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 가구도 없던 뉴햄프셔 독거 노인, 타운에 수백만달러 기부 |
그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단지 많은 것을 원치 않았을 뿐 |
보스톤코리아 2023-11-22, 19:06:46 |
독거노인이던 제프리 홀트(82)씨는 뉴햄프셔 힌스데일에 있는 모빌홈 단지의 평범한 관리인이었다. 마치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듯 변변한 가구도 없는 모빌홈에서 잔디 깎는 론모어(Lawnmower)를 이동수단으로 삼았던 그가 지난 6월 사망했다. 이 검소하고 가난했던 그는 그냥 떠나지 않았다. 타운에 4백만달러에 가까운 거액을 남겨 타운을 놀라게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는 주로 허드렛일을 했으며 작은 뉴햄프셔 타운을 거의 벗어난 적이 없었다. 고교생들에게 운전교습을 했지만 그 자신은 차를 소유하지 않았다. 평생 자전거를 탔으나 최근 거동이 불편해 지면서 론모어로 이동수단을 바꿨다. 그의 모빌홈에는 TV도, 컴퓨터도 없었고 침대의 다리는 바닥을 파고들었을 정도다. 홀트씨의 절친이자 전 고용주였던 에드윈 스미스씨는 “그는 원하는 것을 모두 가졌었다. 단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라고 전했다. 스미스씨는 전 뉴햄프셔 하원의원이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허름한 옷에 검소하게 살았던 홀트씨는 백만장자였다. 사망하기 전 남긴 그의 유언장은 간단했다. 그가 모은 전 재산 3백80십만달러를 4천200명이 거주하는 힌스데일 타운 커뮤니티의 교육, 건강, 레크레이션 그리고 문화 사업에 써달라는 것이었다. 절친 스미스씨에 따르면 사망 전 82세였던 홀트씨는 모델 차와 기차 모형을 수집하길 좋아했다. 차와 기차 모형은 집안과 카우치, 그리고 심지어 창고에까지 널려있었다. 역사책을 수집하길 좋아했으며 가장 좋아했던 분야는 헨리 포드와 2차 대전이었다. 또한 헨델과 모짜르트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클래식 레코드판 수집가이기도 했다. 홀트씨는 과거 버몬트의 브래틀보로에 있었던 탈곡장의 제품매니저로 일했다. 스미스씨에 따르면 그는 조용한 개울물가에 앉아 재정 및 투자서적을 탐독하곤 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그가 가진 돈을 투자했다. 그가 처음 투자했던 곳의 하나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 통신사 뮤추얼 펀드였다. 홀트씨는 최근 스미스에게 자신의 투자가 의외의 성공을 거두었다며 용처를 물었고 스미스는 타운에 기부하는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전액을 기부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스미스씨는 “전액을 기부한 것을 알았을 때 놀라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유일한 가족은 81세의 누이동생 앨리슨 홀트로 캘리포니아주 라구나우드에 거주하고 있다. 앨리슨은 오빠가 돈을 낭비하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그들의 아빠가 투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에서 배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누이동생에 따르면 제프리 홀트씨는 난독증을 가진 학습 장애인이었다. “일부 분야에서는 스마트 했지만 쓰기와 스펠렝에만 가면 헤맸다”는 것이다. 아빠는 교수였다. 누이 동생은 제프리 홀트씨가 아빠를 실망시켰다는 가책을 안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가 그만큼 재산을 불린 것은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남매는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자랐다. 아빠는 대학에서 영어 및 세계문학을 가르쳤다. 어머니는 퀘이커 문화를 가치로 흡수했던 예술가였다. 이들 부부는 평화운동가였으며 애머스트 타운으로 이사한 후 타운에서 열리는 국제사회의 평화와 정의문제를 위한 타운 집회에 참여했다. 그녀에 따르면 부모님들은 야채 가든을 가꿨고 늘 집안 온도를 낮게 유지했다. 주위에서 기부한 옷들로 자녀들을 입혔다. 늘 엄격하고 검소했다. 자녀들도 부모의 영향을 받아. 행복해지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치 않았다. 이들 남매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좋은 교육을 받았다. 홀트씨는 버몬트의 말보로 칼리지를 졸업했고 해군에서 복역하고 아버지가 교편을 잡았던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누이동생 앨리슨씨는 도서관 사서로 일했으며 그녀 또한 자녀가 없다. 홀트씨는 젊었을 때 잠시 결혼했으나 이혼했다. 모빌홈 단지에서 한 여성과 가깝게 지냈으나 2017년 그 여성은 사망했다. 홀트씨는 몇 년 전 뇌졸중을 앓았으며 이후 거동이 불편했다. 타운은 아직 공식 타운 미팅을 열지 않았지만 기부금을 어떻게 사용할지 토론하고 있다. 타운에 흐르는 커네티컷 강을 낚시와 하이킹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데 쓰일 수 있다. 타운의 1816년에 지어진 우체국을 재건축할 수도 있다. 또한 약 연 15만달러에 달하는 이자소득으로 자선기관에 그랜트를 줄 수도 있다. 홀트씨는 누이동생에게 자신 인생의 목표는 아무도 자신을 주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며 “그렇지 않으면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돈에 대해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며 때론 필요한 게 있으면 누이동생에게 요청했다. 누이 동생은 “그가 자신을 위해 조금도 즐기지 않은 것은 슬프다”라고 털어놨다. 홀트씨는 이런 이유로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소박한 것들을 탐닉했으며 다른 소유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는 늘 자신이 가족들처럼 학문의 길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는 것이 그를 치료했던 물리 치료사의 전언이다. 장애는 그의 선택이 아니었으나 사회에 대한 선물은 그의 선택이었다. 장애를 극복하고 세상에 그의 뜻을 선물한 그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의 유언장은 그의 부모님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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