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신접종, 인프라·자금지원 없이 무작정 배포로 지연
접종목표 8분의 1만 맞아, 늦게 시작한 이스라엘·바레인보다 느려
"연방정부는 각 주에 배송만"…트럼프는 주에 책임 돌려
접종준비 시간 걸리는 요양원 몫 비축…넓은영토·'거부감'도 한몫
보스톤코리아  2021-01-01, 13:13:39 
미 플로리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소 앞에 늘어선 차량
미 플로리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소 앞에 늘어선 차량
(워싱턴·서울=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이재영 기자 = 미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접종 속도가 목표보다 매우 느리다는 지적이 나온다.

31일(현지시간) AP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에서 전날 오전 9시까지 백신을 맞은 사람은 259만명으로 연내 접종목표인 2천만명의 8분의 1 수준에 그쳤다. 배포된 백신 양도 1천400만명분으로 목표에 못 미쳤다.

인구 10만명당 접종 인원은 49명으로 미국보다 늦게 접종이 시작된 이스라엘(608명)과 바레인(263명) 등보다 크게 낮았다. 영국도 10만명당 60명으로 미국에 앞서있다.

백신접종이 늦는 이유는 무엇보다 인력과 시설 등 인프라가 사전에 준비되지 않아 부족한 점이 꼽힌다.

대규모 접종 전 의료인력을 충원하고 이들에게 지급할 초과근무수당 예산을 확보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백신접종에 특화한 인프라 추가구축도 필요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백신접종을 위해선 사람이 몰릴 때 대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능한 방역 시설과 접종 후 15분간 부작용을 관찰하기 위한 공간 등이 필요하다.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백신을 맞고자 수십 시간씩 기다리는 일이 벌어진다.

플로리다주 보니타 스프링스의 한 69세 노인은 선착순인 백신을 접종하기 위해 밤새 주차장에서 줄을 서 14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주사를 맞았다.

마이애미의 한 대학교수는 81세 어머니의 접종 문의를 하기 위해 80통의 전화를 한 뒤에야 병원과 통화에 성공했다. 그만큼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다.

텍사스주 휴스턴의 의료기관인 '메모리얼 헤르만'은 3만회 접종분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절반 정도만 소진했다. 거리 두기와 격리를 위한 공간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린 탓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우리는 백신을 사탕처럼 나눠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연방정부의 역할을 거점지역까지 백신을 보내주는 것으로 규정하고, 나머지는 주 정부가 책임지도록 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중앙집권제인 이스라엘이나 바레인과 달리 연방국가인 미국은 분권제로 운영되다 보니 중앙정부에 집중화된 보건서비스를 하고 있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트위터에 "연방정부가 지정된 장소까지 백신을 보내주고 나면 이후 분배는 각 주에 달렸다"라고 남겼다.

그는 "연방정부는 백신을 주에 배포했다. 이제 접종하는 것은 주정부에 달려 있다. 움직여라"라면서 백신접종 지연 책임을 주정부에 돌리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연방정부는 백신개발에 100억달러(약 10조8천800억원) 이상 지출했지만, 배포와 접종과 관련한 예산은 거의 쓰지 않았다.

최근 통과된 예산에 주 정부의 요구를 반영한 관련 예산 87억달러(약 9조4천억원)가 포함됐지만 이미 몇 개월 전에 집행됐어야 할 예산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접종 시설과 기준 등에 관한 연방 차원의 일목요연한 지침이 부족하고 인프라를 갖추려 해도 실행자금이 부족하니 접종 속도는 느려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워싱턴주 킹 카운티(주 아래 행정단위)는 백신접종을 위해 40명의 직원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지만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더구나 지역 보건당국은 백신접종 외에도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아 여력을 거의 소진한 상태다.

AP통신은 "과중한 업무에 자금이 부족한 각 주 보건당국은 백신접종 계획을 짜맞추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다"면서 "(주 정부 아래) 카운티와 병원이 서로 다른 접근법을 취해 긴 줄과 혼란, 좌절을 초래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메릴랜드주 몽고메리 카운티 보건부서에서 일하는 트래비스 게레스 박사는 NYT에 "우리는 백신접종에 노력하면서 동시에 검사를 지원하고, 확진자와 접촉한 이를 추적하는 등 코로나19 대응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백신접종 문제를 각 주가 전부 떠맡다 보니 사고도 발생한다.

최근 웨스트버지니아주 분 카운티에서는 주내 백신 배포 책임을 맡은 주 방위군의 실수로 42명이 백신 대신 치료제를 주사 맞는 일이 벌어졌다.

요양원이나 장기요양시설에서 백신접종을 시작하려면 준비에 몇 달이 더 걸릴 전망인데 일부 주가 이들 몫의 백신을 그냥 비축하고 있는 점도 당장의 백신접종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지금까지 미 전역에 요양시설 몫으로 배포된 백신 8%만 실제 접종됐다.

현재 주별로 백신 접종률 차이가 크다.

가장 높은 사우스다코타주와 그다음인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접종률이 48%와 38%에 이르렀지만 캘리포니아주는 20%, 조지아주는 14%, 캔자스주는 11%에 머문다.

성탄절과 연말 연휴가 이어진 점도 접종이 늦어지는 이유다.

연휴를 맞아 백신 접종대상이자 접종자인 의료진이 휴가를 떠나거나 근무시간을 줄였기 때문이다.

백신 접종 거부감도 무시 못 할 부분이다.

일례로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백신 11만회분 중 3만5천회분만 접종이 이뤄졌는데, 의사와 간호사 등 대상자의 접종거부도 원인 하나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오하이오주에선 요양시설 직원 약 60%가 접종을 거부했다고 마이크 드와인 주지사가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영토가 광대해 백신 관련 물류작업이 다른 국가보다 훨씬 복잡한 점도 접종이 늦는 이유로 꼽힌다. 마찬가지로 영토가 넓은 캐나다도 인구 10만명당 접종자가 10명으로 미국(49명)보다 훨씬 적다.

지금까지 미국의 하루 접종자는 평균 16만2천 명 수준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 후 일일 100만 명으로 높이겠다고 공언했지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먼 상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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