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객설閑談客說: 날아라 날개
보스톤코리아  2015-08-10, 12:06:24 
여행하는 계절이다. 한국여행이건 고향과 고국을 찾아 길을 떠난다.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하늘 여행길이다. 오고 가는 길에 건강하시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이상李箱의 ‘날개’ 첫구절이다. 날개는 날개인데, 소설처럼 난해하기 짝이 없다. 이상李箱만이 아니라 인간은 날고 싶어 했다던가. 날기 위해서는 날개가 필요하다. 하긴 날으는 게 걷는 것보다는 빠르다. 하나마나한 소리다. 게다가 아직은 교통정체는 없을 테니 말이다. 

   내게 아주 괴이한 버릇이 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좌석에 앉으면 곧 잠이 쏟아 진다. 긴장감이 풀리고 무사히 비행기를 탓다는 안도감일게다. 문제는 쏟아졌던 잠은 비행기가 이륙하고 정상고도에 이르면 곧 깬다. 이때쯤이면 승무원이 뭐 땅콩따위를 간이테이블에 놓을 시간이다. 그렇게 단잠에서 깨고 나면 나머지 긴 여행시간엔 눈은 말똥말똥, 입안은 깔깔, 허리는 지끈지끈, 머리는 슬금슬금 두통이 드나든다. 오직 사오십 분 간만의  달지만 매우 짧은 잠을 즐긴다는 거다. 그런데 잠을 즐길수 없던 비행도 있었다. 

   아주 오래 전이다. 그날은 이른봄 토요일 아직 점심 전이었다. 일이 있어 연구실에 있었다. 한가한 시간에 새로 부임한 교수가 찾아왔다. ‘비행기 한번 타지 않겠느냐?’ ‘내가 비행기를 갖고 있고 한시간 거리를 날아갔다가 돌아올 것이다’ ‘비행기를 태워주마’ ‘대신 조건이 있다. 나는 자동차가 없으니, 비행장까지 태워다 줘야 한다’ 조건이 어렵지 않았고, 비행기를 탄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를 내 차에 태우고 로칼 비행장으로 가면서 물었다. 비행기는 값이 얼마냐? 개스 마일리지는 좋으냐? 비행기 조종면허는 어떻게 따느냐?  더 중요한 질문. 비행기는 갖고 있으면서 어째 차는 없느냐?  그의 대답이 걸작이다. 차는 중고 한대를 갖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타고 나갔단다. 자가용 비행기를 갖고 있는데 차가 없다는 거다.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은 소형자동차 실내보다 좁았다. 시트는 뜯겨져 있었고 청소하지 않아 잡동사니가 굴러다녔다.  은근한 불안감이 더해졌다.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했을적에 요란한 기계음과 함께 비행기는 이륙했다. 한 시간 날아가서 큰 공항 우체국에 우편물을 떨구고 회항해 왔다. 체공시간은 두시간 남짓. 물론 비행중 땅콩도 음료수도 제공되지 않았다. 비행기가 착륙했다. 안전벨트를 풀고 내려야 했고 문을 열어야 했다. 헌데, 양허벅지에도 통증이 밀려왔다. 양손으로 애꿎은 허벅지만 힘차게 쥐어 뜯고 있었던 거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었다. 다리가 굳은 거다.  손목은 떨리고 있었는데, 뻗뻗해진 고개도 돌릴 수없었다. 내얼굴은 백지장보다 더 창백했을터. 입안은 말라 단내가  진동했음에 틀림없다. 항공기 기장(?)인 그가 괜찮으냐고 물었다. 내 대답이다. ‘죽다가 살아났다.’ 마침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비행기는 구형 세스나 였고 값은 육천불이라고 그가 말했다. 신형 자동차보다 싼값이었다. 덕분에 박제가 된 천재가 될 뻔했던 거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더 날자꾸나. 
한번만 더 날아보자 꾸나.’ 
(이상李箱, 날개 중에서)

‘재물은 날개를 달고, 독수리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잠언 23:5)


김화옥  (보스톤코리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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