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키챈, 최초 아시아계 MA 의원 노린다 |
보스톤코리아 2010-10-04, 15:09:40 |
총선을 37일 앞둔 지난 27일 월요일 오전 11시 퀸지 소재 행콕 스트리트에 있는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퀸지 토박이인 변호사 택키 챈은 약속장소로 걸어오는 도중에도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었고, 도착 후에도 한 동안 전화통화를 이어갔다. 약속장소인 식당이 문을 열지 않아 커피숍으로 옮기는 도중에도 통화를 했다. 하루에 몇 통이나 통화를 하느냐는 질문에 “셀 수 없다, 모든 선거관련 전화가 자신 또는 사무장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바쁜 일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현재 일(퀸지 보드오브 조닝 어필스)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선거활동에 활용하기 때문이다. 버버리 코트 차림의 택키 챈 후보는 사진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앳되어 보였다. 올해 36세로 아직 미혼이다. 지난 9월 예비선거에서 힘겹게 키건 후보를 누르고 당선, 자신감이 엿보였다. 아주 빠르게 말하는 그는 인터뷰가 시작되어서도 거침없이 빨랐다. 인터뷰는 아주 빠른 템포로 진행됐다. 홍콩 이민자 부모에서 태어나 뉴잉글랜드 법대를 졸업하고 올 초까지 법무장관실 검사보로 전기 및 가스 회사의 요금 인상관련 소비자 보호 업무를 했으며 그 전에는 MA상원 의원 마크 모리세이 사무실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비영리 단체 퀸지 아시안 리소스의 창립 회원으로 커뮤니티 서비스를 해왔다. 지난 89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아래서 생활해왔다. 출마하게 된 동기는? 나는 언제나 어느 순간에는 정치인으로 출마하길 원했었다. 나는 오랫동안 공직과 커뮤니티 서비스를 해왔다. 이번에 좀더 높은 선거직이 생겼고,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나의 인생과 나의 재정상태를 되돌아 봤고 지금이 시도를 해봐야 할 때라고 느꼈다. 왜 정치인이 되고자 했나 좋은 직업을 가지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는데? 나는 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다. 로펌 에서나 개인 변호사 사무실 개업하는 것 보다는 공직과 커뮤니티 서비스를 주로 해왔다. 나는 적게 벌고 많이 일하는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 기회는 대중을 위해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이 기회가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아직 모르겠다. 제프 키건과의 예비선거에서 112표차로 간신히 이겼는데 예비선거는 어땠나? (또 다른 민주당 후보)키건과 아주 좋은 레이스를 펼쳤다. 우리는 아주 공명하게 선거활동을 했다. 키건은 두 번이나 출마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에게 이름이 알려진 후보였고 네트워크가 짜여 있는 후보였다. 이에 반해 나는 거의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했다. 우리는 지난 여름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작은 표차라도) 승리는 승리다. 이는 비록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만 이웃을 잘 알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주요 전략이 뭐였나? 주로 낮에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오거나이즈 해야 할 일이 많다. 이메일이 들어오는 것을 계속 체크한다. 이메일이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범퍼스티커를 돌리고 기금모금활동도 한다. 각 단체들의 후원을 받아야 하고 가가호호 문을 두드리는 일도 한다. 아이리데일이 1만5천불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재 얼마만큼의 선거자금을 갖고 있는가? 그가 얼마만큼 모았는지 알게 된 것은 좋은 일이다. 아직 정확하게 공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더 많은 선거자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거자금 모으는데 어려움은? 현재 경제가 너무 어렵다. 하지만 많은 돈을 모았다. 예비선거 전인 8월 27일까지 $37,000을 모았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인데도 나에게 기꺼이 기부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다른 분들도 나의 웹사이트에 가서 기부를 해주면 정말 고맙겠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정치환경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아시안 아메리칸 후보인데 이러한 면이 본인에게 도움이 되는가? 나는 그것(아시안 후보)인 것이 도움이 되거나 약점이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으로서) 퀸지에서 자랐고 다만 내가 아시안일 뿐이다. (미국인들과 비교했을 때) 그게 유일한 다른 점이다. 대표성을 갖지 못한 (중국계)커뮤니티에서 이민자들의 경험을 가졌고, 홀어머니 가정하에서 학생 때에 아르바이트를 했어야 했다. 가족 내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갔고, 법대를 갔기 때문에 모든 것을 혼자서 알아서 해야 했다. 따라서 나는 내가 특별한 장점을 가졌거나 불리한 점을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학교, 아르바이트 그리고 전철로 통근하고 어머니를 돌보고 해야 했기 때문에 매일 10시가 되어야 일과가 끝나곤 했다. 이것은 나에게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경험을 하고 있다. 왜 존 아이리데일보다 더 나은 후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좋은 법률적 경험을 가졌다. 퀸지 지역의 이웃을 대표하는 목소리를 지녔다. 나는 항상 비영리단체를 위해 노력했다. 아시안 리소스 잉크는 2001년 겨울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창립했다. 9.11직후여서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주 강력한 비영리단체로 성장해 있다. 퀸지 아시안 리소스는 아시안들에게 주류사회로 진출하는 다리역할을 하는 단체다. 아시안 유권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퀸지에는 10%가 아시안이지만 정말 많이 투표하지 않는다. 첫 번째 원인은 유권자 등록이다. 유권자 등록은 아주 쉽다. 18세 이상의 시민권자면 등록할 수 있다. 문제는 어디에서 투표하는지를 모른다. 영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선거가 돌아가는지 모른다. 투표지가 각 시와 타운마다 다를 수 있다. 퀸지는 줄을 그어야 하지만 보스톤은 동그라미를 칠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비록 백지로 제출하더라도 투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택키는 자신이 아시안이지만 아시안만을 대표하는 후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아시안의 투표에 관해서는 깊은 우려를 표했다. 정치인들은 쉽게 누가 투표하는지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아시안의 저조한 투표율은 정치인들의 발걸음을 아시안들에게서 떠나게 한다는 것이다. 인터뷰가 끝나자 마자 그는 범퍼 스티커와 전단지 등을 손에 들고 가가호호 방문을 위해 총총걸음을 옮겼다. [email protected]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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