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 삶 딛고 석사학위 취득한 65세 졸업생 |
보스톤코리아 2012-06-07, 22:28:05 |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김현천 기자 = 두번의 자살 실패, 소녀 시절 성폭행, 인신 매매 등 고통의 질곡 속에 살아온 주인공 이은주 씨(65세)가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학원을 졸업해 감동을 주고 있다. 더구나 이은주 씨는 20대 후반에 국제결혼으로 미국에 왔으나 남편에게 버림 받고 허드렛 일로 일관하며 빈민가에서 아이 셋을 키워낸 억척 싱글맘. 한국서는 초등학교 졸업 후 학교라고는 야학을 잠깐 가본 것 외에는 제대로 된 수업을 받아 보지 못했던 그녀이다. 그녀가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이들이 어느정도 성장하고 난 50 초반. 어려서부터 늘 마음에서 놓지 못하던 공부에 대한 열망이 솟아 올랐던 때다. 막내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같은 학교 야간 검정고시반에 등록, 7개월만에 GED시험을 통과했다. 야간학교긴 했지만 은주 씨는 졸업식장 단상에서 60여명을 대표해 연설했다. 시장, 교육감등이 참석한 가운데 연설하는 엄마를 지켜보던 큰 딸은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이것이 은주 씨에게는 제3의 인생이 시작 된 때다. 은주 씨가 처음 노스 쇼어(North Shore) 컬리지 입학을 시점으로 지난 5월 25일 레슬리 대학의 심리학 석사를 받기까지 걸린 세월은 10여 년. 직장을 놓을 수 없어 주말과 야간을 이용해 강의를 듣느라 오래 걸렸지만, 집념 하나로 버텼다. 싱글 맘으로 살면서 생긴 것이 집념과 끈기였다고. 그동안 그녀가 들은 강의는 카운셀링과 심리학. 자신의 불운했던 지난 과거를 스스로 치유하고 싶어 시작한 공부가 지금은 정신질환자들을 돕는 데 사용되고 있다. 현재 헤이븐의 “Adult Behavioral Learning Center”에서Clinical Coordinator로 일하고 있는 은주 씨는 “지금 가장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센터에 오면 제2의 집에 온 듯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늘 국제결혼자라는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야 했다. 한국인과 미국인 사이에서 어느 쪽에도 확실하게 섞일 수 없는 외로움은 고사하고, 양쪽의 편견과 오해를 벗어 나기 위해서 늘 두세 배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고. 한때 자살을 시도할 만큼 나약했던 그녀가 이제는 “시간은 가게 마련이다. 아무리 힘든 시기에 처해 있더라도 포기하지 말라. 때가 있다”고 살아 있는 메시지를 전했다.. 빈민가, 자살 실패, 인신매매 공부를 시작한 때가 이은주 씨에게 제2의 인생이 아닌, 제 3의 인생인 데에는 그녀의 삶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살았던 28년 간은 그녀에겐 불운의 세월이었다. 6.25 이후 가난했던 ‘60년대,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와 우울증이 심각한 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동생을 때리는 언니, 밑으로 어린 동생 셋. 당시 인천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열 댓살이던 은주 씨는 어느날 갑작스런 어머니의 가출로 소녀 가장이 되었다. 연필 공장에 다니며 돈을 벌어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것. 하지만, 자기 몸 하나도 제대로 가누기 힘든 어린 소녀에게는 가난도 서러운데 엄마 없는 외로움은 너무도 두려운 시간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엄마의 고무신 벗는 소리를 그리워 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이 얼마나 될까…. 은주 씨는 문득 ‘내가 죽으면 엄마가 돌아오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데다 이미 동네 오빠나 아저씨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바 있던 어린 소녀는 자신을 더이상 사랑하지 않았고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 따뜻한 햇살이 얼굴을 비추더니 따끈한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깜짝 놀라 깨 보니 엄마가 흘리는 눈물이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은 홍예문 다리. 그리고 덜덜 떨리는 다리를 한발 내딛으며 추락한 뒤 느꼈던 극한 고통과 함께 아스팔트 위에 흥건히 번지는 핏물이었다.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치료는 꽤 오래 걸렸다. 아스라진 복숭아뼈는 몇차례 수술을 반복했으나 완치가 힘들었고, 퇴원 당시 도립병원 원장으로부터 “다시는 걷기 힘들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은주 씨는 불구로 사는 것이 죽기보다 더 힘들었다. 이를 악물고 걷는 연습을 한 결과 절뚝거리며 걷게 됐다. 그런데 더더욱 기가 찬 것은 불러오는 배였다. 입원했을 당시에도 엄마는 은주 씨를 두고 가버렸고, 대신 찾아와 간호해준 야학의 대학생 오빠에게 온통 의지하던 상황에 당한 일. 우여곡절 끝에 결혼을 하고 아기를 또 낳아 둘이 되었으나 남편은 밖으로 돌기만 했다. 그러던 중 어이없는 이혼과 함께 아이들을 모두 빼앗기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수면제를 먹고 두번 째 자살을 시도했으나 또 실패했다. 은주 씨는 끈질긴 생명줄이 지긋지긋했다. 아이들에게는 “하늘나라에 간 엄마”가 되어 버렸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때부터 그녀는 자포자기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가혹한 삶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느날, 우연히 사귄 친구를 따라나선 길이 그녀를 기지촌에 옭아매는 덫이었다. 인신매매가 판을 치던 ‘70년대 말. 그러나 이곳이 인연이 되어 미국으로 오게 됐다. 제2의 인생-- 두번의 국제결혼 실패, 싱글맘, 워킹맘 큰 딸아이의 아빠인 첫 미국인 남편을 만나 미국으로 온 은주 씨의 나이는 당시 28세. 