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매카시즘과 과학자
보스톤코리아  2010-10-18, 14:19:30 
예고편: HUAC의 할리우드 습격사건
1947년 10월 20일, 하원의 비미활동위원회 (House Un-American Activities Committee, HUAC) 가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는 작가, 감독, 배우, 영화제작자들을 대상으로 “빨갱이 사냥”을 시작했다. 많은 “블랙리스트” 할리우드 인사들이 “당신이나, 혹은 당신이 아는 누군가가 공산당원이었던 적이 있습니까?”라는 위원회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서 증언대에 서야 했다. 이 과정에서 헐리우드는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다. <에덴의 동쪽>의 거장 엘리 카잔은 과거 자신이 공산당원이었다고 고백하는 한편, “공산당원인 동료들”의 이름을 넘겨 살아남는다. 디즈니 역시 할리우드 공산주의자 색출에 앞장선다. 끝까지 HUAC에게 협조하기를 거부했던 10인의 작가와 감독들은 일자리를 잃어야 했다. 아마 HUAC의 헐리우드 습격사건은 아마 1950년 초반에서 약 4년간 미국을 강타한 매카시즘의 전주곡이었을 것이다.

매카시 그리고 동조자들
1950년 어느 공화당 집회에서 위스콘신의 초선의원이었던 조셒매카시가 “지금 국무부에는 소련의 스파이노릇을 하는 공산당원 205명이 일하고 있습니다. 여기, 내손에 그 공산당원 명단이 있습니다!”라는 발언을 쏟아냈다. 사실 지금으로서는 매카시의 주장이 미국사회에 그대로 흡수되었던 것 자체가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의 발언 이후 4년간 매카시는 공산주의로부터 미국을 지켜낼 구국의 영웅으로 자리매김 했었다. 언론은 매카시의 입에만 기대 “빨갱이 명단”을 무책임하게 찍어냈다. 공화당은 공포와 광기의 세기를 이용해 정국의 주도권을 잡고자 했고, 민주당 인사들은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모면하기 위해 이에 동조한다. 무기 산업을 중심으로한 자본도 냉전의 정서 혹은 전 국민적인 “빨갱이 공포”가 (한국전쟁같은) 전쟁을 고무하고 그 결과로 자신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한, 매카시즘의 멍석을 깔고 지원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국민과학자 오펜하이머 박사, 반역행위자로 몰리다
문제는 그 광기의 물결 속에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증명하는 수모를 당하거나, 과거 공산주의자였음을 고백하고, 동료를 공산주의자라고 고발하거나, 어느 것도 택할 수 없어 자살하거나 삶이 파괴되어야 했던 사람들이다.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한 맨하탄 프로젝트를 지휘한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가 대표적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천재적 물리학자였고, 다재다능했던 오펜하이머다. 하지만 광기의 시대는 그를 비껴가지 않았다. 그가 주도한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이후 매우 괴로와했던 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각하, 내 손에는 피가 묻어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장직을 사임했다. 이후 핵확산 금지를 주장하고, 수소폭탄 개발의 저지에도 앞장섰다. 이 덕에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자 국민과학자였던 그가 공산주의자로 몰리게된다. 그자신은 단 한번도 미국 공산당에 가입한 적이 없었지만 과거의 약혼자가 공산당원이었고, 그가 사회 운동에 재정적인 후원을 했다는 과거사까지 낱낱이 해명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국가적 공로와 동료과학자들의 지원 덕에 처형은 모면했지만 오펜하이머는 1954년 청문회에서 적지 않은 모욕을 받고 공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카시가 들고 있던 봉투 속의 명단은 그저 정적의 리스트였으며, 그가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 채 무책임한 폭로만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서히 만천하에 드러났다. 코너에 몰린 매카시는 이제 육군 수뇌부까지 간첩 혐의로 몰아붙이는 등 무리수를 두고, 결국 미국인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뚜렷한 근거 없이 “반국가적” “체제 전복 세력”과 같은 수사(修辭) 를 동원해 정치적 마녀사냥을 일컫는 말 매카시즘은 바로 그 매카시의 이름에서 탄생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학자의 “양심”은 사상 검증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매카시즘은, 그 광기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까? 2008년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은 사실상 대운하”라고 양심선언을 한 건설기술 연구원의 책임 연구원 김이태씨는 4대강 사업에 찬성하든지 사직하라는 압박을 받았었다고 한다. 원폭을 개발한 오펜하이머가 반핵을 주장하고 수소폭탄 개발을 저지하려고 했던것은, “사상”이 아니라 그의 “학자적 양심”때문이었다. 과학자가 정치적 자기 검열부터 해야한다면, 그또한 매카시즘의 징후 아닐까?

더 읽어볼 책:
• American Prometheus: the triumph and tragedy of J. Robert Oppenheimer (Kai Bird & Martin J. Sherwin, 2005)—오펜하이머 평전에 해당하는 이 책은 몇달 전 사이언스 북스에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라는 제목의 번역본으로 출간했다.
• Joseph McCarthy: Reexamining the Life and Legacy of America's Most Hated Senator (Arthur Herman, 2000) –소련의 붕괴 이후 미국의 극단적 보수층에서는 조지프 매카시에 대한 재평가의 움직임이 일었다. 이 책은 매카시의 실수와 결점에도 불구하고, 매카시의 행위는 정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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