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결혼 기념일
보스톤코리아  2012-08-27, 15:29:56 
이 글은 사사로운 글 이다. 내 개인적인 일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로 신문에 글을 싣는다는 건, 매우 겸연쩍은 일일것이다. 더우기, 제목도 황당하기만 하다. 결혼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므로 당연히 ‘우리’의 결혼 기념일이 되어야 옳다. 하지만, ‘아내의 결혼 기념일’ 이라고 우기며, 염치 불구 하고 다시 자판 앞에 앉았다.

세상엔 나만이 할 수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있다. 우리 부부의 결혼한 날을 챙겨야 하고, 기념하는 일은 그 중 하나다. ‘아내의 결혼 기념일’을 축하하는 일은 나만이 할 수 있고, 내가 해야 만하는 일이란 말이다. 물론 내 아내도 나에게 축하한다고 말할 것이다. 다시 아내와의 결혼 기념일이 다가왔다. 결혼기념일은 해마다 온다.

그 해 광복절도 매우 더웠다. 청명하여, 박경리 선생이 말한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던’ 바로 그날이다. 나는 부랴 부랴 날을 잡아야 했고, 바로 그 날 결혼식을 올렸다. 도둑처럼 찾아온 해방의 날에, 결혼식을 치뤄야 했던 거다. 그렇다고 도둑 장가를 든 건 아니다. 하긴, 우리 이민 선배들은 사진만 보고 결혼 하기도 했단다. 하지만, 나는 전보 한장에 결혼식을 앞당겼다. 전보는 ‘연구조교로 어시턴트십을 주겠다’는 내용이었고, ‘전도 감감’한 청년에게는 결혼 허가증과 같았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으므로, 서둘러야 했다.

축하한다고 친구가 말했다. 결혼식에 축하차 오면서 건네는 의례적인 인사였다. ‘뭐, 욱하는 마음에 결혼하는 거지.’‘감사 하다’ 라고 대답하면 모범인 걸,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참으로 떨리고 아주 기쁜 일 이었는데도 말이다. 전혀 욱하지 않은 일이었고, 오랫동안 기다리던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아내에게 미안하다. 전혀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린다. 내가 너무 기뻐, 제정신이 아니었다.

결혼식을 치뤘으니, 신혼여행을 갔다. 여장을 풀고 이를 닦으려 했는데, 칫솔이 하나뿐이었다. 빨강과 파랑색 두개의 칫솔을 기대했는데 말이다. 왜 칫솔이 하나뿐인가 저으기 당황했다만, 다른 칫솔을 구해야 하는 필요를 우리 신혼 부부는 느끼지 못했다. 그 날부터 우리 부부는 하나의 칫솔을 나누어 썼다. 아내는 매우 찝찝해 했다만, 나는 크게 괘념치 않았다. 하긴, 물기 마르지 않은 칫솔을 다시 사용하는 건 그리 상쾌한 일은 아니다.

친구가 다시 물었다. 결혼후에 며칠을 지나지 않아서였다. 결혼하니 뭐가 가장 좋더냐는 물음이었다. ‘집에 바래다 주지 않아도 되니 그건 좋더라.’ 이제는 늦더라도, 같은 집으로 가야 할테니, 그건 대단히 편한 일이었던 거다. 늦게 집까지 바래다 주고, 시내 버스와 전철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직 지하철 2호선이 생기기 전이다.

여러해 동안, 바로 그 날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칫솔을 나누어 쓰고, 집에 데려다 줄 걱정하지 않으면서, 한 지붕 밑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아왔던 거다. 이제는 ‘국화 옆에서’를 읽는 것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세월의 더께가 얹혔다. 아내는 해바라기 였는데, 세월이 깊어 가면서 국화가 되었니 말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이 생긴 꽃이여.

국화는 너무 맑아, 더 이상 요염하지 않다. 대신, 젊은 시절의 화려함을 뒤로한 채, 무서리를 맞고 선 듯 함이다. 그래서 더욱 고고해 보인다. 그래서 쳐다 보기에 선선하고, 웬일 인지 코끝이 찡해 온다는 말이다. 그렇게 세월과 더불어, 누이 같던 아내가 국화가 되었다.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저 세상에 가서도 같이 살면 좋겠다고 내 희망을 말했던 거다. 내 간절한 소망에 아내가 고개를 저었다. ‘이 세상에서 한번 같이 살았으면 그걸로 네 복이 족하다’ 라고 말이다. 저 세상에서의 내 청혼에 대한 정중한 거절이었던 거다. 이른 아침에 스치는 입냄새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렵던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이 생에서도 어렵게 결혼했는데, 저 세상에서도 반드시 같이 살자고 다시 꼬여 낼 것이다. 나한테는 그 냄새가 그다지 역하지 않다는 말이고, 내가 맡는 냄새는 아내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저 세상에서도, 칫솔 하나를 같이 사용하고 싶은 거다.

욱하는 마음에 혼인한 서방을 믿고 오랜세월 같이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결혼 기념일을 축하 합니다. 당신에게 다시 청혼 합니다. 우리를 키운 건 팔할이 당신입니다.
*독자들아, 이 글을 읽거든 아내에게 전화라도 한 통화해 다오. 축하한다 말한마디 건네 다오. 전화기에서 불이 난다 해도 그건 즐거운 일일 것이다. 아내가 당황해 한다 해도, 그건 또 다른 놀라운 사건이 될것이니 말이다. 대신 나에게는 전화하지 말라.


김화옥


* 편집자주 : 원고가 밀린 관계로 글을 조금 늦게 실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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