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원화源花 미실美室(6)
보스톤코리아  2023-12-04, 11:54:36 
사다함이 이사부를 도와 귀당비장으로 대가야를 정복한 후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와서 진흥왕으로 부터 많은 상을 받았다(그는 전답은 모두 부하 낭도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포로들은 모두 양인으로 풀어주었다). 하지만 자신의 출정을 풍랑가로 전송하며 “빨리빨리 돌아와 다시 만나 안아 보자” 던 사랑하는 연인 미실은 없었다. 사다함이 가야의 전단문으로 진격하여 백기를 올리고 마지막 왕 도설지를 포로로 잡던 순간 궁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사도왕후(진흥왕의 정비)를 폐위하고 숙명공주를 왕후로 맞이하려던 지소태후의 계획을 사도왕후에게 고한 미실은 지소의 노여움을 사게되었고, 그로 인해 출궁당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황홀한 밤낮을 보내던 세종은 어느날 갑자기 미실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니 어머니 지소가 그녀를 출궁시켰다. 그러자 세종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워 미실만을 그리워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지소는 아들의 상심을 극히 염려하여 어쩔수 없이 다시 미실에게 입궁을 명하여 세종전군을 섬기게 하였다. 미실이 재입궁한다는 소식을 들은 세종은 기뻐 미친듯 달려나갔다(원문에 ‘전군희광욕주殿君喜狂欲走’ 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의 환대를 받으며 입궁한 미실의 기쁨도 잠시, 미실은 세종의 첩이 되고 싶지 않아 색공色供에 응하지 않았다(얼마전 지소는 미실을 출궁시키고 난 후, 진종의 딸인 융명으로 하여금 세종과 부부의 연을 맺게 하였다. 물론 세종은 융명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직 미실만 그리워하였다). 그러자 세종은 어머니에게 청하여 융명을 출궁시키고 미실을 부인으로 삼았다. 
바로 이 무렵 사다함은 대가야의 마지막 왕 도설지를 포로로 잡아 전승고를 울리며 개선하였다. 그러나 미실은 이미 궁궐에 들어가 전군부인이 되어 있었다. 그는 전쟁에서 겪은 많은 무용담을 사랑하는 연인에게 모두 들려주려고 꿈에 부풀어 돌아왔건만 미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이에 사다함은 그의 슬픈 마음을 노래로 불렀다. 그 내용이 몹시 구슬퍼 당시 사람들이 암송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한다. ‘청조가靑鳥歌’ 로 이름 지어져 미실에게 바친 노래는 다음과 같다. 

<파랑새야 파랑새야 저 구름 위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나의 콩밭에 머무는가
파랑새야 파랑새야 나의 콩밭의 파랑새야
어찌하여 다시 날아들어 구름위로 가는가
이미 왔으면 가지 말지 또 갈 것을 어찌하여 왔는가
부질없이 눈물짓게 하며 마음 아프고 여위어 죽게 하는가
나는 죽어 무슨 귀신 될까, 나는 죽어 신병神兵 되리 
(전주殿主)에게 날아들어 보호하여 호신護神되어 
매일 아침 매일 저녁 전군부처 보호하여
만년 천년 오래 죽지 않게 하리>

한편 사다함을 도와 대가야 정벌에 출전하였던 설성은 전사하고 말았다. 설성은 사다함의 어머니 금진낭주가 사다함의 아버지 구리지가 548년 독산성 전투에서 전사하자 새로 맞은 남편이었다. 그런데 설성마저 562년 가야전투에서 전사하였다. 그러자 원래 색기가 많았던 금진은 아들 사다함의 친구인 무관랑을 집으로 (끌어)들였다. 이에 무관랑은 사다함 대하기가 어려워 늘 괴로워하며 지냈다. 그러나 사다함은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네가 아니라, 어머니 탓이다. 나와 더불어 사우死友를 결의한 벗인데 어찌 작은 혐의를 문제 삼겠는가?” 라고 하였다. 그 후로 금진은 무관랑을 끼고 살았다. 이에 많은 낭도들은 옳지 않은 관계라며 웅성거렸다. 
그러던 중 어느날 밤, 무관랑은 (어떤 연유인지 기록은 없다) 도망을 쳐야만 하는 상황에서 궁궐의 담장, 즉 월성의 담장을 뛰어 넘다가 구지溝池에 떨어져 크게 다쳤다. 결국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460)  
사다함은 가장 친한 벗, 무관랑이 죽자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 하다가 7일 만에 따라 죽었다. 금진은 사다함을 품에 안고 회한의 눈물을 쏟았지만 아들은 영원히 어머니의 곁을 떠나고 없었다.

460) 아들의 가장 친한 벗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금진, 사우死友의 어머니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오던 무관랑이 어느날 밤 월성의 담장을 뛰어 넘다가 크게 다쳐서 죽은 사건은 ‘필사본’ 이 위서가 아니고 진서라는 것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기록 중의 하나이다.
1984년 이전에는 어느 누구도 월성 주변에 구지(해자垓字)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월성의 해자는 1984년과 1990년 1,2차 월성 유적발굴조사단에 의해 그 존재가 들어났다. 화랑세기의 필사자 박창화(1889 ~ 1962)는 1933에서 1942년까지 일본 왕실 도서관에서 근무할 때 화랑세기를 필사하였고, 월성의 구지가 발견되기 훨씬 이전인 1962년 사망하였다. 그리고 그가 필사한 화랑세기는 그의 제자 김종진이 보관하다가 그의 아내 김경자가 1989년 발췌본(32쪽)과 1995년 필사본(162쪽)을 공개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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