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1. 인디언의 고대 문명 (3) |
보스톤코리아 2015-05-04, 11:53:53 |
흙둔덕 건설 문명(Mound Builders) 미시시피 강과 오하이오 강 유역등 현재의 미국 땅의 동쪽 절반에 걸친 광범위한 지역에 오랜 기간 동안 흙둔덕(피리미드와 유사한 언덕)을 건설하는 독특한 문명이 존재해 왔다. 종래에는 루이지애나 주에서 발견된 기원전 1500년경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Poverty Pont가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Povery Point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이보다 2천년이나 앞서 건설된 Watson Brake 유적이 발견됨으로써 흙둔덕 건설문명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5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특히 미시시피 강 유역에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대륙을 침입하던 시기까지도 흙둔덕 문명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1540년에서 1542년까지 미국 남동부를 침략한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도 데소토(Hernando de Soto)를 비롯하여 이 지역을 찾아왔던 유럽인들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 Mound Builders문명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다음과 분류된다. Archaic era Woodland period(Adena culture, Ho-pewell culture, Baytown culture) Coles Creek culture Mississippian cultures Fort Ancient culture Plaquemine culture 이 문명 유적지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Poverty point와 일리노이 주 미시시피 강가에 있는 Cahokia Mounds State Historic Site 등이 있는데 둘 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Cahokia Mounds State Historic Site에는 약 80개의 흙둔덕이 있는데 이 중 Monks Mound가 가장 크다. 대체로 10세기 중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Monks Mound는 중앙아메리카 북쪽에서는 규모가 제일 큰 피라미드로서 1988년 측정 자료에 의하면 가로 291m, 세로 236m, 높이 30m이다. 밑면적의 넓이는 이집트 피라미드와 비슷하며 테오티우칸에 있는 태양의 피라미드보다 더 크다고 한다. 피라미드 위에는 부족 추장의 거처로 보이는 높이 15m의 대형 목제 구조물이 더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시시피 문명을 가장 늦게까지 보전해온 부족은 나체스족(Natchez)이다. 그러나 1730년 무렵 프랑스인들과의 여러 차례 전쟁에서 나체스족이 패함으로써 뿔뿔이 흩어져 미시시피문명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전쟁 중 프랑스군에 잡힌 나체스족은 서인도제도에 노예로 팔렸다.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크리크족, 치카소족, 그리고 체로키족의 영역으로 들어가 피난처를 구하였다. 다음에 다루게 될 체로키족을 포함한 소위 문명화된 5개 부족들도 모두 과거에 미시시피 문명권에 속했다고 한다. 2. 원주민과 유럽인과의 첫 만남 발견의 영웅인가? 날강도인가? 미국 어느 한 초등학교 4학년생들이 콜럼버스를 재판하기 위한 모의법정을 열었는데 여기서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남미의 볼리비아에서는 그의 동상이 동유럽의 레닌 동상이나 이라크의 후세인 동상이 당했던 것처럼 성난 민중들에 의하여 끌어내려져 내동댕이쳐졌다. 콜럼버스 데이를 제일 먼저 법정 공휴일로 지정한 미국 콜로라도 주의 덴버 시에서는 반 컬럼버스데이 행동주의자들의 반대 시위가 거의 매년 계속되고 있다. 어떤 해에는 시가행진 코스를 따라가며 원주민의 피를 상징하는 붉은 액체를 뿌리기도 하였다. 학교의 교과서에서는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영웅적 항해가로 소개되고 소년 소녀들을 위한 위인전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추락하고 있을까? 양심 있고 용감한 사람들이 과거 콜럼버스에 관한 기록을 찾아서 공개함에 따라서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촘스키(Avram Noam Chomsky)교수와 더불어 오늘날 대표적인 행동하는 지식인인 진(Howard Zinn; 1922 – 2010) 보스턴대학 교수가 저술한 미국민중사(A 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는 콜럼버스에 대한 인식전환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그 책에서 라스 카사스(Bartolome de las Casas)의 기록에 근거하여 콜럼버스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많이 밝히면서 이러한 사실들에 대하여 침묵하거나 가볍게 다루고 지나쳐 버리는 사학자들을 나무라고 있다. 콜럼버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1502년 서인도제도로 이주하여 가톨릭사제로서 오랜 기간 동안 현지에 살면서 원주민들의 비참한 모습을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서 후대에 전하였다. 라스 카사스는 교황청 앞으로 원주민에 대한 비인간적인 취급을 금지시켜 줄 것을 청원하는 등 원주민의 인권보호를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 말하자면 그는 최초의 인디언 인권운동가인 셈이다. 한편 라스 카사스와 비슷한 시대에 살았던 드브라이 (Theodorus de Bry)는 라스 카사스가 기술한 인디언의 참혹한 모습을 금속조각(engraving)으로 그려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런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콜럼버스의 잔혹행위가 점차 세상에 알려짐에 따라 콜럼버스데이의 의미가 종전과는 다르게 변질되어 가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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