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명태조 주원장은 고려인이었다 |
보스톤코리아 2006-12-30, 02:43:41 |
백 린 (역사학자)
<맺는 말> 걸인 위국왕(乞人爲國王)이라. 거지가 임금이 되었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한고조 유방은 패상정장(沛上亭長)으로 모위(冒危) 8년 풍진에 천하를 얻었는데, 홍무황제 주원장은 걸승으로 15년 풍진에 중국천하를 얻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주원장은 대명황제의 옥좌에 오른 후로 주위의 조롱과 멸시를 받아 중압감을 시시각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세속난측자(世俗難測者)는 인심이라고 승전의개가 올릴 때는 환호를 올렸지만, 일단 남경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우고 황제의 자리에 앉아서 천하를 호령할 때는 인심이 많이 달라졌다. 원나라를 타도하는 혁명전에 가담하여 그를 따르던 장졸들은 이제 주원장의 출생과 성장문제를 가지고 비난 조롱하기 시작했다. 주원장의 전기작가는 당시 주원장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말해 주고 있다. Zhu Yuanzhang after he became emperor. “He felt that everyone was trying to destroy him, everyone was ridiculing him, mocking him”-and concludes that after supreme power came into his hands. 주원장의 전기작가 오한(Wu Han 1909-1969)은 말하기를 주원장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파멸시키려 하며 모든사람이 자기를 비웃고 조롱한다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무엇 때문에 주위로 부터 멸시와 조롱을 받아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는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아마도 그의 출생과 성장 과정이 애매하였기 때문에 여러가지 비방과 모멸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가 황제의 자리로 오른 후로 가까이서 시중드는 중국인 내관들을 믿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로부터 위협마져 느꼈기 때문에 200명이나 되는 내관을 이심전심 통할 수 있는 심복을 본국 고려의 조정에서 데려가려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주원장의 출생과 그 성장 과정에는 의문점이 많다. 그가 고려 때 한국의 경상도 웅천에서 태어나 4,5세때 절에 데려가 양육되면서 학업을 익히고 무술을 연마한 다음 15세 때에 하산하여 여러 방면으로 돌아다니다가 장군이 되어 명나라를 세웠다는 조선에서의 전설의 골자는 그의 전기에서 말하는 어릴 때의 성장 과정과는 별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주원장의 15세 이후의 사정을 말해준 것 같이 보인다. 누가뭐라고 하던 거지이며, 탁발승이 하늘의 뜻을 얻어 명나라를 세우고 중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런데 명나라의 황제가 된 주원장은 재위 20년에 고려, 조선에 대한 배려와 환심은 각별하였다. 그가 왜 고려인을 그렇게 친근하게 생각했는지 관심이 가지 않을 수가 없다. 서기 668년 고구려가 망한 후 당나라 고종은 3만 8천 명의 고구려민을 강회(江淮) 이남의 지방으로 이주시켰다. 강회는 일찍이 수양재가 고구려를 정벌하려고 백만 대군을 동원하여 요하를 건너 왔을 때, 내호아 장군이 강화의 수군 4만명을 이끌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성을 공격하다가 실패하고 쫓겨 갔는데 바로 내호아 장군의 수군이 출발한 그 곳이다. 그보다도 우리가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산동반도와 양자강 어구인 양주지방은 일찍부터 대외무역이 발달한 문물의 집산지로 상성의 내왕이 빈번하였다. 바다를 사이로 한 신라, 백제, 고구려 사람들의 내왕이 많았던 곳이다. 옛날에 한국인이 중국에 들어가 이름을 드높인 학자와 승려 장군은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 중 고구려의 고선지 장군, 천헌성 장군, 신라의 장보고, 백제의 흑지상지, 발해의 대문예등은 중국의 사적에서 특히 그 이름이 유명하였다. 이같은 점으로 미루어 보아 주원장도 신라의 장보고처럼 16세때에 중국에 들어가 대성한 고려인의 후예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앞서게 된다. 지면을 아끼려고 글을 또 줄이다 보니 문장이 거칠게 되어 딱딱하여 이해하기가 어렵게된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주원장의 탄생설화와 가장 최근의 주원장 전기를 대조하여 그의 출생과 성장과정을 확실히 해 보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미비한 자료를 가지고 탄생설화의 신빙성을 논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더욱이 주원장 전기의 중국어 원전을 보지 못하고 그 영문번역판을 가지고 검토하였음으로 혹 미심적은데가 있을지 모른다. 주원장의 출생과 그 성장과정을 확실히 하기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사실 역사를 바로 안다는 것도 어렵지만 그것을 바로잡는 일은 한 두줄 글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역사기술은 사실을 입증하는 일이기 때문에 증거 문헌이나 관계사료의 제시없이 추상적으로 사실을 단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인 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은 어디까지나 성실히 추구하여 밝혀 놓아야 하는 것이 또한 역사학의 책임이라고 하겠다. 본고의 영문번역은 내여식의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중국지도는 한의사 김명칠 장로가 구해주어서 요긴하게 사용하였다. 여기에 참고한 서적명을 첨부하여 각주에 대신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1. 다시찾는 우리역사, 한영우 저 2. 고려시대의 연구, 이병도 저 3. 고려시대사, 김상기 저 4. 한국역사 연표 5. 고려촬요, 어숙권 저 6. 지나사료 초 (조선사,제 1편) 7. 가이세스 도요시, 호리 조시이치 저 8. 교요도 시데노 주고구시, 우에무라 세이지 저 9. 나옹비설, 이제현 저 10. 중화인민공화국 지도 11. 중화인민공화국 지도 (중 영문판) 12. 朝鮮紀聞(조선기문) 13. Imperial China 900-1800, by F.W Mote. 14. China, Life World Library. 15. Two Faces of Asia;India and Chin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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