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백제(百濟) 장외사(場外史)를 펼치면서
보스톤코리아  2011-06-06, 15:17:08 
역사를 바라보는 해석은 당사자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한일 고대사 역시 일본과 한국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다.

일본 사람들의 생각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에 임나본부 같은 세력권을 가지고 있었고, 고구려를 비롯한 삼한삼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일본서기나 고사기가 이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으니 일본인들은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일본의 사서(史書)가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우리 역시 문제가 많다 일본은 우리보다 한 수 아래에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어왔다. 그러다가 두 번씩이나 별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옆집 불한당에게 안방까지 빼앗겨 버린 적이 있었지만 아직도 일본 우습게 알기로는 세계에서 한국 따라갈 나라가 없다.

예전에 두 나라. 특히 백제와 왜국은 보통관계가 아니었다. 일본 아스카의 유적을 보노라면 형제와 같은 관계였다. 사실은 진짜로 형제였다.

한일 두 나라 사람들은 1400년 전 역사의 현장에서 진실된 만남을 가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결코 자만심을 돋우거나 열등의식을 보상받으려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진실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6년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백제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 다녔다.

서울 근교만 해도 하남 위례성으로 짐작되는 풍납토성, 몽촌토성, 하남시의 이성산성, 아차산성이 있고 송파구에는 석촌동, 가락동, 방이동에 백제고분들이 널려있다.

또 일본의 근기 지방에는 백제 도래인들이 건설한 수많은 아스카의 유산들이 남아있다.

작년 10월에는 공주, 부여, 익산을 거쳐 오오사카, 가와찌, 나라(奈良), 교토, 시가현에 널려있는 고대 백제 문화, 즉 “아스카 문화”를 답사하였다. 혼자 보기 아까운 것도 많아서 Boston Korea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한다.

백제 역사를 기록한 우리나라 사서(史書)로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두권 뿐이다. 삼국유사 백제 본기(本紀)는 겨우 3page에 실린 기록이 전부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는 제법 많이 기록되어 있지만 신라사가 원류가 되어서 백제사는 소외된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원래는 백제 사람들이 편찬한 백제 사서(史書)들이 있었다.

근초고 왕때부터 개로 왕 때까지 9대(364-475)에 걸쳐서 기록한 백제기(白濟記), 21대 개로 왕부터 25대 무령 왕때까지 5대(455-523)에 걸쳐 기록한 백제신찬, 무령 왕부터 27대 위덕 왕 원년까지 3대(501-557)에 걸친 백제 본기 등 3가지 사서가 있었고 백제 지리지(地理志)가 있었다.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고 일본서기(日本書記)에서 이상에 열거한 백제사서를 참고로 하였는데 백제기에서 다섯번 참고하였고, 백제신찬에서 세번, 백제 본기에서 열번을 참고 인용하였다.

일본서기는 백제가 망하고 난 다음 백제 왕족의 혈통을 가진 천무천황(天武天皇)때 편찬한 책인데 스승의 나라, 조상의 나라인 백제에 대한 과거의 기록을 모두 지워 버렸다.

백제에 대한 이미지가 일본인들 머리에 남아 있는 한 일본은 영원히 백제에 예속된 나라로 남아 있게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 서기의 기록도 의도적으로 왜곡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도 백제 고대사에 관한 한 읽어 볼 가치가 있는 기록이 있다. 또 중국의 역사서에도 백제에 관한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실려 있지 않은 4가지 백제 역사가 일본 서기와 중국 사서에 실려있다. 이것을 백제 장외사라고 한다.

백제 장외사를 알면 아스카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스카로 떠나기 전에 장외사를 간단히 소개한다. 백제 장외사는 네 가지를 꼽을 수 있다.

1)백제의 호남, 가야 평정사
한성백제 시대만 해도 전라남도 지방은 백제의 후국(后国)이었고, 가야는 신라가 합병하기 전에 백제가 먼저 평정하였다. 중국의 많은 사서(史書)에 기록되기를 백제가 요서와 양자강 하류, 왜국에 걸쳐 넓은 영토를 소유한 대국으로 기록 되어 있다.

2)규슈의 고마국(固麻国)은 백제의 후국이었고, 규슈 동북에는 신라의 후국 쯔꾸시 왕국과 하다씨(秦氏)왕국이 있었다.

3)개로왕의 동생 곤지(琨旨)왕이 가와찌(河內)에 세운 아스까베(飛鳥戶)왕국은 백제의 후국이었다.

