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콜럼버스데이를 생각한다 |
보스톤코리아 2010-10-11, 15:11:48 |
콜럼버스는 정말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까?
10월 두 번째 월요일은 콜럼버스가 바하마 군도에 도착한 1492년의 사건을 기념하는 콜럼버스데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국사 교과서는 “신대륙 발견 이전”의 미국 대륙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보태기도 하지만, 대개 1492년에서 1783년 (독립전쟁 승리)까지를 묶어서 “미합중국의 형성기 (혹은 건국 이전시기)”로 구분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건 표준적 미국사 서술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을 이정표적인 사건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엄밀히 말해서 콜럼버스가 미 대륙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콜럼버스가 바하마군도에서 처음 마주친 것은 황금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던 아라와크족 (Arawaks)이었다. 사료에 따르면 당시 북미대륙에는 약 2000만 명의 원주민들이 있었으며, 500여 개에 이르는 다양한 언어 집단과 문화를 구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1492년의 “발견”은 유럽인의 시각이다. 하지만 “미 대륙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그곳에 오래 전에 정착해있던 인디언들에 의해 처음 발견된 것”이라는 식의 다소 낭만적인 발언도 때론 위험하다. 이 또한 콜럼버스가 미 대륙에 도착한 이후, 콜럼버스에 의해 그리고 또 다른 “개척자들”에 벌어졌던 살육과 약탈, 혹은 인종 말살의 역사를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장벽을 넘어 승리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신세계의 빗장을 열어젖혔을 뿐만 아니라, 인내와 신앙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기념비적인 업적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주었다. (George H. W. Bush, 1989 연설 중) 잠시 다른 이야기. 현재의 미국 영토 (북아메리카)에는 근접한 적도 없던 콜럼버스가 미국 국경일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콜럼버스의 1차 항해 보고서는 “그리하여 영원한 하나님,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장벽을 넘어 승리를 주시옵나이다”라고 맺고 있다. 콜럼버스 영웅만들기는 숱한 고난을 극복하는 불굴의 “개척정신”과 이를 지탱한 “신앙”이 뼈대를 이루는 미국의 건국신화와 들어맞는다는데 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는 한편 “한탕을 노리고” 영국에서 건너와 제임스타운을 건설했던 (1603년) 최초의 이주민이 아니라 “종교의 자유를 찾아” 존 윈스럽이 이끄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건너와 매사추세츠만 식민지를 건설했던 (1630년) “청교도들”을 미국의 선조로 기억하려는 습관과도 무관하지 않아보인다. 즉, 개척정신이나 이를 돕는 신의 섭리와 같은 명분은 유럽인들이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실제 이유인 “탐욕”을 적절히 버무리고 은폐하는 좋은 기제들이었던 것이다. 대학살을 기념하라? 문제는 “기념비적인 업적”의 내용이 사실 인종말살(Genocide)이라는 것이다. 알려져있다시피 콜럼버스는 황금과 향료를 위한 탐험 원정을 빌미로 스페인 왕과 여왕을 설득해 항해자금을 마련했고, 그 대가로 이익의 10퍼센트와 발견한 땅의 총독 자리를 약속 받았었다. 필사적으로 황금찾기에 몰두했지만 개울가에 존재하는 약간의 사금 외의 거대한 금광을 찾을수 없었던 콜럼버스는 닥치는대로 인디언들을 노예로 삼았다. 스페인으로 보내거나 사금을 파는 노예 노동에 동원하기 위해서였다. 또 이득이 될만한 것을 찾아 원정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대량 학살도 서슴치 않았다. 지난 봄의 재난으로 빈곤의 땅으로 전세계에 드러났던 아이티의 역사적 굴곡도 콜럼버스에게서 시작했다. 결국 콜럼버스의 미 대륙 발견 500주년이었던 1992년 10월, 미네소타 대학 인권센터가 콜럼버스에게 현대 법을 적용, 노예범죄, 학살, 고문, 강제노동, 유괴, 부녀폭행, 상해 등의 혐으로 기소한 후 모의재판을 실시한 적이 있다 재판 결과 그는 350년 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어쨌거나 콜럼버스가 시작한 “황금때문에” 원주민을 노예로 삼아 노역에 동원하거나 잔혹하게 학살하는 역사”는 피사로나 코르테스 같은 다른 개척자 혹은 정복자들에게 훨씬 잔인한 방식으로 이어졌고 아즈텍 문명과 잉카 문명이 파괴되어갔다. 때로는 면역체계가 다른 원주민들이 외부인들과의 접촉만으로도 전염병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영국인들도 “영토 확장”과정에서 북미 대륙 인디언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남미에서건 북미에서건 원주민의 수는 1/10로 줄어버렸다 콜럼버스의 “발견”의 이면은 경험의 주체에 따라 침략과 인종 말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인 셈이다.. 양심적인 미국인들이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란 사건을 기념하는 콜럼버스데이에 “Columbus day, A Celeration of Genocide” “Abolish Columbust Day, No More Genocide” “Stop Genocide, Racism, and Imperialism” 를 내걸고 영웅신화를 비판하는 이유이다. “항해자이자 발견자로서 콜럼버스와 후대 계승자들의 영웅적 행위를 강조하고 그들이 저지른 인종말살을 무시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필요한 일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인 선택이다. 그것은 이미 벌어진 행위를 자기도 모르게 정당화하는 데 이바지한다.” (Howard Zinn, 미국 민중사 1장) 더 읽어볼 책 •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 | 앨프리드 크로스비 지음 | 김기윤 옮김 | 지식의 숲: 신대륙 정복의 역사를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문제가 아니라 동서 양자의 “교환”의 관점에서 본 책, 전쟁과 함께 질병, 생물의 다양성 문제까지 포섭하게 된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mail protected] 이 컬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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