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닉슨을 파멸시킨 것은 어쩌면…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짓말 |
보스톤코리아 2010-11-22, 14:13:17 |
“I am not a crook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 1973년 11월 17일 플로리다 주 올랜드. 400여명의 기자들이 모인 가운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워터게이트 사건의 “몸통”이 닉슨 자신이었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는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은 자진 사임 (1974. 8. 9) 함으로써 대통령직에서 물러났지만, 닉슨의 발언, I am not a crook은 희대의 거짓말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된다.
워터게이트 사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전국위원회 사무실이 세들었던 워터게이트 단지의 한 빌딩에 침입한 도둑 일당이 체포되었다 (1972.6.17). 단순 절도 사건으로 알려진 워터게이트의 시작이다. 나중에 조사가 진행되면서 드러난 것처럼, 닉슨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정치인과 비판적 지식인들, 행정부 내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이고 광범위한 사찰활동을 벌였었다. 워터게이트사건 역시 단독 사건이 아니라 그 사찰활동의 일부로, 닉슨 측 비밀공작원들이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의 출마 예상 후보에 대한 정보를 빼내기 위해 설치한 도청장치를 수리하던 와중에 발각된 것이었다. 얼마 뒤, 제임스 맥코드의 수첩에서 대통령 측근인 에드워드 하워드 헌트 백악관 사무실 전화번호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한때 닉슨 재선 캠프를 이끌기도 했던 존 미첼 법무부 장관은 백악관과 침입사건의 연결고리를 완강히 부인했고, 백악관도 부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972.8.30). 이 사건에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간파한 사람들은 있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신참내기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보석 심리를 위한 재판 도중 범인들 중 버나드 바커와 제임스 맥코드가 “전직 CIA 요원”이었다는 데서 “뉴스꺼리”를 직감하고 끈질긴 탐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익명의 제보자의 도움으로, 닉슨 재선 캠프에서 범인중 한 명의 계좌로 불법 자금이 몇 차례씩 흘러들어 갔던 정황을 포착했다. FBI도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이 닉슨 재선캠프의 정치감청 행위의 일환이었다고 보고한다. (1972.10.10) 그러나 닉슨의 당시 인기는 난공불락의 것이었을까?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득표를 하고 재선에 성공했다 (1972.11.7). 거짓말이 무슨 카드깡이냐, 돌려막게… 하긴, 재선에 성공했다고 닉슨이 두발 쭉 뻗고 잠 자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기소된 범인들은 전원 유죄를 시인했고 (1973년1월), 상원은 워터게이트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백악관 직원들을 소환하기 시작한데다가(1973년 2월), 언론의 추적도 계속되는 상황이었으니. 조사가 진행될 수록 백악관과 사건의 연결고리는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닉슨은 거짓말을 하나 추가하게 되는데, “나는 모르는 상태에서 측근들이 (실무자들이!) 과잉 충성으로 저지른 일”이라는 변명이었다. 하지만 백악관 법률고문 존 딘의 폭로는 달랐다. 닉슨 대통령이 해리 로빈슨 홀더먼 대통령수석보좌관에게 FBI의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CIA를 동원하는 문제를 직접 논의했다는것. 이제 닉슨의 “사건 은폐 시도” 여부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한가지 핵심이 된다. 어쨌거나 청문회를 통해 대통령 집무실의 모든 대화가 자동으로 녹음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아치 볼드 콕스 특별검사는 닉슨이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를 했는지를 가리기 위해 대화 내용이 녹음된 테이프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 (1973.7.23). 닉슨은 대통령의 특권을 들어 이를 거부했고, 상원 특별 조사위는 명령 거부 혐의로 닉슨을 고발한다 (1973.8.9 United States v Nixon Case). 우여곡절 끝에 제출된 테이프에는 닉슨과 홀더먼의 대화 중 약 18분 분량이 삭제되어 있었다 (1973.11.21). 닉슨은 “비서가 전화를 받으면서 페달을 밟는 바람에 삭제된 것”이라는 구차한 거짓말을 보태지만, 비서의 팔다리 길이가 비정상적으로 길어야만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계속되는 닉슨의 거짓말에 법원도, 언론도, 국민도, 그리고 측근들도 지쳐갔다. 이 와중에 결국 74년 7월 하원은 권력남용, 선거방해 및 정치감찰, 탈세, 사건 수사 방해 및 은폐 시도 등의 이유로 닉슨의 탄핵안을 채택했고, 결국 닉슨 자신이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돌이켜보면 그를 파멸 시킨것은 과도한 권력에의 의지 그리고 거짓말을 덮기위한 일련의 거짓말들 아니었을까? 2010년 대한민국, 대포폰 게이트라는 데자뷰? 최근 워터게이트 사건을 떠올리는 “민간인 사찰”과 여기에 (보고, 증거인멸을 위해) 동원된 청와대 “대포폰 (차명 폰)”이 문제가 되고 있다. 워터게이트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사건이었지만, 그래도 당시엔 제 할일 하는 언론과 사법부, 그리고 의회가 있었다. 민간인사찰과 대포폰의 실체적 진실은 아직 알수 없지만, 어떤식으로든 축소되거나 은폐되어서도 안되겠다. 어쨌거나 국가의 “격”과 공정한 사회가 화두라는 시대다. 진정 국격과 공정사회를 원한다면, 간단하다. 언론은 언론대로, 사법부는 사법부대로 제 할 일 하면 된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이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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