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 행 / 후 / 기 : 사랑하는 당신에게... |
보스톤코리아 2012-02-13, 13:20:26 |
여보. 이민 생활 10년 만에 산과 늦바람이 난 나를 위해 제일 바쁜 날인 토요일에 나만의 시간을 허락해줘서 고마워.
2주에 한번씩 만나는 산에게 잘 보이고 오라고 멋진 등산복을 장만해줘서 고맙고. 여보, 지난 토요일엔 Lafayette 이라는 산엘 갔다 왔어. 지난 늦가을, 두번째 산행에서 갔던 산인데. 눈 온 뒤의 모습은 또 다르더군. 남들은 산을 호연지기, 혹은 그 웅장함으로 인해 남자로 비유하지만, 난 산이 여자 같아..볼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여자.(난 여자랑 잘 맞나 봐. 집에도 온통 여자뿐 이고) 계절마다 옷을 갈아 입어야 하고, 계곡 구석 구석까지 아름답게 치장하는 모습이 천상 화장한 여자같아.. 물론 당신보단 덜 이뻐.(불편한 진실은 말하지 않을께. 나도 이젠 편히 사는 법을 알아) 당신이 그랬지? 산을 다녀오면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맞는 말이야..산이 여자라서 그런건 아니고.. 그 이유를 어제 알았어. 세상에선 사람이 무서운데. 산에선 자연도 좋지만, 산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좋아..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문제되지 않고, 배움이 많고 적음도 그냥 산속에선 무용지물이야. 돈이 많아도 같은 라면 먹어..잘 생기고 못 생긴 것도, 중간쯤 올라가서 땀 범벅이 되고 나면 다 멋져 보여. 이런 외형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산에서 만난 친구들은 서로 위한다는거야. 어제는 힘들어하는 한 산우를 뒤에서 독려하면서 정상을 밟게 했지..나 혼자 먼저 올라가면 더 쉬웠을텐데, 난 나를 버리고 그분을 도왔지..정상을 같이 밟았을 땐, 그분보다 내가 더 기분이 좋더군.. 그게 산 인 거 같아..세상 속 에선 상대를 밟아야 내가 일어설 수 있는데..산은 나에게 경쟁보단 함께 하는 법을 가르쳐줬어. 정상에 올랐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어. 아주 짧은 시간만 머물다가 다시 내려 가야 하거던. 그리고 내가 정상 이라고 생각한 그 곳도 더 높은 정상을 만나면 그것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였음을 알게 될 터이니. 여보.. 그래도 짧은 시간 누린 정상에서의 감회는 새로웠어.. 오르느라 흘린 땀을 바람이 닦아주고. 아래를 보며 “어이~~”소리도 질러보고..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강풍에선 잠시 돌아서서 바람을 피하는 지혜도 배웠지..난 왜 그 동안 힘든 상황이 생기면 돌아가는 지혜를 못 배웠을까? 맞받아 싸우다 힘들면 포기하고..화내고..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짧은 시간 동안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도 조금 흘렸지..“아버지.. 우리를 키우며 힘든 일이 생겼을 땐 어떻게 하셨어요?”라고 여쭤봤지. 아버진 그저 허허 웃으시더라. 당신 기억해? 영주권 심사가 진행중이라 아버지 돌아 가실 때도 한국방문 못 한 거. 아버지께 잘 가시라는 인사말을 못 나눈게 늘 마음에 걸려. 근데 참 이상하지? 산에 가면. 따뜻한 아버지의 온기를 느끼곤 해..그 온기를 느낄 땐 눈물이 나오고 그래. 미안해서. 아직도 초보지만 이젠 조금씩 주변을 보는 여유가 생겨. 무조건 빨리 정상에 도착하는게 제일인줄 알았는데.. 빨리 보다는 천천히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상에 오르는 게 중요한 거 같아. 우리 아이들에게도 말해주고 싶어.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빨리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힘들면 쉬어가며..끝까지 오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성공이 늦은 것이 아니라..준비를 충분히 하느라 늦게 출발했을 뿐이라는 것을. 여보, 그런데 어제 산행에선 또 다른 성공을 배웠어.. 체력의 문제로 정상 아래 헛에서 포기하고 쉬고 있다가 하산한 친구들이 있었지. 나는 헛까지 와서 포기하면 산행 헛했다고 농담을 했지..피자 헛 시켜 먹고 놀았냐고 농담하고.근데 다른 각도에서 생각하니 그게 아니더라고,, 내가 정상에서 허겁지겁 라면 한그릇 먹고 내려 오는 시간에 그들은 정상 아래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면서, 그 시간을 즐긴거지. 사진도 찍고,우리 인생도 그런거 아닐까?? 아둥바둥 세상적인 성공에만 몰두하다가 그 좋은 시간에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다 커 버려서, 성공의 전리품을 나누고자 하나 그땐 아이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고. 좀 천천히 성공하더라도 우리 이쁜 두 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것도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난 두 딸 앞에 앉혀놓고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는 시간이 참 좋아.. 정상을 밟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래를 보며 소리를 지르거나 손을 흔들 필요는 없는 것 같아.. 그들도 산이 허락해준 멋진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일 테니.. 산은 나에게 교만을 내려 놓으라고 가르쳐주네..아래에 있든, 위에 있든 다 같이 산속에 있는거라고. 이젠 정상 정복도 중요하지만 충분히 즐기는 산행을 해야겠어.. 산을 오르다가 숨을 고르며 돌아 본 경치는 늘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그것은 창조주께서 만든 장관에 대한 감사의 탄성일수도 있고..내가 힘들여 올라 온 결과에 대한 뿌듯함일 수도 있고.. 우리의 인생도 돌아 보면 늘 아름다우면 좋으련만.. 어쩌겠나 내가 걸어온 길인것을. 나쁜 기억들은 추억이라는 단어 속에 통과시켜서 보면 한결 나아 지겠지.. 여보.. 당신과 내가 남남으로 만나서 결혼을 통해 친구가 된 것과 같이 (나도 알아 당신은 날 왠수로 생각한다는거.ㅠㅠ) 타인으로 만나서 같이 오르고, 내려 오면 어느새 친구가 되는, 그곳…. 산. 난 그 산과 앞으로 계속 바람을 필 테니 너무 질투는 말아줘.. 그래도 질투가 나면 그 산으로 같이 갑시다. 사랑하는 그대의 그대로 부터. P.S 내년에 히말라야 보내줘. 보스톤 산악회 회원 정 인 균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의견목록 [의견수 : 2] |
딩굴이 | |
감동과 유머가 함께 있는 재치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 |
IP : 24.xxx.62.177 | |
산메아리 | |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 산을 사랑하는 마음,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 진한 감동으로 전해 옵니다.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
IP : 66.xxx.65.2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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