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이 되어버린 1830년대 은행 전쟁 (Bank War)
보스톤코리아  2012-12-19, 16:56:21 
지금으로부터 꼭 230년 전인 1782년 12월 5일 뉴욕, 훗날 미국의 8대 대통령이 될 마틴 밴 뷰렌이 태어났다. 역대 대통령 중 “날 때부터 미국 시민으로 태어난” 최초의 대통령이 바로 밴 뷰렌이다. 또한 그는 아일랜드계였던 7대 앤드류 잭슨에 이은 역사상 두 번째 비-영국계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다. Van은 영어의 From에 해당하는 네덜란드어로, Martin Van Buren의 조상은 뷰렌 지방 출신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네덜란드계 이민자의 후손이었던 밴 뷰렌이 집에서 사용하는 “모국어”도 영어가 아닌 네덜란드어였다.

밴 뷰렌에 얽힌 (그러나 시험에는 안나오는) 잡동사니 정보가 하나 더 있다. 밴 뷰렌은 뉴욕 주 킨더훅에서 출생했는데, 영어의 “O.K. (Okay)”는 밴 뷰렌 대통령 재임시기 Old Kinderhook, 즉 밴 뷰렌을 대통령을 지칭하는 약칭에서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었다는 설도 있다.

민주 공화파 (Democratic-Republican)로 정계에 입문, 각 주의 자치와 권리가 연방에 우선한다고 생각했던 제퍼슨을 정치적 우상으로 여겼던 밴 뷰렌은, 퀸시 아담스가 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1824년 대선 이후 앤드류 잭슨과 함께 미국 민주당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상원 의원, 뉴욕 주지사 등을 지냈으며 1828년 잭슨이 당선된 직후 국무장관을 지냈고, 1832년 대선에서는 잭슨의 러닝 메이트로 출마, 부통령이 된다. 잭슨 대통령에 의해 민주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1836년 대선에서 8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여기까지만 좋았다. 1837년 밴 뷰렌이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이미 미국은 아주 심각한 금융공황으로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밴 뷰렌 대통령이 처했던 그의 재임시기 금융공황을 이해하기 위해서 잭슨 대통령 시절 잭슨과 미합중국 중앙은행 (Bank of the United States) 총재 니콜라스 비들 (Nicholas Biddle) 간의 이른바 “은행 전쟁 (Bank War)”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1823년 새롭게 중앙은행 총재로 임명된 비들은 명석한 인물이었다. 중앙 은행이 발행하는 화폐를 전국적으로 표준화함으로써 중간에 브로커들이 개입하여 은행권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을 방지했고, 대출 심사를 까다롭게 하면서 투기를 막았다. 중앙 은행의 미국 경제 전반에 대한 통제력이 강화되었고 당연히 총재인 비들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하지만 1828년 선거에서 대통령 당선된 앤드류 잭슨과 비들은 적대적인 관계였다. 양자는 중앙 은행에 대한 철학, 지역과 연방의 관계, 화폐제도에 대한 입장, 심지어 성장 과정이나 배경까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비들이 표준 화폐를 원했다면 잭슨은 화폐를 혐오하고 금, 은 같은 경화를 신뢰했다. 잭슨은 정부의 돈을 자본으로 운영되는 민간 기관인 중앙 은행이 정부를 능가하는 권한을 가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했고, 비들은 은행 고유의 업무에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보았다.

1832년 선거를 앞둔 비들은 잭슨과 정치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웹스터은 조언을 받아 일찌감치 1836년 만료되는 중앙은행의 영업 연장 신청을 제출했다. 전국 규모 화폐 제도와 중앙 은행 문제가 대선의 이슈로 만들면 북부의 표를 의식한 잭슨이 거부할 수 없으리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1832년 선거에서 잭슨은 중앙 은행에 대한 재허가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세웠고, 중앙 은행을 ‘부패의 괴물’이라고 비난했다. 또한 의회가 승인한 중앙은행 영업연장안에 측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비토권을 행사했다.

잭슨이 1832년 재선에서 성공하자 중앙 은행과 잭슨의 관계는 점점 더 파국으로 치닫았다. 1836년의 영업 만료 시점에 이르기도 전에, 잭슨은 중앙 은행에 예치되어 있는 국가 재정을 전부 인출해 잭슨에게 고분고분한 지방 은행 (이른바, 펫 뱅크 Pet Banks)에 분산 예치했다. 이후 한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비들의 중앙 은행도 동네 은행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잭슨의 은행 길들이기가 잭슨의 일방적인 승리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국가 재정을 자본금으로 하는 중앙은행에서 정부의 자본이 전부 인출되자 중앙 은행이 입게 된 타격은 핵폭탄급이었다. 중앙 은행의 자본이 바닥나자 비들은 서둘러 대출금 회수에 나섰는데, 이에 따라 신용 대란이 일어났고 기업은 도산했다. 게다가 새로이 국고 수납은행이 된 각 주의 펫 뱅크들이 투자라는 명목으로 서부의 투기 열풍에 뛰어든다.

1837년, 세계 경제가 불황기에 돌입하고 외국인들의 인출이 이어지면서, 미국 경제는 연쇄적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은행들은 줄줄이 도산하고 실업률이 크게 증가했지만, 위기는 밴 뷰렌의 정치력을 넘어섰다. 중앙 은행도 없었고, 기업과 은행의 도산에 대한 안전장치도 없었고, 자금의 회전율도 낮아졌던 탓이다. 밴 뷰렌을 아꼈던 잭슨 덕에 O.K. 였던 밴 뷰렌이 Van Ruin이라 조롱당했다! 1830년대 은행 전쟁은 그렇게 승자없는, 그리고 스케일 큰 치킨 게임이 되었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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