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생일
보스톤코리아  2012-10-22, 12:25:22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요한복음 21:9, 12).



아이는 새끼 손가락이 닮았다. 발가락도 나를 닮았다. 손발가락이 닮은 우리 아이가 발이 무럭무럭 자랄 때에 은근히 걱정했다. 혹시 맞는 신발이 없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아닌 걱정이었던 거다. 내 발도 작은 발은 아닌데, 아이가 내 구두를 빌리던 때는 오래전에 지났다. 이미 발은 아비 보다 더 커졌다는 말이다. 다행히 미국에는 발이 큰 사람들이 많아 걱정을 덜었다. 아이들은 신발을 크게 신어 오히려 신발을 끌고 다니는 모양이다. 아이의 운동화는 나룻배 마냥 넓고 길다.

손과 발이 커져가면서 키도 몸집도 커졌다. 좁은 집안을 돌아 다닐 적엔, 코끼리가 오고 가는 듯하다. 무슨 짐승이 거니는 듯 싶다는 거다. 아비인 나도 피하지 않고 맞서면, 부상 당하기 십상일 것이다. 덩치로는 이미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될지 싶다.
아이가 15살이 되어,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아니 벌써.

게 (蟹 , crab) 이야기를 아이의 동화책에서 읽었나 보다. 어미게가 아이 게에게 말했단다. ‘아이야, 옆으로 걸어서는 안된다. 걸음은 반드시 앞으로 걸어야 한다’. 어미 게 자신도 앞으로 걷지 못해 옆으로 걸으면서 자식게에게는 그렇게 가르쳤다 했다. 자라는 아이를 보며, 아비인 내가 항상 경계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나를 쳐다 보는 아내의 눈초리가 자주 차갑다. ‘애가 보고 배운다’ 는 불평을 할 적엔 더욱 싸늘하다.

아내는 식탁에 앉으면, 열심을 다해 생선을 발린다. 아이를 위해 생선을 발리는 거다. 결혼 초에는 날 위해 발랐다. 손에 생선 비린내를 풍기던 아내가 한마디 안할 리 없다. ‘ 이건 우리 아버지가 하던 일인데.’ 내 장인을 말하고 있으며, 장인은 장모와 처가 식구를 위해 손수 생선을 발랐던 걸 말하는 거다. 대신 당신은 대가리와 꼬리만 챙겨 드셨던 모양이다. 옹색하지 않은 살림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세월이 가고 첫 아이가 태어나고 부터는, 발려진 생선의 내 몫은 더 이상 없다. 구운 생선은 내가 발라 먹든지, 아니면 먹지 못한다. 하긴 나는 생선을 잘 발릴 줄도 모른다. 그저 휘적 휘적 일 뿐이다. 맨손을 대기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운 생선에서 가시를 발라내는 남자를 보는 건 과히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모습은 와이셔츠 소매 걷고 일에 몰두하는 사내만큼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

공자는 십오세면 입지학立志學이라 했다. 학문에 뜻을 세운다는 말이다. ‘ 공자 왈, 남아 15세에 지학이라 했다’ 하기에는 아이가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열다섯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 아비가 주는 말이다.

생선 발라 내 주는 일은 학문에 뜻을 세워 용맹정진하는 것만큼 장한 일이다. 헌헌장부 되어라. 잘 자라 주어 고맙다. 생일을 축하한다. 아빠가 썼다.


김화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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