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 Mt.Washington
보스톤코리아  2011-09-26, 11:31:00 
“산에 가면 뭐가 좋아요?” 참 바보같은 질문을 부모님께 드렸습니다.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낄 수 있어서 좋아.” 라고 하신 아빠, “좋은 기운과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좋아.” 라고 하신 엄마. 그 대답이 충분하지 않아서였을까요? 같은 질문을 언니들과 오빠들에게던졌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정상에 올라섰을 때 느껴지는 기쁨, 해냈음으로 인해 느껴지는 뿌듯함, 그리고 자연이 수고한 나에게 주는 선물 같은 풍경이 좋아.” 였습니다.

산 을 좋아하는 가족들 중에서 유일하게 산행을 따라나서지 않는 딸/동생에게, 억지로 가는건 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던 가족들에게 미안해서였을까요? 처음 보스턴 산악회 얘기를 들었을 때 귀가 솔깃해지더군요.하지만, 게으름과 겁으로 똘똘 뭉친터라 쉽사리 산에 가겠다는 생각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언니, 진짜 죽을 것 같이 힘들어요. 그리고, 지금도 온몸이 아프고 힘들어요. 하지만, 정말 좋아요. 언니가 정말 좋아할 것 같아요." 라고 말하며 절 보던 친한 동생의 얼굴이 제 마음을 조금 움직였던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된 한 걸음에 주변분들이 해주신 이야기로 여러 걸음이 더해져서, 지난 20일에 첫 산행을 하게 됐습니다. 도저히 제 자신을 믿을 수가 없으니 일단 제일 끝조로 신청을하고, 혹시라도 맘이 바뀔까 싶어 얼른 등산화를 샀습니다. 그렇게 설레임 반 두려움 반으로 보낸 시간이 가고, 토요일 아침. 드디어 첫 산행이 시작되었습니다.

Mt. Washington. 혹시나 싶어서 찾아본 사진엔 돌만 보였으니, 잔뜩 겁먹고 긴장한 채로 trail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0여분 갔을까요? 끝조의 목적지였던 Gem Pool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더군요.

갑 작스레 끝조가 사라지는 순간 들리던 소리."여기까지만 오고 안가면 후회할텐데",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야", "왔으면 하늘은 보고 가야지", ...... 팔랑~ 팔랑~ 귀가 움직이더니 맘도 움직이고 다리도 움직이더군요. 그렇게 다음 단계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나 속은거지?' 라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많이 가파르더군요. 거기다 돌만 보이고. 돌아갈 길도 막막하고. 방법은 하나, 그저 오르는 것 뿐이더군요. 네 발로도 오르고, 두발로도 오르고. 그렇게 오르다 하늘 한조각이 보일 때 쯤, 석봉님이 한마디 또 던지셨습니다, 제 팔랑귀에게. "이제 다왔어. 하늘보이면 다 온거야." 그말에 기운이 나더군요. 그렇게 해서 Lake of clouds hut까지 갔습니다.

이쯤하면 되었다 싶은 생각을 잠시하고 있는데, 이젠 들꽃향기님과 통통이님, 거기에 해피님까지 거드십니다. "정상 얼마 안남았어. 힘든거 다 지나갔는데 뭐. 여기까지 왔으면 정상은 밟아봐야지." 이말에 슬쩍 정상을 한번 봤습니다.

흠. 진짜 별로 안멀어 보이고, 좀 덜 힘들어보이더군요. 보는 것과 달리 가보면 은근히 멀고 힘들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정상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White Mountains의 이름에 대한 유래도 듣고, 석봉님이 이름붙이신 Mt. Washington의 '천지'도 구경하고, 이런저런 얘기도하고, 사진도 찍고, 하늘도 보고, 산도 보고, 좋은 날씨 내려준 대자연에게 감사도 하면서.

그렇게 정상에 오르고나니, 정말 행복하더군요. '아~ 이 기분이 언니랑 오빠가 말한 그 기분이구나' 싶고, 스스로가 대견했고, 산에 오르는 내내 생각나던 가족들에게 고맙기도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첫산행 기념으로 정상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냈더니 이런 답장이 오더군요. "산의 세계에 들어온 걸 환영해. 이제 산에 가면 뭐가 좋은지 알겠어?" 아직은 뭐라 대답할지 다 알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하나는 확실히 압니다.

정상에서 마셨던 물이 더없이 시원했고 내려오면서 나눠먹은 오이 반토막이 참 달았으니, 다음에도 trail 입구에서 모기약 뿌리고 준비운동을 하고 있을거라는 것을.

보스톤산악회 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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