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룻과 떡국 한 그릇
보스톤코리아  2007-01-07, 22:25:08 
김은한 (본지 칼럼니니스트)

새해 첫날 떡국을 먹는 우리 풍습과 유사하게 일본은 섣달 그믐이 되면 우동을 먹기에 해마다 섣달 그믐날이 되면 우동집으로서는 일년 중 가장 바쁠 때이다.
그래서 북해도 삿뽀로의 "북해정"도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마음씨 좋은 부부는 종업원에게 특별상여금 주머니와 선물을 들려서 막 돌려보낸 참이었다. 그때 출입문이 힘없이 열리더니6세와 10세 정도의 사내들과 계절이 지난 체크무늬 반코트를 입은 여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라고 맞이하는 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여주인은 상냥하게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주방을 향해, "우동, 1인분!" 하고 소리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은 잠깐 일행 세사람의 행색을 눈여겨 본 뒤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주인의 서비스로 수북한 분량의 우동을 맛있게 나눠먹고 150엔의 값을 지불하며 나가는 세 모자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주인 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했다.
그 다음해에 이어 그 다음해의 섣달 그믐날이 되었다. 북해정의 주인과 여주인은9시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모른다. 10시를 넘기자 금년 여름에 값을 올려 '우동 200엔' 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표가 150엔으로 둔갑했다.  2번 테이블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져 있다.
10시 반이 되자 예의 모자 세 사람이 들어왔다. 어머니는 조심조심 말한다. "저...... 우동...... 이인분인데도 괜찮겠죠?"
여주인은 상냥하게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카운터를 향해서 소리친다. "우동 이인분!" 그러자 주인은 둥근 우동 세 덩어리를 삶아 내오는 것이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카운터에까지 들리고 있었다.
"형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둘에게 엄마가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구나. 실은,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켰던 사고로  매월 5만엔씩 계속 지불하고 있었단다. 형아는 신문배달을 열심히 해주었고, 쥰이 장보기와 저녁준비를 매일 해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었던 거란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일을 해서 회사로부터 특별수당을 받았단다. 그것으로 지불을 모두 끝마칠 수 있었던 거야."
그 때 형이 "사실은 엄마한테 숨기고 있는 것이 있어요.학교에서 쥰이의 수업참관을 하라고 편지가 왔었어요.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콩쿠르에 출품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이 작문을 쥰이 읽게 됐대요. 엄마가 알면 무리를 해서 회사를 쉬실 것 같아 제가 대신 갔습니다."
<우동 한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가 밤낮으로 늦게까지 일을 하시는데 12월 31일 밤 셋이서 먹은 한 그릇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는 것...셋이서 다만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았는데도 우동집 아저씨와 아줌마는,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라고 하시는데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요"
카운터 안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인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카운터 깊숙이 웅크린 두 사람은, 한장의 수건 끝을 서로 잡아당길 듯이 붙잡고, 참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다시 일년이 지나 북해정에서는, 밤 9시가 지나서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테이블위에 올려놓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 세 모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 해에도, 또 다음 해에도, 2번 테이블을 비우고 기다렸지만, 세사람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사이 북해정은 장사가 번창하여, 가게 내부수리를 하고 테이블이랑 의자도 새로이 바꾸었지만 그 2번 테이블만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자연히 2번 테이블에 얽힌 이야기가 주위에 알려지게 되자 북해정의 2번 테이블은 '행복의 테이블'로써 승격되게 되었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테이블이 비길 기다려 주문을 하는 젊은 커플도 있어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섣닫 그뭄날. 북해정에서는 5.6년 전부터 주위 상인들이 모여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넘기기 우동을 먹으며 망년회를 가지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예의 2번 테이블은 비워둔 채 망년회가 절정에 달한 10시 반이 지났을 때, 입구의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오바를 손에 든 정장 슈트차림의 두 사람의 청년이 들어왔다. 여주인이 죄송하다는 듯한 얼굴로 '공교롭게 만원이어서' 라며 거절하려고 했을 때 기모노 차림의 한 부인이 깊이 머리를 숙이며 들어와서, 두 청년 사이에 섰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여주인은 10여년 전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당황해하고 있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14년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저는 교토의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금년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하여 내년 4월부터 삿뽀로의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교토의 은행에 다니는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인생 가운데에서 최고의 사치스러운 것을 계획했습니다.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님과 셋이서 삿뽀로의 북해정을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여주인과 주인의 눈에서 왈칵 눈물이 넘쳐 흘렀다. 옆에있던 야채가게 주인이, "여봐요 뭐하고 있어요! 십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 있잖아요" 번뜩 정신을 차린 여주인은,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테이블 우동 3인분!" 예기치 않은 환성과 박수가 가게 밖에서도 들리고 있었다.
이 우동 한 그릇은 구리 료헤이의 실화 수필이다. 필자가 칼럼의 일상적인 틀을 벗어나 이 수필을 간추려 소개하는 것은 고향을 떠나 생활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내년 새해에는 <떡국 한 그릇>의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훈훈함이 우리 동포사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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