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 행 / 후 / 기 : 겨울의 길목에서, Mt. Sandwich­
보스톤코리아  2012-11-26, 16:37:13 
겨울의 시작에 올라간 이번 산은 Mt. Sandwich로 20 feet가 모자라 화이트 마운틴 지역의 48개로 이루어진 4000 footer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운 산이지만,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넓게 펼쳐져 있는 멋진 경관들로 Sandwich Range로 불리우며, 산정상에서는 멀리 화이트 마운틴의 최고봉인 마운틴 워싱턴을 볼 수가 있다. 또한 용맹한 인디언 장군의 이름을 딴 Mt.Tecumseh가 자리잡은 스키장으로도 유명한 Waterville Valley가 가까이에 있어 겨울철엔 스키와 등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이름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도 있는데, 지금부터 약 200여년전에 카드놀이에 열중하느라 번번히 식사 때를 놓친 샌드위치백작이 게임을 하면서 먹기위해 빵사이에 고기와 야채를 넣어 먹었고, 그것을 본 따라쟁이 친구들이 하인에게 나도 샌드위치백작과 같은 것을 해달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간편식사로 사랑받고 있는 샌드위치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샌드위치라는 산이름 때문인지 산을 오르자마자 무척 시장끼가 느껴지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시작된 겨울산행의 춥고 바람부는 산정상에선 샌드위치 보다는 뜨끈한 국물이 있는 사발면이 더 입맛을 돋우게 될 것 같다.

Mt.Sandwich의 다른 이름은 Sandwich Dome으로 산행 전부터 넓고 둥그런 모양의 바위에 우뚝 선 나의 모습을 상상하며 처음 올라보는 산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지난해 가을에 올라가 보지못한 요세미티공원의 Half Dome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산행 며칠전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샌디의 영향으로 산행초반부터 우린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다.
엄청나게 불어난 물로 자칫하면 거센 물살에 휩쓸려 넘어져서 다칠 위험이 많았다. 몇몇 산우님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무거운 돌을 날라 디딤돌이 되도록 놓아주었고, 또 다른 분들은 커다란 나뭇가지를 옮겨서 다리를 만들어 머뭇거리고 주저하던 산우님들을 안전하게 건너도록 도와주셨다. 실로 보산회에서 늘 볼 수 있는 한편의 아름답고 훈훈한 풍경이었다.

곧이어 우리는 곳곳에서 비바람에 꺽이고 생나무가 찢기우는 자연의 아픔을 보게 되었다. 우리에게 싱그러운 신록과 아름다운 단풍을 선사하던 나무들이 산길에 내동댕이쳐진 속절없는 모습에서 강한 자연이 휩쓸고 간 무서운 횡포를 보았고, 또 다른 자연의 무기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장애물 경기를 하듯 쓰러진 나뭇사이를 헤치기도 하고, 넘어가기도 하면서, 때론 나무 밑을 기어가야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불편함 보다는 안타까움으로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산정상이 가까와 지면서 나무위로 서리들이 하얗게 내려앉아 바야흐로 눈꽃이 아름다운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휘이휘이 불어오는 거센 바람소리가 귀를 때리고 키작은 나무들이 정렬하듯 서있는 곳을 지나자 곧 정상이었다! 그런데 넓고 둥근 바위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었고, 초록빛 나무들을 울타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는 듯 손바닥만한 둥근 모양의 바위만이 정상을 나타내는 돌무더기를 머리에 이고 초라하고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멋진 경치를 상상하던 나에게 실망스런 마음을 느끼게 한 순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우리들은 매서운 바람에 떠밀려 서둘러 내려와야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바람이 잦아든 아늑한 곳에 모여앉아 하얀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국물과 차를 마시고 나니 얼어붙었던 얼굴이 금새 환하게 피어나며 어느새 실망스럽고 아쉬웠던 마음들이 눈녹듯이 사라지며 즐겁고 명랑한 웃음들이 산가득 울려퍼지고 있었다.

우리 산악회에선 매년 많은 산들을 올라간다. 대부분 산정상에서 기대하였던 흐뭇한 경치를 만끽하곤하지만, 때론 "이게 정상이야?" 하며 이정표처럼 쌓아놓은 돌무더기 앞에서 실망하기도 하였다.
늘 그렇듯이 숨가쁘게 땀을 뻘뻘 흘리며 산을 오를 때는 탁트인 정상에서 펼쳐지는 능선들을 바라보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느끼기 위함이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정상에서 경치를 보며 머물러있는 시간은 고작해야 30분정도로 짧고 강렬하지만, 우리들이 자연속 깊숙한 곳에서 자연의 기를 받아들이며 함께 호흡하는 시간은 길고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어디 물좋고 정자좋은 곳이 흔하다던가! 탁 트인 정상은 늘 바람이 많이 불어 빨리 내려오게 되고 특히 겨울철에는 서있기가 힘들 정도로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어와 정상에 머물 수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쌓인 산정상은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가 많으니 춥지도 않고 아늑하고 따뜻하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맛있는 점심을 나눠 먹을 수 있어서 더 화기애애하고 재미가 있다.
오늘도 산행을 하면서 자연을 통하여 모든 것이 다 좋을 수가 없듯이 모든 것이 다 나쁘지도 않다는 삶의 진실함을 깨닫게 된다.

앞으로도 우리는 어떤 모습의 산이 우리 앞에 펼쳐지던지 개의치 않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서로 도와주고 배려하면서 감동의 순간들을 연출해내며 또 한편의 멋진 드라마를 만들게 될 것이다.


보산회 현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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