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공사의 노력으로 왕실과 내각 사이도 다소 호전되었다. 이노우에 공사는 국왕 전하께 간청하여 갑신정변(1884년)의 대역부도죄를 범하고 일본과 미국에 망명 중에 있는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당 인사들을 불러 들이게 하였다. 철종 대왕의 부마 박영효는 갑신 정변 후 서광범, 서재필과 함께 미국에 망명했다가, 얼마후 일본으로 와서 동경도 국정구(고지마차구)에 ‘친린의 숙’이라는 한인 학교를 설립, 한인 청년과 아동들을 모아 교육하는 한편, 일본 정계의 거물들과 교제를 넓히면서 일본 주재의 서구열강의 외교관과 접촉하여 세계정세를 살펴 유능한 정가이다.

국왕은 1894년 11월 9일 갑신정변의 죄인 김옥균, 홍영식, 서광범, 박영효, 서재필 등을 그 가족과 함께 사면복권하는 대사를 내렸다. 서광범이 미국에서 10년만에 돌아왔다. 박영효는 유혁로, 이규완, 정란교, 이의호, 이규현을 데리고 1894년 11월에 환국했다. 국왕전하는 12월 15일 김홍집 총리께 새 내각의 구성을 명령하셨다. 제 2차 김홍집 내각이다. 1894년 12월 17일에 발표된 제 2차 김홍집 내각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이 제2차 김홍집 내각에 해외에서 나갔던 쟁쟁한 인사들이 많이 기용되었다. 국왕께서 신내각에 명하여 주권적 독립을 실현하고, 타국의 가섭을 배제하는 자주적인 개혁을 취진하라는 칙서를 내리셨다.
다사다난했던 갑오년의 세모가 다가왔다. 연말 인데도 아랑곳없이 개혁사업을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국왕께서는 12월 18일 자주 독립을 서언하는 칙령을 발표하시고, 나라의 연호를 개국 503년으로 기념할 것을 선언하시었다. 정부는 왕실의 권한과 내각의 정치적 책임을 확실히 하기 위하여 왕실법전을 정하고 국법의 기본이 되는 홍법 14조를 제정하였다.

홍법 14조의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홍법 14조>
제 1조: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 독립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 2조: 왕실의 규범을 제정하여 왕위의 계승을 왕족만이 하고, 왕족과 친족과의 구별을 확실히 한다.
제 3조: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치를 행하고 종친과 외척의 내정 간섭을 허용치 않는다.
<중략>
제 6조: 납세는 법에 의하여 규정하고, 함부로 징수하지 못한다.
제 7조: 조세의 징수와 제정의 지출은 탁지부의 관할에 속한다.
<중략>
제 조: 민법과 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제 14조: 문벌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한다.

홍범이란 말은 ‘시경’에서 얻은 것으로 그것은 천하의 대권을 뜻하는 언어이다. 이 홍범 14조는 헌법과 같은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만들어진 법치국가의 기초로서, 그 정치적 내지 역사적인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갑오년을 마지막 보내는 12월, 전라도에서 농민군이 다시 봉기했다. 농민군은 호남지방을 휩쓸면서 나주, 둔봉, 순창 등을 공략하고, 순천의 전라 좌수영을 공격하려다가 일본 수비대의 반격을 받아 수만의 희생자만 내고 물러나고 말았다. 농민군을 이끌던 동학당의 간부 전봉준과 성두환 등 20여명이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1895년 5월 7일에 열린 재판에서 전봉준, 성두환, 최경선, 손화충, 김득명 등 간부는 사형에 처해졌고, 그외는 죄의 경중에 따라 원근에 각각 유배되었다. 1년여에 걸친 농민란은 시민 혁명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냉혹한 국제 현실에 말려들어 수십만의 희생자만 내고 성과없이 끝나고 말았다.

백린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 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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