 헬렌 켈러는 1900년 래드클리프에 입학, 1904년 졸업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 헬렌 켈러가 사망하는 1968년까지의 68년 동안의 생애는 그녀 인생의 전반부 신체적 장애에 대면하고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만큼이나 드라마틱하고 역동적이다. 가령, 1910년대에서 20년대 미국내 많은 여성주의자들의 입장과 헬렌 켈러의 그것은 겹쳐진다. 가령 그녀는 1920년대 마가렛 생어가 이끌었던 산아제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인물이며, 1910년대 참정권 획득 운동에 헌신했던 여성주의자 중의 하나다. 또한 반전평화주의자로서 1차 세계 대전 당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명분에 대해, 미국에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주의조차 해결하지 못하면서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당시 많은 개혁가들처럼 아동노동 철폐 운동에서도 헬렌 켈러는 목소리를 냈다. 아직 헬렌 켈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성주의자, 장애인권 옹호자, 인종차별주의자, 반전주의자를 넘어서, ‘급진적’ 사회주의자로서 반자본주의 및 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활동에 투신함으로써, 대부분의 생애를 FBI 의 감시를 받는 “요주의 인물”로 살았다. 1909년 미국 사회당 (Socialist Party of America)에, 1914년 세계 산업 노동자회 (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IWW)에 가입했던 그녀는 “나는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나”라는 서한을 통해 사회주의자로서 커밍아웃을 했고, 공개적으로 빈곤의 순환고리와 자본주의의 시스템을 비판했다. 그녀가 사회주의자로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1920년대 미국은 2차 대전 후 매카시즘에 비견되는 레드 컴플렉스가 팽배했던 시기다. 헬렌 켈러의 정치색이 짙어지자, 한때 헬렌 켈러에 대해 열렬히 우호적인 기사를 쏟아내던 보수언론들도그녀에 대한 격한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았다고도 한다. 세월이 지나 흑인 민권 운동과 여성운동, 반전 운동 등이 미국 내에서 활발하게 전개되던 1950~60년대에도 “동시대인”으로서 살았다. 돌이켜보건대 어린이 책의 전기작가들이 “Happily Ever After” 스타일로 얼렁뚱땅 넘어가 버린 시간 동안, 그녀는 (신체적) 장애인에 대한 권리를 확대하기 위한 활동 뿐만 아니라 사회적 의미의 각종 장애를 타파하는 데 앞장서서 헌신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오늘 날도 사회적 의미에서의 장애는 도처에 널려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삶을 힘들게 하는 온갖 종류의 장애에 싸울 수 있는 에너지는 그래도 <희망>과 <열정>아닐까. 헬렌 켈러의 삶이 그러했던 것처럼, 오늘 사회 구석 구석에서 “장애”를 겪는 모든 이들의 삶이 달라지기 전까지는 <좌절 금지>. 칼럼과 관련하여 궁금하신 점은 WisePrep 소피아선생님 (617-600-4777, [email protected])에게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0] |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 |
|
프리미엄 광고
161 Harvard Avenue, Suite 4D, Allston, MA 02134
Tel. 617-254-4654 | Fax. 617-254-4210 | Email. [email protected]
Copyright(C) 2006-2018 by BostonKorea.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and Managed by Loopiv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