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19세기를 알아야 미국 영토가 보인다 (2) |
보스톤코리아 2010-11-01, 15:14:15 |
루이스와 클락 탐험대
어찌보면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이라는 사건은 유럽열강의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신생 독립국” 미국이 가졌던 위기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보자면 루이지애나 매입을 기점으로 미국은 팽창주의(expansionism) 혹은 미국식 제국주의의 전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이 거래는 프랑스나 미국이나 루이지애나의 규모나 환경 등에 대해 거의 무지했던 상황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 이에 제퍼슨 대통령은 군장교 출신 루이스와 탐험가 클락을 중심으로한 대규모 원정 탐험대를 파견했다. 1804년에 시작하여 1806년까지 약 이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탐험대는 미시시피강 서쪽 미조리강을 따라 새롭게 획득한 루이지애나 주 지역과 더 나아가 오레곤주를 거쳐 태평양까지의 대장정을 통해 서부지역 실사를 하게 된다. 이들의 탐험은 사실상 서부 개척의 발판이 되었다. 그런데 당시의 탐험 기록을 살펴보면 이들의 탐험이 사실상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음이 보여진다. 또 청교도들이 처음 정착해서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첫 수확을 얻었던 추수감사절처럼, 원주민들과 탐험 대원들이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다. 탐험대는 살아남기 위해서, 또 탐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원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다. 스페인의 몰락, 미국의 호재 원주민 이야기는 잠깐만 접어두자. 이후 미국은 영토확장을 지속했다. 이미 18세기 국내의 갈등으로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던 스페인이, 해상에서는 영국에게 대륙에서는 프랑스에게 주도권을 빼앗긴데다가, 19세기 초반부터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남미지역에서 잇따른 독립운동이 일어나는 등 세력이 약화되었던 것이 미국에게는 호재였다. 프랑스에 루이지애나를 양도한 이후인 19세기 초반까지만해도 과거 멕시코 영토였고 현재 미국 영토인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뉴멕시코, 유타, 네바다, 아리조나 등지와 현재의 플로리다 지역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이 스페인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러나 안팎으로 힘을 잃은 스페인은 먼저 1819년 미국에게 플로리다 지역을 넘겼다. 1821년에는 멕시코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고, 다시 이곳에서 1836년 현재의 텍사스 지역이 혁명을 통해 멕시코로부터 텍사스 공화국의 형태로 독립했다. 이 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개신교도이자 백인들이 멕시코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탓이다. 1845년 텍사스는 미국연방에 가입을 신청, 다소 자발적으로 합병이 되었다. 곧이어 텍사스의 독립자체를 “반란”으로 규정, 텍사스 공화국을 독립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던 멕시코와, 텍사스의 합병 신청을 받아들인 미국 간에 소유권 분쟁은 1846년에서 1848년까지의 미국-멕시코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당시 멕시코는 이미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과 텍사스에서의 “반란” 때문에 군사적인 힘이 약해질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미국은 적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 목전에까지 군사력으로 밀고 들어가 멕시코 정부와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맺고 전쟁은 종결되었다. 조약의 내용은 멕시코의 북부 영토이던 현재 미국의 남서부지역과 캘리포니아 지역을 1500만달러에 사들인다는 것. (영토확장 한가지를 목표로 게임의 상대도 되지 않는 상대국을 목전까지 압박하고, 원하는 것을 헐값에 얻어냈던 이 전쟁을 많은 역사학자들은 더러운 전쟁 Dirty War라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 1812년의 미영 전쟁과 그 타협의 결과로 영국과 “공동 소유”했던 오레곤 지역을 1846년 영국이 미국에 양도함으로써 미국의 북쪽 경계도 확정되었다. 1853년에는 아리조나 남부와 뉴멕시코 남부까지 마저 매입함으로써 현재 “미국 본토”의 경계선이 확정된다. 골드러시와 서부 이주 정책, 그리고 눈물의 행렬 공식적으로는 전쟁과 매입을 통해 적극적인 서부 영토 확장이 이루어졌다면,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1849년에서 1853년에 이르는 기간동안 캘리포니아로의 골드러시가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캘리포니아의 인구 증가는 서부 개척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한편 미국 정부는 새로 획득한 영토에 적극적인 이주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주 정책의 세부는 다음글에 이어진다.) 그러나 유럽 열강과 미국의 이해 관계에 따라 “소유주”가 바뀌어온듯한 “미국 서부”는 무주공산이 아니었다. 엄연히 그 곳은 원주민들의 땅이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서부로의 “영토 팽창”을 하던 미국은 그 원주민들은 “제거의 대상”으로 탈바꿈시켰다. 특히 남동부의 이른바 “개화된” 인디언 부족인 촉토, 치카소, 크리크, 체로키, 세미놀족등이 거주하던 지역이 목화재배지로 개척되면서 이들 부족은 미시시피강 너머의 황량한 (현재의 오클라호마) 지역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혹독한 날씨나 질병, 혹은 전쟁으로 죽어가야했던 인디언들은 이 길을 눈물의 행렬이라고 부르고 있다. (계속) U.S. History Key Words • Lewis and Clark Expedition (1804~1806): 루이지애나 매입과 더불어 미조리강에서 오레곤주에 이르는 서부 지역에 대한 대규모 탐사. • Forty-niners: 일확천금을 노리고 1849년에서 1853년사이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던 사람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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