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전쟁 |
보스톤코리아 2012-02-06, 11:18:23 |
1848년 2월 2일, 멕시코와 미국은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북쪽 근방 구아달루페 이달고에서 1846 발발한 멕시코-미국 전쟁 (Mexican-American War)을 끝내는 조약 (The Treaty of Guadalupe Hidalgo, Tratado de Guadalupe Hidalgo)에 서명한다. 조약의 핵심부분은 영토 문제다. 멕시코는 본래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 후 줄곧) 자국의 영토였던 약 1.36 million km² (525,000 square miles, 한반도의 약 6배 면)의 영토를 미국에 양도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1500만 달러를 지불하게 된다. 미국인들에게 멕시코인들이 진 빚 325만 달러의 채무를 미국 측에서 탕감하기로 했다.
워낙 넓은 땅이니 감이 잘 안오겠지만, 이 조약으로 미국이 양도 받은 땅은 현재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전체와 현재의 와요밍, 콜로라도, 뉴멕시코의 일부와 아리조나 지역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광대한 영토다. 게다가 1845년 미국에 합병한 텍사스 공화국 (현재의 텍사스 뿐만 아니라, 오클라호마, 콜로라도, 캔자스의 일부가 과거 텍사스 공화국의 영토였다)의 영토까지 미국의 영토로 확정시켰으니 미국은 고작 만 2년짜리 전쟁을 치르고 어마어마한 전리품을 챙긴 셈이다. 1848년 조약이 체결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853년에는 현재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의 나머지 영토를 “평화적으로” 매입 (Gadsden Purchase)함으로써 미국과 멕시코 간의 영토는 리오 그란데 강으로 확정이되었다. 현재 미국 남서부의 지도는 1850년을 전후로 채 10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에 안성된 것이다. 이 기간의 영토 확장을 뒷받침했던 개념적 근거가 바로 “서부로 영토를 넓힘으로써 ‘원주민의 야만’ 대신, (앵글로 색슨계) 미국인들의 이념과 제도를 미개한 땅에 이식시키는 개척이야 말로 신이 미국에게 주신 소명”이라는 이른바 명백한 운명론 (Manifesto Destiny)이다. 매파 (워 호크, War Hawk) 정치인들의 이념 기반인 명백한 운명론은 1845년 저널리스트 존 오설리번(John O'Sullivan)이 그 용어를 사용하면서부터 각종 대중 매체 (Penny Press)를 통해 재생산 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멕시코 전쟁 즈음, 미국인들 사이에 멕시코와의 전쟁을 반대하는 여론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가령 당대의 지성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시민의 불복종 (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 Civil Disobedience)>에서 “불의가 당신에게 하수인이 되라고 요구한다면, 분명히 말하건대, 그 법을 어기라”고, “부당하게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정부 아래에서는 정의로운 사람이 있어야 할 진정한 장소야말로 바로 감옥”이라고 역설하곤 했었다. 여기서 소로우가 미국 정부의 “정의롭지 못한” 면모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 노예제와 더불어 멕시코 전쟁이었다. 소로우의 스승인 랄프 왈도 에머슨 역시 멕시코 전쟁으로 드러난 미국의 폭력적인 면모를 수치스럽게 여겼다. 또한 헨리 클레이를 비롯한 주로 휘그당 혹은 자유토지당 계열 일부 정치인들은 영토 확장의 결과 새로운 영토에서 노예 제도를 허용할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싼 자유주와 노예주 간의 심한 갈등을 우려하여 멕시코 전쟁에 반대했었다. 하지만 1840년대 중반의 여론은 이미 전쟁으로 기울어 있었다. 1844년의 선거 결과가 그 반증이다. 1844년 대통령 선거의 쟁점은 휘그당의 헨리 클레이가 주창한 경제 활성화에 촛점을 둔 <아메리칸 시스템>과 민주당의 제임스 포크가 주창한 팽창주의 노선 간의 선택이었으며, 결과는 제임스 포크의 승리로 돌아갔다. 제임스 포크는 선거 슬로건으로서 54°40' ("Fifty-four Forty or Fight!” )와 “텍사스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다”를 내세웠다. 54°40'는 오레곤 전역 (현재의 워싱턴주, 오레곤주,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럼비아 지역)의 북위 경계를 의미하는데, 영미 전쟁이 끝난 1818년 이후 영국과 공동 소유 공동 관리하던 지역이었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생기면서 이 지역을 미국의 영토로 편입시키는 것이 뜨거운 이슈였던 것. 텍사스의 경우,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1836년 멕시코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한 직후 미국 연방에 가입신청을 했던 텍사스 공화국 (Republic of Texas)의 합병 문제가 재점화된 것이다. 노예제를 허용하고 있는 텍사스가 합병됨으로써 다시 노예제 논쟁이 불붙을 것을 우려했던 미국 정부는 애초에 텍사스의 합병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1844년의 상황은 달랐다. 텍사스 합병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포크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이 된 것이다. 그리고 텍사스 합병은 결과적으로 멕시코 전쟁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데 많은 역사학자들은 멕시코-미국 전쟁을 더러운 전쟁 (Dirty War)라 호명한다. 우선 이렇다할 명분도 없이 강한 나라가 영토확장이라는 야심을 이루기 위해 도발한 전쟁이었기때문이다. 또한 당시 멕시코는 스페인 (에스파냐 제국)으로부터 독립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으로 군사적으로 미국에 비할 바가 못되었는데, 미군은 수도 멕시코시티의 목전까지 진격하여 승리를 얻어냈다. 그 멕시코 전쟁은 결국 남북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한 계기가 되었다.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하기 불과 반세기전, 미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이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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