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 : 구별짓기, 흉내내기, 그리고 전염성 소비 중독
보스톤코리아  2010-08-16, 11:06:36 
며칠전 뉴욕 타임즈에 But Will It Make You Happy? 라는 제목의 눈길이 가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기사는 가지고 있던 옷이며, 신발, 부엌용품 등을 최소한만 남기고 모두 도네이션하고, 2베드룸 아파트에서 작은 스튜디오로 이사하고, 심지어 부부가 타던 두 대의 자동차도 모두 처분한 후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식으로 생활을 “다운사이징”한 부부의 이야기다. 생활이 간소해진 후 기사의 주인공은 더 적게 일하고 더 적은 수입으로 살지만, 오히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던 과거보다 넉넉하고 행복해졌다고 고백한다.
지난 몇 십 년간 미국인들 일반에 만연해있던 소비중독을 말하는 것이 별로 새삼스러운 지적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기사의 부부도 “이건 아니다”라는 일종의 전향적 깨달음이 있기 전까진 (대체로 필요 없는 물건들을) 미친 듯이 쇼핑하고, 그 물건들을 쓸 새도 없이 카드 빚을 갚기 위해 일을 해야 하는“평범한” 중산층 미국인들이었다. 그런데 잠깐, 대공황 이후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던 그들은 언제부터 쇼비 중독증에 감염되기 시작했던 것일까?

교외화 (Suburbanization)와 경쟁적 소비
1950년에서 60년대 초반, 저소득, 유색인종 마이너리티 그룹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찾아 들던 것과는 상반되게, 중산층 백인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찾아 교외로 주거지를 옮겨가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는 대법원의Brown vs. Board 판결 (1954) 등 인종 분리 정책이 철폐되는 흐름에 대한 백인 중산 층의 심리적 반발도 작용했고, 인종 분리 정책이 제도적으로 폐지된 후 오랜 기간 인종분리가 실질적으로 존속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고속도로와 자동차 산업의 발달 역시 백인들의 교외화와 궤를 같이한다.
하여튼 마이너리티 그룹과의 구별짓기를 위해 교외로 이주하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 백인 중산층들은 이제 그 커뮤니티의 일원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네 이웃의 물건을 탐하”기 시작한다. 미국 중산층의 가정은 커뮤니티마다 비슷비슷한 물품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그들의 아메리칸 드림은 일원화되어갔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가족 구성원의 수는 줄었지만 집의 크기는 커졌고, 1980년대는 커뮤니티마다 대형 쇼핑몰이 일반화되었다.

욕구의 업그레이드, 쇼핑과 노동의 악순환
1980년대를 지나면서, 교외의 인종 구성은 보다 다양해졌지만 그들의 욕망은 이전보다 더욱 과시적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이제 그들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소득 수준이 비슷한 자신들의 이웃의 소비를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라 자신보다 소득 수준이 월등한 상류층의 소비를 흉내내기 시작했고 과시적 소비는 그야말로 전미적인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신용카드가 이 현상에 기름을 부었다는 것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할인 쿠폰이나 리베이트, 바겐 세일의 문화는 싸게 구매했다는 착각에 실제로는 불필요한 소비를 촉진시키고 있고, 신용카드는 결국 미래의 구매력을 담보로 오늘을 소비하게 했다. 브랜드 선호현상, 키친 업그레이드, 50년 전보다 무려 두 배가 늘어난 집 크기, 대형차 소유 현상도 물론 경쟁적 소비중독의 징후들이다.
하여간에 부자들이야 과거에도 과시적 소비 행태를 보였고, 소비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적당한 사치를 해 주어야 한다지만, 문제는 소득수준 상위 20% 이하의 중산층들이 그들의 실제 소득을 훨씬 넘어서는 소비를 욕망한다는 데에 있다. 보스턴대 사회학과의 쥴리엣 쇼어는 “1990년대 중반, 미국 가정 대부분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가질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며 비참해하거나 박탈감과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집을 넓히고 쇼핑한 물품을 쌓아 놓기 위해 차고를 하나 더 들이고 드레스 룸을 들이지만, 정작 그 물건들을 사용할 시간도 없이 빚을 갚기 위한 노동을 하느라 집에 머물 시간도 없는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 위한 쇼핑, 그리고 노동의 악순환, 그리고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에 이르기까지 소비 중독의 귀결은 생각보다 끔찍하다고 말한다.
혹자는 이야기한다. 이제 더블딥을 걱정해야 한다고. 그러니 저축대신 소비를 촉진시켜야한다고. (그러기에 이번 주말 같은 택스 공휴일도 필요한거라고!) 하지만 후대에 남겨줄 것이 필요 없는 쇼핑이 가져온 쓰레기와 빚밖에 없다면? 이번 주말, 파티를 하게 된다면 필요할 것 같은 디너웨어를 사고 싶었지만,뉴욕타임즈의 저 기사를 읽고, 오늘의 쇼핑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할지 잠깐 생각하다가 쇼핑 대신 조금 더 의미 있는 일에 투자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더 읽어볼 책
줄리엣 쇼어저서 Overspent American: Why We Want We Don’t Need (과소비의 미국인: 왜 우리는 불필요한 것을 욕구하는가)와 Overworked American: The Unexpected Decline of Leisure (과로하는 미국인: 여가의 감소)는 미국 중산층이 구매 욕구 때문에 소비하고, 소비하기 위해 일을 하는 과정에서 생산성이 높아져도 실질 노동시간은 줄어들지 않을뿐더러, 빠르게 증가하는 구매 욕구와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제 소득 사이의 간극은 더 벌어지는 불행의 악순환에 대해 이야기한다.

US History Key Word
Suburbanization: 이른바 화이트 플라잇 (White Flight)으로 불리는 백인들의 탈도시화 즉, 교외화.
Brown vs. Board 판결: (Oliver L. Brown et.al. v. the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KS) et.al.) 기존의 흑백인종분리 정책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 공립학교에서의 흑/백 분리 교육을 위헌으로 판단했다. 사실상 인종 분리정책 뿐만 아니라 어떠한 이유에서건 공교육에 편견과 차별, 배제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법정신의 기본이 되었다.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소피아
Soph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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