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와 미국의 교차로에서(9) : 기차로 횡단해본 미국(1)
보스톤코리아  2010-11-01, 13:49:57 
정든 고장을 아쉽게 떠나면서
나는 일본에서 대학교 교수로 있다가 작년 9월부터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대학(UC Berkeley)의 동아시아연구소에서 1년간 방문학자로 체류했다. 1년만으로는 자신의 연구를 충실하게 하고, 영어의 벽을 넘어서기까지는 너무 짧은 시간이어서 금년 8월부터 하버드대학교 중국학연구센터(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에서 방문학자로서 1년간 더 체류하기로 했다.

그래서 7월말 캘리포니아의 버클리에서 매사추세츠의 보스톤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버클리는 미국 태평양연안에 있는 서부의 도시이고, 보스톤은 대서양연안에 있는 동부의 도시이다. 즉 미국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중국으로 말하면 신강의 서쪽 끝 도시 호탄에서 대련으로, 또는 해남도에서 연길로 이사하는 정도의 먼 거리이다. 버클리에서 보스톤까지의 거리는 거의 5,000km인데 비행기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미국의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이사하는데 비행기를 타고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지난 다는 것은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번쯤은 광활한 미주대륙을 기차로 횡단해보고 싶은 꿈이 나의 마음에 꿈틀거렸다. 그리하여 버클리에서 보스톤까지 기차로 가는 방법을 알아봤더니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샌프란시스코 외곽의 Emeryville역에서 기차를 타고 52시간이 걸려서 미국 중부의 대도시 시카고에 도착하고, 거기서 다시 기차를 바꾸어타고 또 23시간 걸려서 보스톤역까지 도착하게 된다. 기차를 타고 움직이는 시간만 75시간 정도이니 3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다. 거기다 침대차는 워낙 가격이 비싼데다 침대 두개나, 세개가 달린 침대방 하나를 통채로 구입하는 방식이기에 혼자서 여행하면서 침대차를 타기에는 처음부터 무리가 따랐다. 나이가 40대 후반에 들어선 내가 침대도 없는 기차에서 3일간이나 무리하게 움직이다가 혹시나 병이 들지 않겠는가 하는 근심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좋은 기회에 미주대륙을 횡단해보고 싶은 충동을 금할 수 없었다. 여러 생각끝에 기차로 보스톤에 가기로 했다.

7월25일 오전, 버클리에 1년 체류하는 사이 물심양면으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한국 출신의 김 선일 박사 (UC 버클리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하는 연구원)가 자가용차로 기차역까지 바래주었다. 오전 10시경에 내가 몸을 담은 시카고행 기차가 샌프란시스코 외곽의Emeryville역을 출발했다. 정작 기차가 서서히 떠나니 1년간 살았던 버클리에 대하여 수많은 감회가 떠올랐다. 영어도 변변히 통하지 않고, 아는 지인도 없는 낮선 곳에 공항에서 마중해주는 사람도 없이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찾아왔던 것이 바로 1년전이었는데, 와보니 너무나 좋은 곳이었고, 1년간 방문학자로 체류한 UC 버클리는 정말 좋은 대학이었다.

버클리는 인구 10만명 정도되는 샌프란시스코 외곽에 있는 도시인데 태평양을 바라보는 느슨한 산비탈을 타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1년 사계절이 마치 가을과도 같이 서늘하고 태평양에서는 언제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일본에서 준비해간 1년 사계절 옷을 서로 바꾸어 입을 필요 없이 항상 가을 옷만 입고 지냈다. 아마 자연조건만 따진다면 이 지역만한 도시가 미국에서 그리 흔하지도 않으리라.

UC 버클리는 학생이 약 3만5천명 정도의 종합대학교인데 미국내에서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대학이기에 해외에서도 많은 유학생, 학자들이 모여오는 대학교이다. 1년간 나는 UC 버클리의 동아시아연구소에서 수십번 이상 다양한 학술활동에 참가하면서 동아시아연구의 최신연구동태를 알게되고, 미국과 중국, 한국, 일본에서 온 학자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학문을 하는 경우도 자기 혼자서 책을 보고 사색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하고 거기서 계발 받고 아이디어를 얻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UC 버클리의 대학생, 대학원생 수업도 자주 방청했는데 수업중에 토론이 많은 점이 동아시아 대학들과의 다른 점이었다. 교수가 강의를 하는 도중에 학생들이 불쑥 질문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교수들도 그런데 당황해하는 기색이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학생들이 다양한 인종이나 국적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도 미국 대학교의 특색이라 할 수 있겠다. UC 버클리의 교실 앞에서는 수업시간을 기다리는 학생들이 복도의 바닥에 않아서 공부를 하는 모습이 일상적으로 목격된다. 역시 미국 대학생들은 그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하고 있었다. 수업을 방청하면서 재미있는 현상도 목격했다. 아무리 미국의 대학생들이라도 항상 수업이 재미있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그럴 경우 일본의 대학생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문자메시지를 전하거나 다른 장난을 친다. 여기 학생들은 컴퓨터를 켜놓고 인터넷을 검색한다. 교수보기에는 수업에 열중하는 것 같고 본인들은 지루함이 없이 시간을 보내는 묘책같다.

버클리 성인학교의 영어교실도 나에게는 좋은 추억을 남겼다. 1년간 저녁마다 거기에 나가서 영어공부를 했는데 영어공부도 중요했거니와 중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나 난민들과 격의없이 지내면서 이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좀 고상하게 말하면 이문화를 제대로 체험했던 것이다. 버클리의 YWCA (세계기독교여자청년회)의 영어회화자원봉사프로그램도 나에게는 정말 고마운 존재였다. 그 프로그램을 통하여 나는 정년 퇴직한 미국 노인과 매주 한번 씩 영어회화연습을 할 수 있었다. 이 노인은 나만이 아니라 매주 대여섯 명의 외국인을 상대로 무료로 영어회화파트너를 해주고 있었다. 자원봉사란 바로 이런것이 아니겠는가. 한두번의 이벤트를 통한 남에게 보여주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고, 또 조용하고 꾸준하게 남이 꼭 필요한 일을 해주는 그런 것이 참다운 자원봉사라 하겠다.

버클리에 1년간 있는 사이에 여러 기회가 생겨 미국 서부지역을 두루 관광하였다. 가까운 곳에 있는 샌프란시스코에는 여러번 다녀왔고, 로스앤젤스, 샌디에고, 라스베가스에 가보고 서부의 유명한 자연경관인 그랜드캐넌, 요세미테 (미국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유명한 산) 도 구경하고 태평양 연안에서만 생성하는 세계에서 제일 높이 자라는 나무라는 세쿼이아 (평균 나무 높이 80m)도 보았다. 수령 1800년이 된다고 하는 세쿼이아수는 나무 그 자체에 신령이 들어있는 것 같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였다. 필경 나다니면서 구경하는 것, 그 자체도 하나의 좋은 공부였다.
1년간 정든 버클리에 대한 여러가지 상념에 젖는 사이 기차는 캘리포니아의 평야를 한창 달리고 있었다.

김광림
Professor, Niigata Sangyo University
Visiting Scholar, Fairbank Center for Chinese Studies, Harvard Univesity
E-mail:[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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