4) 소가(蘇我) 씨 왕조사

백제 문주왕 때의 목리만치 장군이 일본에 건너가 소가(蘇我) 씨로 성을 바꾸는데 120년 동안 5대를 이어가면서 수석 대신이 되었고 일본 천황의 황후와 황비는 모두 소가 씨 집안에서 독점을 하였다. 당시의 천황들은 모두 소가 씨 집안 여인들의 소생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일본 왕실을 소가 왕조라고 부른다.

아스카 문화는 소가 씨 집안의 작품이라 해도 무리가 없는 말이다. 아스카 유적 하나하나에 소가 씨가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삼국유사에는 중국의 사서(史書)를 인용해서 백제의 영역을 소개한 기록이 있다.

구당서(舊唐書)에 이르기를 백제는 부여의 별종(別種)이다. 동북쪽은 신라이고 서쪽은 바다를 건너 월주(越州)에 이르며 남쪽은 바다를 건너 왜국에 이른다(월주는 양자강 하류의 강소성, 절강성을 말한다).

신당서(新唐書)에는 백제는 서쪽으로 월주와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왜국인데 모두 바다를 건너게 된다.

문헌비고에서는 와신상담의 주인공 월왕(越王) 구천이 말하길 “고도를 둘러싼 수천 리가 모두 다 백제 땅이니라”고 했다.

삼국사기에 신라의 학자 최치원(崔致遠)열전에서 그는 “고구려와 백제가 전성했을 때는 강병이 각각 100만 이어서 남으로는 오월(吳越)을 침공하고, 북으로는 북 중국의 유, 연, 제, 노의 지역을 흔들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송서(宋書)에는 백제는 진(晉)나라 때 요서, 진평 두 곳에 백제 군을 가지고 있었다고 적고 있다. 고구려는 요동을, 백제는 요서를 차지하였다.

양서(梁書)의 백제 전에는 요서, 진평 등 화북지방에 백제 군이 설치되어 수(隨)가 중원대륙을 통일할 때까지 백제가 이곳을 다스렸다고 기록했다.

당시에 신라는 작은 나라로 양 나라에 사신을 보내면서 스스로 올 능력이 없어서 백제의 사행(使行)을 따라 온 것으로 기록되었다. 그 당시에 중국은 백제를 해동성국(海東盛國)으로 불렀다.

11대 비류 왕(比流王)때 요서와 진평 두 군을 차지하였고, 근초고 왕과 근구수 왕 때에는 산동성, 강소성, 절강성 등지를 공략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많은 중국 사서에서 백제는 부자나라며 강한 나라로 소개되고 있다.

왜 그럴까? 첫째는 농사에 적합한 한강 하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작은 국토일망정 넓지만 척박한 땅을 소유한 고구려에 비해 소출이 많았고 인구가 자연히 몰려 들어서 이것이 국력의 신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참 전성기에 백제의 전체 호구 수가 15만 2천 300호였는데 백제보다 훨씬 넓은 영토를 소유한 고구려의 호구 수는 21만 500호로 백제와 비슷하였다.

두 번째는 3국 중에서 제일 해상활동에 능숙하여 해운업을 독점하고 있어서 바다 건너 활동에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왜국(倭國)에도 손쉽게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주위의 모든 나라에서 한강 하류를 넘보기 때문에 백제가 당한 수난도 많았다.

BC 18년에 건국해서 4세기까지만 해도 말갈, 낙랑, 대방, 고구려, 신라 등 주변 국가들과 76회의 전쟁을 치렀다. 같은 기간에 고구려는 64회, 신라의 57회에 비교하면 전쟁으로 시작해서 전쟁으로 끝을 낸 나라가 백제였다.

특히 고구려하고는 근초고왕부터 아신왕까지 다섯 왕이 18번이나 전쟁을 하였다. 아신왕 때는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크게 당하면서 백제의 기가 꺾이기 시작하였다.

광개토왕 비에 적힌 내용이 이렇다.

대왕이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를 쳤다. 백제는 58개의 성을 빼앗기고 왕(아신왕)은 고구려(광개토왕) 왕 앞에 무릎 꿇고 영원히 대왕의 노객(종)이 되겠다는 맹세를 했으며, 남녀 생귀천이, 세포천필, 왕의 동생과 대신 10명을 바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백제 사람들이 일본 열도로 이주하면서 아스카 백제 문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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