뛸 때마다 힘들다,  그러나 완주는 바꿀 수 없는 희열
보스톤코리아  2012-04-09, 16:21:18 
(보스톤 = 보스톤 코리아) 김현천 기자 = 116회 보스톤 마라톤이 오는 16일 개최된다. 정해진 코스에 똑같은 26마일의 길이지만 올해는 또 다른 숨은 이야기가 펼쳐질 전망이다.

지난 해 9월 이미 신청이 마감된 이 마라톤 올해 참가자는 총 26,561명. 그 중 한국으로부터 오는 참가자는 140여 명이다. 한국에서 오로지 마라톤을 위해 보스톤까지 날아오는 이들이 간직한 사연은 다양하다. 대표적인 몇 명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본다.

조은의
(32세, 전문직)
보스톤 마라톤 연속 4회째 참가, 최고 기록 3시간 22분인 조은의 씨는 당차고 자신만만한 전문직(English Communication Coach) 여성.
미국 유학생 출신인 조 양은 지난 2001년 보스톤을 방문할 당시 이봉주 선수가 우승하는 모습을 직접 지켜 보며 보스톤 마라톤의 꿈을 품었다.
지난 2008년 말 마라톤에 입문했고, 29세가 되는 2009년, 20대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보스톤마라톤에 출사표를 던졌다. 쉽지 않은 것에 도전해 보고자 했다는 것. 이후 10년 연속으로 참가할 계획을 가졌다.
처음 보스톤 마라톤 참가 자격을 인정 받기 위해 받았던 훈련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는 그녀. 당시 심한 부상으로 포기하라는 의사의 권유도 받았지만, 초지일관 집념으로 이겨냈다.
5년 째 마라톤을 하니, 건강은 물론 몸 관리는 절로 해결된다는 조 양은 “군살이 없어질 뿐 아니라 매 순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내느라 정신력도 상당히 강해졌다”며 “그야말로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특히 강한 현모양처를 꿈꾸는 여성들에게는 더욱 권하고 싶다고.
미국 젊은이들과 달리 한국 젊은 층들이 마라톤에 대해 관심이 적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그녀. 내년부터는 한국의 20대 젊은이들을 모아 보스톤 마라톤에 함께 참가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문영대
(55세, 사업가)
보스톤 마라톤엔 처음 참가하는 문영대 씨. 그는 지난 해 런던, 베를린, 시카고, 뉴욕 마라톤을 줄줄이 완주하고 올해 보스톤까지 진출한 속전속결파.
2009년 처음 마라톤을 시작한 그의 사연은 아들의 대학 입시와 깊은 연관이 있다. 재수를 결심한 아들을 기숙학원에 넣으며 자신이 아버지로서 극기의 솔선수범을 보이고자 한 것.
더구나 사업으로 인해 술자리가 잦은 탓에 건강이 좋지 않았던 문 씨는 이 참에 건강까지 챙기기로 단단히 결심, 이른 아침을 달리기로 열기 시작했다.
결과, 아들은 대학 입시에 성공했고, 문 씨는 건강을 챙기게 됐다. 술자리를 피하니 아침이 가볍고, 귀가 시간 역시 빨라져 가정은 절로 ‘행복이 가득한 집’이 됐다는 것. 건강은 더욱 증진됐고, 자연히 자신감이 붙더라고.
하지만 베를린에서 달릴 때 완주지점 50 미터를 남겨 놓고 너무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대회 출전 전 풀코스 연습을 10회에 걸쳐 하는 동안 한번도 중도 포기한 적이 없었는데, 포기를 생각한 순간이었다고. 오죽하면 사나이 대 장부가 눈물이 핑 돌았을 정도. 하지만, 시간이 좀 걸렸을 뿐 3시간 4분만에 완주했다.
세계 5대 마라톤을 3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 그의 목표. “70세까지, 뛸 수 있는 한 마라톤을 할 것”이라는 그의 목소리에서 탄력이 느껴졌다.

유예준
(57세, 태권도 사범)
지구 한 바퀴, 4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게 목표라는 유예준 씨. 강원도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사범이다. 현재 반바퀴는 달렸다니 2만 킬로 더 달려야 한다.
그래서 그는 울트라 마라톤, 즉 42 킬로미터 코스를 42시간 내 완주하는 질긴 마라톤에 참가해 왔다. 평지와 6개 정도의 산을 밤낮으로 달리고 걷고 하는 이 마라톤은 코스가 풀코스보다 긴 대신 여유롭다고.
강원도에서 태권도협회장, 육상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이번에 협회원 중 11명의 참가자를 인솔하고 온다. 또한 태권도 사범답게 태권도복을 입고 달릴 거라고.
러닝복보다 1킬로그램 정도 더 나가는 도복 탓에 다소 기록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수단이기에 즐거이 입을 수 있다고 전했다. 평생 태권인으로 산 삶을 보스톤 마라톤에 새겨 넣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10년 전, 교통사고 후 치료를 위해 담배를 끊었고, 그로 인해 마구 불어난 살로 건강이 더욱 악화되었던 그. 태권도 사범으로 체면이 말이 아닌 상황을 겪었다. 당시 173 미터의 신장에 체중이 83 킬로그램에 이르렀다는데.
급기야 그는 살을 빼기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고 8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덩달아 건강 또한 좋아졌다. 특히 등근육이 발달돼 허리가 좋아졌다고.
이번 보스톤 참가를 앞두고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는 그는 강원도 태권도 협회장인만큼 협회원들의 성원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차종진
(70세)
이번 한인 참가자 중 가장 고령인 차종진 씨는 그야말로 마라톤 정신을 고스란히 삶으로 보여준 장본인이다. 70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면학의 꿈을 이룬 그는 마라토너의 끈기와 집념이 한몫했다고. 지난 2006년 중학교에 입학한 후 올 2월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했다.
8세때 6.25 전쟁을 겪고, 가난한 시대를 살며 공부할 새가 없었던 그. 식솔들을 이끄느라 바쁘고 고단한 틈에도 늘 공부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어느새 나이는 들어 50의 중년을 훌쩍 넘기고 있던 때, 왠만큼 먹고살만해 지니 건강에 적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이에 마라톤에 입문해 20여년을 달렸고, 그동안 늘어난 것은 끈기와 추진력이었다고. 중학교에 입할 당시인 6년 전까지만 해도 풀코스를 3시간 안에 완주했다니, 그의 만학이 새삼 놀랄 일만은 아니다.
어느날 산행 마라톤을 하던 중 누군가에게 얻어 먹은 초콜렛이 허기를 달래는 데 도움이 된 이후, 한 때 배낭에 초콜렛을 충분히 넣고 달렸다는 그. 배낭에는 “배고픈 누구라도 말씀하시라”는 글귀를 부착한 탓에 집중을 받기도 했다는 일화를 전했다. ‘베푸는 삶의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싶다고.
그는 마라톤을 두고 “뛸 적마다 힘들다. 하지만 완주 후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다. 나와의 약속을 지켜 낸 결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희의 나이를 맞은 그는 “인생은 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는 것도 중요하다. 웃으며 갈 수 있으려면 살아 생전 건강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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