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운동을 통해 본 서구 기독교의 쇠퇴와 성장 그리고 제삼세계 기독교의 발흥 - 47 |
보스톤코리아 2006-11-01, 00:19:58 |
종교 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영국과 유럽 교회의 쇠퇴
사유화( Privatization) 유럽은 언제나 국가와 교회 사이의 긴장관계에 있어 왔다. 기본적으로 가족이라는 세계와 가족 구성원과 협력 관계에 있던 종교는 사유화라는 과정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여가를 추구할 수 있게 되었다. 데이빗 마틴은 "세속화 종합 이론(General Theory of Secularization)"에서 다음과 같은 전제를 하였다. 유럽은 기본적으로 로마 제국을 통해 단 하나의 황제(one Caesar)와 한 분의 하나님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개의 나라가 되면서 다양성을 함포하게되었다. 유럽 종교의 형태들은 황제와 하나님 사이의 동반자적 관계에 오는 긴장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국가의 통합과 일치와 종교 사이의 관계에서 오게 된 것이다. 영국의 기독교 국가 형태는 제도권 교회와 교회의 가르침이 국가의 권위 구조를 통합시키는 부분으로 형성되었다. 기독교 가치와 믿음들은 더 이상 사회 전체를 지탱할 수 없는 새로운 시대에 들어 갔음을 보여 준다. 초기 빅토리아 재위시 영국 국교회의 전부와 많은 감리교도들은 국가가 제도권 교회로서 하나의 교회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왜 빅토리아 재위시에 일어난 변동들이 그 이전과 이후의 영국인들의 의식구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1790년대에 유럽 대륙으로부터 불어 온 프랑스 혁명은, 산업화와 관계 되어진 사회적 그리고 인구변동적 격변의 모든 요소와 함께, 그 후에 있게 될 근대사의 조류를 바꾸어서 감리교회나 기타 제도권 외에 있는 기타 복음주의 소규모의 교파나 교단들이 힘있게 약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 1880년과 1890년대에는 다윈주의(Darwinism)가 흥기하였고, 정경적 성서신학이 성서비평으로 말미암아 공격을 받게 되었다.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권위와 청교도주의는 모든 면에서 공격을 받게 되었고, 이제는 영국과 유럽 전역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빅토리아 재위시에는 기존의 종교적 믿음과 행위가 지성인과 종교인들로터 폐기되기 시작하면서 20세기 초엽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사유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게 되면서, 제도권 교회, 국가 교회, 공교회로 불리워지던 교회가 이제는 국가와 상관없는 사유화된 교회가 된 점은 이미 뇌사한 사람이 심장 박동까지 멎게되는 사건과도 갖은 맥락이 되었다. 이러므로 종교적 믿음을 유기한 확신에 찬 비신자과 타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상당한 수준으로 증가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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