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톤코리아  2011-09-19, 15:33:39 
술에 만취한 한국인들이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사진들을 올리는 외국인 블로그가 있다. “블랙 아웃 코리아” 라는 이 블로그는 한국에 나가 영어학원 강사로 있는 한 미국인 젊은 친구가 호기심에 사진 찍어 올린 것인데 차츰 많은 외국인들이 사진과 댓글을 올리면서 점점 크게 소문이 나고 있다.

넥타이를 맨 채 그래도 손가방은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넙적다리 밑에 깔고 가로등에 반 쯤 기대어 잠든 남자, 오줌을 지려 엉덩이는 푹 젖은 채 주차장에 옆으로 쓰러져 있는 남자, 지하철 객차 통로를 완전히 가로 막고 널부러져 있는 남자, 가관들이다. 물론 골아 떨어져 잠든 여자도 있다.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절대로 술 드시고 운전하지 마시고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야구팀에서 활약중인 추신수 선수의 집 부엌 냉장고 문에 아내가 붙여둔 메모다. 그런데 지난 5월 2일 새벽 추신수 선수 만취상태에서 운전중 경찰에 붙잡혔다. 8월 초 받은 재판에서 변호사를 대동하여 ‘첫번 실수이고 본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 다시는 음주운전 하지 않을 것이며 음주운전 방지 켐페인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벌금형만 받았다. 추신수는 아내의 충고를 지키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팬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보스톤 일대에 정착해서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보스톤 교민들은 얼마나 술을 마실까? 고국의 실정을 보면서 짐작해 본다.

한국이 술에 찌들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작년 한 해 동안 성인 한 명당 소주 81병, 맥주 86병, 막걸리 10병, 양주 1병을 마신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전체 주류시장에서 10% 가량을 점유한 약주, 매실주, 와인 등의 소비량을 감안하면 우리국민들의 알콜 섭취량은 이미 위험 수위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과도한 음주량의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음이 잇따라 울리고 있지만 증가 추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술을 전혀 못하면 좀스런 사람으로 취급되고, 술이 세면 큰 사회적 능력을 가진 것처럼 여긴다. 대학 입학시즌이 되면 선배들이 신입생들에게 소주를 사발로 들이키게 하여 목숨을 잃는 일이 매년 발생한다. 술을 못 마시면 사회생활 하기가 정말 고달프다. 그러다 보니 나라 전체의 생산성 저하는 물론, 교통사고, 음주폭력 및 간암 발병율 증가 등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알콜 중독자가 매년 빠른 속도로 늘어나 현재 약 2백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은 기뻐도 한잔, 슬퍼도 한잔, 울화가 치밀어도 한잔, 기분이 그저 그래도 한잔을 한다. 불 경기가 오래 지속되니, 사업상 여러가지 어려움에 처한 이 지역 동포 사회도 많은 술을 소비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불경기가 아니더라도 이민생활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두고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 언어 장벽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불안감, 아주 나이스 하고 평등한 듯 하면서도 어느 선을 절대로 넘어 서지 못하게 막는 유리장벽 같은 인종차별, 정말 다급할 때 어디서 돈 천불 빌릴데가 없는 막막하고 척박한 주변 환경, 어려운 일 닥쳤을 때 상의하고 위로 받고 의지 할 진정한 친구 하나 사귈 틈없이 바쁘게 생기는 하루하루의 삶 속에서 한잔 술이라도 없다면 어찌 살아낼 수 있으랴.

우리 선조들이 지은 술이라는 말은 참으로 절묘하다.
첫째, 부드럽다. 말이 술술 나오네. 얽혔던 문제들이 술술 풀리네.
둘째, 예술적이다. 치 마찰음 “ㅅ” 은 술이 무미, 무취한 것이 아니라 일정한 빛과 향기와 믓을 지닌 예술작품 같은 느낌을 준다.
셋째, 물리적이다. 두 자음을 이어주는 원순후설모음 “ㅜ” 는 마치 빗물이 지붕에서 흘러 홈통을 타고 땅으로 스며드는 것 같고 가슴 속 한을 씻어 내려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넷째, 역동적이다. 설측음 “ㄹ” 은 독 속에 술을 쏟아 부을 때 출렁이고 튀어오르는 액체로서의 유동성을 잘 나타낸다.

그래서 술은 적당히 마시기가 힘든 모양이다. 적정량의 음주는 건강에 이롭고 특히 적 포도주는 심혈관 질환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지만 술은 가까이 하지 않는것이 바람직 하다. 그래도 술없는 세상은 너무 삭막하다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분들을 위하여 지난 세월 내가 술자리에 앉을 때 마다 지키려고 노력해 온 음주 수칙 몇 가지를 피력 하고자 한다.

1. 술이 사람을 마시면 안된다. 시작 할 때는 사람이 술을 마신다. 얼마 지나면 술이 술을 마신다. 그리고 나서 절제가 안되면 술이 사람을 마시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2. 빈속에 마시지 말라. 식당에서 음식과 술을 주문하면 먼저 나오는 것이 술병과 술잔이다. 상대방 권유에 한 두잔 마시다 보면 안주 나오기도 전에 온 몸에 취기가 돈다.
3. 술잔 돌리지 말라. 긴 말이 필요 없다. 다만 젊은이 들은 손윗사람 (선배, 직장의 상사, 집안내 어른, …)이 자기 마시던 잔으로 술을 권할 때 정중하게 거절하는 방법을 미리 생각해 두어라.
4. 잔은 세번에 끊어서 천천히 마셔라.
5. 섞어 마시지 말라. 폭탄주 마시는 사람은 정말 어리석은 사람이다.
6. 3박 4일을 지켜라. 다음 술은 4일후에 마셔라.
7. 술 마셨으면 운전대 잡지 말라. “괜찮으시겠어요?” 하고 물으면 대한민국 남자 90%는 “염려말아. 운전 하나는 자신 있어” 라고 말한다.

공익광고 협의회의 TV 광고가 생각난다.
가득 채운 맥주잔이 도로를 질주한다. 도로를 바꾸고 차선을 변경 할 때 마다 술이 넘치면서 슬어질 듯 아슬 아슬 하다. 갑자기 빨간 신호등이 보이는 순간 충돌하는 파열음과 함께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난다.

“즐거우셨습니까?
인생의 마지막 운전이 될 수 있습니다.”


홍성도
연세대 정외과 출신인 홍성도 씨는 공군을 전역한 후, 합동통신 기자, 무역협회 뉴욕 주재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최근 운영하던 세탁업에서 은퇴했다.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의견목록    [의견수 : 0]
등록된 의견이 없습니다.
이메일
비밀번호
창업을 통한 H비자 / 취업영주권 취득 - 2011년 8월 2일 DHS/USCIS 발표 2011.09.19
김성군 변호사의 법 칼럼
스탠퍼드 대학교Ⅰ(Stanford University) 2011.09.19
정준기 원장 교육 컬럼
2011.09.19
술에 만취한 한국인들이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는 사진들을 올리는 외국인 블로그가 있다. “블랙 아웃 코리아” 라는 이 블로그는 한국에 나가 영어학원 강사로..
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14. 백제 문화의 결정판 아스카사(飛鳥寺) 2011.09.19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던 소아마자도 마지막으로 꼭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었다. 소가씨 집안이 조상 대대로 대신(大臣) 벼슬을 물려 받은 것처럼 가야계 도래인인..
그 별이 오래도록 반짝일 수 밖에 없는 이유 2011.09.19
오늘, 다시 읽는 미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