어쩔 수 없는 한국의 현실에 치여 이곳까지 왔지만, 이곳에서도 가난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무책임한 남편은 둘째를 낳은 후 어디론가 가버렸고 이후 은주 씨는 정부보조 주택에서 푸드 스탬프로 근근히 살았다. 그러던 중 두번째 남편을 만났으나 그 역시 맞질 않아 헤어지고 아이 셋을 키우며 싱글맘으로 빈민가에서 살았다. “내 부모처럼 되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아이들을 보호하고 키우려 했다. 오로지 집념 하나로 버티는 세월이었다”는 것이 그녀의 말. “한국 그로서리, 식당 웨이추레스, 집 청소 등 안해본 허드렛일이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러던 중 그룹 하우스(Group House: 소수 그룹의 정신질환자들을 수용하고 돌보는 시설)에서 라이드, 식사 등의 보조 업무를 하게 됐다. 마침 그 시기에 맞물려 공부를 시작한 게 계기가 되어 지금 교육자(Clinical Coordinator)의 단계까지 올랐다”고 말했다. “한때는 어머니와 아버지 다 무척이나 원망했다”는 그녀. 하지만 “이제는 그분들을 이해한다. 너무 가난했고, 무지했다”고 말했다. 사랑하는 조국, 대한민국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산 세월이 더 많은 은주 씨. 한국에서 그녀의 삶은 약하고 무지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삶이었다. 붙어 있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직업 소개소와 기지촌을 전전하며 비웃음 속에 살아왔던 곳. 더이상 갈 곳이 없어 국제결혼으로 미국에 왔지만 이곳에선 절던 다리도 고쳤고, 이혼을 했을망정 아이들은 뺏기지 않았다. 편견은 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기회는 주어졌다. 공부도 하고 학위도 얻어 직업도 부상했다. 느즈막히 만난 현재 남편은 지극정성으로 은주 씨를 존중한다. 그런데도 한국이 그리운 것은 분명 사랑하는 조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끔 혼자 조용히 애국가를 부른다. 그리고 국제결혼가정선교회를 통해 한인 커뮤니티를 돕는다. 기지촌에 있을 당시 한달에 한번 찾아오는 엄마에게 모아둔 돈을 쥐어 주던 짝사랑처럼.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6] |
놈주 | |
....슬프네여..하지만...정말 잘 참아 내셨고 승리하셨습니다...감히 조용히 박수를 보냅니다...역시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있겠다" 라고 하신 말씀...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봅니다 Always say "Let god be exalted" | |
IP : 76.xxx.233.211 | |
도깨비 | |
자랑 스럽습니다. 축하 합니다. 승리 하셨습니다. | |
IP : 98.xxx.144.126 | |
seo1017 | |
이 세상은 성공한 사람만 기억해 주는 000 세상이지만, 이은주님의 스토리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인간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역경에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이 열정으로 많은 사람을 살리는 멋진 인생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토록 모진 세월의 풍파를 잘 견디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용기있는 당신 이은주님의 용기와 열정 인간승리에 다시한번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며 기회가 된다면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 |
IP : 146.xxx.129.91 | |
빚진자 | |
이세상에 태어나서 좋은 흔적을 남기려고 애쓰자 !!! 참 보람되고 목적이 있는 삶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양을 주지요, 이은주집사님 !! 너무나 자랑스럽고 마음이 흐믓합니다. 어쩌면 그렇게 인내심과 의지가 강하신지요,하나님이 집사님에게 특별히 주신 귀중한 은사 입니다. 잘 이겨내시고 잘 하셨어요, 국제선에 자랑이시며,희망이십니다.!! 앞으로 하실일이 너무나 많군요,영육간에 건강 하세요, 건강하셔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모든일을 맡으시면 열심히 하시는 책임감, 긍지,의지를 보이시며 우리들 뒤를 따라 오는 다음세대에 본이 되심을 감사 드립니다. 존경합니다.사랑합니다.샬롬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사장님 ,김현천기자님 !! 감사 드립니다.언제나 어디서나 우리 국제선일이라면, 늘 도와주시는 그 사랑 !!!얼마나 감사 한지요, 국제선서교회 일동들이 감사 드립니다.!!~~^+^ | |
IP : 65.xxx.188.96 | |
축하드려요 | |
축하드립니다. 외모도 너무 아름다우신데요? 이은주님과 자녀분들, 하시는 일 형통하시고 감사와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자랑스럽습니다. | |
IP : 24.xxx.147.6 | |
전망대 | |
자랑스럽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여성 장관 보다 더욱 아름답고 훌륭하게 보이는 분입니다. 625가 남겨준 그 질곡의 고통스런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삶에 대한 극복의 과정을 자랑스레 여기기 보다 오히려 부끄럽게 생각하는 이른바 엘리트 젊은층들이 늘어 나고 있는 특히 보스톤에서 이런 좋은 기사를 읽게 되어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보스톤 코리아에도 찬사를 보냄과 함께 기사의 주인공이신 분에게도 행복을 빌겠습니다. 감동스런 아침입니다. | |
IP : 50.xxx.62.253 | |
|
프리미엄 광고
161 Harvard Avenue, Suite 4D, Allston, MA 02134
Tel. 617-254-4654 | Fax. 617-254-4210 | Email. [email protected]
Copyright(C) 2006-2018 by BostonKorea.com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and Managed by Loopiv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