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난한 ‘부자’ 화가의 통쾌한 화(畵)풀이
보스톤코리아  2012-07-02, 14:29:50 
화가들의 뒷담화 한토막이 생각난다. 역사에 남는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말이다. 첫째, 젊어서 요절해야 한다. 둘째, 찢어지게 가난해야 한다. 셋째, 물론 실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조건에 딱 들어맞는 사람이 빈센트 반 고흐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가 없는 듯하다. 그는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목사가 되기 위한 길도 막히고, 미술학교 입학도 좌절되고, 물감을 살 돈도 없고, 화상이었던 동생에게 기대기나 하고, 친구였던 고갱과는 불화를 일으켜 우리도 잘 알고 있다시피 귀를 자르는 사고를 치고, 끝내 권총으로 자살한 화가. 이보다 더 극적일 수 있을까.

고흐만큼이나 고단한 삶을 산 사람이 이중섭이 아닐까. 캔버스 살 돈이 없어서 담뱃갑의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던 화가, 일본에 있는 가족에게 편지 부칠 돈도 없어서 끝내는 가족과의 연락이 두절되었던 화가, 질병과 외로움 속에 천천히 사그라져간 천재화가. 그는 그렇게 불행하게 사라져갔지만,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충만한 에너지를 본다. 억누를 수 없는 생의 의지를 그가 붓 끝에 온전히 실어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리라.

물론 예외도 있다. 스스로는 프롤레타리아 편이라 주장하면서 러시아 공산당을 방문하기도 했던 파블로 피카소는 요절하지도 않았고, 가난하지도 않았지만, 실력 하나로 유명해졌다. 유명해졌을 뿐 아니라, 질투가 나도록 잘 살았다. 그가 풍요로운 부르주아로 90년을 살고 죽었을때, 일곱 명이나 되던 그의 공식, 비공식 여인들 중 두 명이나 그를 따라 목숨을 버렸다. 미술 전공자뿐 아니라 미술의 문외한들까지도 그의 이름 석자 정도는 들어보게 되었으니, 이런 예외적 역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심지어 그는 “그림을 그리려고 애쓰지 않는다. 다만 마음속에 섬광(flash)처럼 떠오르는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옮길 뿐이다”라는 멋진 말을 하기도 했다. 보통사람의 염장을 지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피카소는 예외로 하자.

한 때, 그림쟁이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그 자녀들의 앞날을 막았었던가. 영리한 부모들은 고흐를 보고 이중섭을 보고, 그 밖에도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난하게 살다간 예술가들을 숱하게 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그런 부모들을 탓할 일도 아니리라.
가난해야 예술혼이 빛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예술가들 중에 가난한 사람이 유독 눈에 띠는 것은 그들이 경제법칙이 아니라 예술법칙만을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오직 예술을 위하여, 예술에 의해, 예술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긴 목록에, 필자는 또 하나의 이름을 추가하고자 한다. 다만 이 화가 역시 요절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외라고 할 수 있지만, 부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력이 있다는 점에서, 두 가지 조건은 갖춘 셈이다. 뉴햄프셔의 한적한 바닷가 스튜디오에서 만날 수 있는 화가 유수례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가난하다. 돈이 없어서 가난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혹은 홍콩의 경매시장에서 고가에 판매되는 그림들을 충분히 제작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길을 좇지 않는다. 한국의 일부 화가들처럼 환쟁이 정신을 세상의 보상과 맞교환할 수도 있었는데, 그리하여 황금의 성채를 쌓을 수도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하늘나라 입장권을 예약한 마음이 가난한 자처럼, 세속에선 가난하나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인 것이다. 그가 선택한 것은 한때 사경을 헤매면서도 붓을 놓지 않은 환쟁이의 길이었고, 목숨은 살리고보자는 친구들의 손길이 그의 손에서 강제로 붓을 빼앗아야 했을 만큼 그림과 결혼한 사람, 그림에 의해 생명을 부지해온 사람이다.

변주된 주제처럼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새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한다. 심지어는 ‘진짜’ 그림만을 그리겠다는 환쟁이적 집착으로부터의 자유까지도 포함한 자유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통쾌하다. 거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예술행위는 화(火)풀이이고 화(畵)풀이이다. 그의 고난기에 제작된 블루색조는 어느 때인가부터 따뜻한 붉은 색조로 바뀌었다. 피카소처럼, 화가 유수례가 암울했던 블루시대를 벗어나 진한 오렌지색 계통의 버밀리언 시대로 옮겨간 것은 그 개인의 삶을 위해서는 다행이고, 관객을 위해서는 행복한 일이다.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포근한 환쟁이가 우리 가까이에 있다는 것,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삶의 즐거움이다.


장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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