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분노의 포도를 읽다
보스톤코리아  2010-09-20, 15:40:27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1964년 9월 14일, 리얼리스트 소설가 존 스타인벡 (Johan Steinbeck) 자유메달 (U.S. Medal of Freedom)을 받다”는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1920~30년대의 소설들은 미국사 시험에도 자주 등장하는 편인데,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The Grapes of Wrath, 1939> 는 꼭 기억해야한다.* 대공황시기, 농토를 잃고 빚더미에 올라서게 된 오클라호마의 가난한 농부 조드 일가가 희망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몇 개월 간의 여정과 그곳에서 겪게 되는 일을 사실주의적 묘사를 통해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스타인벡의 39년 퓰리쳐상 수상작이며, 62년 노벨 문학상 수상에도 기여한 작품이다.

대공황, 땅을 잃은 땅의 사람들
이 책은 출간 당시 오클라호마 등 몇몇 주에서는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었고, FBI는 “공산주의의 반미선전용 소설”이라며 저자를 감시했다. 왜 그런 불온한 낙인이 붙었을까? 무엇보다도 군데군데 등장하는 “자본의 야만”에 대한 여과없는 암시가 한가지 이유가 되었을듯 싶다.

실제 대공황 당시 농사짓던 땅에서 쫓겨나야했던 소농“조드”는 숱하게 많았다. 검은 월요일 월가의 패닉, 줄줄이 도산하는 은행과 기업, 무료 급식소에 길게 늘어선 실업자들 같은 도시의 이미지로 각인된 대공황이지만, 실제 가장 타격이 심했던 곳은 농촌지역이었다. 곡물가격이 40~60% 폭락하자, 농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자금을 빌려 농사를 짓던 소규모 농민들은 삽시간에 빚더미에 올라앉았고, 농사를 짓던 그들의 땅은 은행 소유가 된다. (소설에서는 “모래바람과 가뭄”이라는 자연재해까지 일조한다). 대공황기에도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소수 대자본들은 트랙터와 같은 농기계를 도입, 인건비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인 대농장을 조성했고, 땅의 사람 농부들은 갈 곳없는 신세가 되었던 것이다.

캘리포니아, 희망의 땅?
그래도 조드가 받아든 “찌라시”는 약속의 땅 캘리포니아에 새로운 일자리와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속삭였다.
포도원, 과수원, 크고 평평하며 초록색으로 뒤덮인 아름다운 계곡… 계곡을 황금 빛으로 물들인 아침 햇살…
밖에서 바라보는 캘리포니아는 가족들이 굶주리지 않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그들의 소박한 희망을 실현시켜줄 것 같은 약속의 땅이었다. 그러나 희망을 품고 삶의 터전을 떠난 이들이 직면했던 현실은 처참했다. 가족들은 고된 여정에서 죽거나 해체되었고 떠나기 전 가재도구를 헐값에 처분해 마련했던 여행 비용은 바닥났다. 게다가 전국 각지에서 “66번 도로를 따라” 몰려온 떠돌이 농민들의 수는 일자리의 열배 이상 포화상태, 대농장주들이 이 상황을 교묘히 역이용했기때문에 임금 수준은 형편없이 낮아져있었다.

자본의 횡포, 분노의 포도가 익어간다
온가족이 열심히 일을 해도 굶주림을 면할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고자 했던 동맹파업은 공권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되었다. 또하나의 의미심장한 부분은 과잉생산과 자본주의의 횡포에 대한 암시다. 농부들이 일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캘리포니아의 과수원에서는 복숭아와 오렌지와 포도가 탐스럽게 익어갔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산더미처럼 쌓인 오렌지가 썩어가도, 굶주리는 수백만의 농민들은 그 오렌지를 그저 바라볼수 밖에 없었다. 대신 오렌지 위에는 석유가 뿌려졌다. 남아도는 감자는 강물에 버려졌다. 농민들이 그 강에서 감자를 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강둑에는 경비원이 배치되었다. 농산물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땅의 사람들의 분노도 포도알처럼 알알이 익어갔다.
***
4대강에 선상 카지노를 띄운단다. 솔직히 대운하 사업한다고 했을때 웃었다. 정말 파버릴지는 상상 못했었다. 물을 이제 공공재가 아닌 경제재로 봐야한다는 패러다임 전환 요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때문이다. 강물엔 리버크루즈가 한가로이 떠 있고, 선상 카지노는 밤을 아름답게 밝히고, 강둑에는 쭉 뻗은 자전거 도로가 펼쳐있는 광경… 풍요를 코스프레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4대강 사업은 농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내쫓고 있다. 쭉쭉 뻗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망루에 올랐던 용산 철거민들처럼, 멀지않은 어느 내일, 리버크루즈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영혼에도 분노의 포도가 알알이 익어가고 있진 않을지. 숙고없이 질주하는 토건주의의 야만이 무섭다.

* 1920년대의 문학작품은 이른바 잃어버린 세대 (Lost Generation)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F. Scott Fizgerald의 The Great Gatsby (1925)와 Sinclair Lewis의 Main Street (1920), Babbitt (1922)처럼 물질 문명에 대한 환멸과 부유층의 생활상에 대한 조롱을 드러낸 작품들과 전쟁을 미화하는 데에 비판적 시각을 드러냈던 Ernest Hemingway의 A Farewell to Arms가 대표적.1930년대의 작품으로는 남북전쟁 전후의 남부를 그린 Margaret Mitchell의 Gone with the Wind (1936)와 문명과 과학 기술의 진보의 반유토피아적 미래를 그려낸 Aldous Huxley 의 Brave New World (1932), 농부 왕룽일가를 통해 격동기 중국을 그려낸 Pearl Buck의 The Good Earth, 그리고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와 또 다른 리얼리즘적 소설로 미국 노동 운동을 소재로 한 In Dubious Battle (1936)등이 미국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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