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 백제 문화를 찾아서 : 13. 소아마자의 위상을 나타내는 석무대(石舞台) |
보스톤코리아 2011-09-12, 14:19:21 |
지금까지는 오오사카에 있는 백제 아스카 문화의 자취를 소개하였다. 이제는 오오사카 동남쪽에 있는 나라 평원, 즉 아스카 문명의 본고장인 야마토 아스카로 무대를 옮긴다.
오오사카에서 야마토 아스카를 가려면 긴테쓰 전철 아베노 바시 역에서 미나미 오오사카 선을 타고 가다 아스카 역에서 내리면 된다. 또는 가시하라 진구마에(橿原神宮前)에 내려도 된다. 이곳이 바로 일본 고대 왕조의 발상지로 알려진 야마토(大和奈良縣)의 타게치군(高市郡)아스카촌(明日香村,飛鳥)이다. 지금은 행정구역이 코세시(巨勢市)가 되었다. 아스카 시절에는 이마키(今來郡)군 이라고 불렀는데 말 그대로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라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전체 인구의 80-90%가 백제계 도래인이 아니면 가야의 아야(安倻)계 도래인 아야(東漢)씨 족의 근거지였다. 소가(蘇我)왕조의 주역인 소가씨 씨족도 백제에서 건너온 다음에 바로 이곳에 정착해서 100년이 넘게 일본 왕조를 쥘락 펼락하는 절대 권력을 휘두른 것이다. 아스카 주위로는 야마도 삼산(三山)인 우에비산(敏傍山), 미미나 신산(耳成山 ), 아메노 가구산(天香久山) 이 둘러 싸고 있는데, 부여의 능산리하고 아스카의 풍광이 꼭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고 있다. 아마 그래서 백제 사람들이 고향의 맛을 풍기는 이곳에 정착했을 것이다. 아스카 문화는 한반도, 특히 백제에서 수입된 문화로 불교가 근간을 이루는데, 신도를 신봉했던 왜국인들에게는 이국적인 문화가 된다. 따라서 아스카 문화 유물 유적은 한반도 3국, 특히 백제 사람들의 손에서 창조된 문화라고 해야 맞는 말이 된다. 아스카 역사 공원은 아스카 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데 이 공원 안에 엄청나게 큰 돌로 만든 석무대(石舞台)라는 돌 무덤이 있다. 여우가 밤마다 나타나 돌 위에서 춤을 추었다고 해서 “석무대 무덤” 으로 불려 왔다. 이 무덤의 주인공은 백제계 도래인 목만치(소아 만치)의 5대손 소아마자(蘇我馬子)대신이다. 원래는 돌 위에 흙으로 둥근 봉분이 덮였는데 지금은 봉분 흙은 모두 사라지고 봉분 속에 있던 거석(巨石)만 남아 있다. 고대 백제의 횡혈식 고분이었다. 거석 30여 개를 쌓아 올린 이시부 타이(石舞台) 고분은 야마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는 아스카의 상징이다. 석실의 길이는 19.1m, 현실(널방) 은 높이 7.7m, 폭 3.9m 로 돌 전체의 중량이 자그마치 2300톤이다. 무덤 꼭대기에 있는 천정석의 중량만 해도 77톤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무덤이다. 이 무덤의 주인공 소아마자 대신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엄청난 무덤의 주인이 되었을까? 이것은 오랜 세월을 두고 소가 집안의 딸들이 천황의 황후나 황비로 들어가서, 태어난 후손들이 다음 천황의 대를 계속 이어가다 보니 소가 집안의 권력이 눈사람처럼 계속 불어난 것이다. 길게는 목만치의 아들 갈성 습진언( 葛城襲津彦)의 딸 반지원명(磐之媛命)이 닌토쿠 천황 황후로 들어가서 이중(履中) 천황, 반정(反正)천황, 윤공(允恭) 천황을 낳은 것을 시작으로 습진언의 손자 원(圓)대신의 딸 한원(韓媛)이 웅략(雄略)천황비가 되어 청녕천황을 낳았다. 소가 집안에서 결정적으로 전권을 행사하게 되는 계기는 소아마자의 아버지 소아도목( 蘇我稱目) 대신으로부터 시작된다. 제 29대 긴메이(欽明) 천황은 백제 무령왕의 동생인 26대 게이타이 천황과 무령왕의 딸 수백향 (手白香)사이에 태어 났는데 소아 도목이 딸 견염원과 소자군을 천황의 제3, 제4왕비로 들여 보냈다. 소아마자의 큰 누님 견염원의 소생이 31대 요메이(用明)천황이 되었고, 그가 사망한 다음에는 소아마자 대신이 작은 누님 소자군의 아들을 옹립하니 그가 32대 슈순(崇峻) 천황이다. 소아마자는 자기 딸을 슈순 천황의 황후로 만드는데 슈순 천황이 자기 장인 설치는 꼴이 보기 싫어 제거 하려다가 오히려 소아마자에게 암살당하고 말았다. 소아마자가 그 다음에 왕으로 옹립한 사람이 스이코(推古) 천황으로 견염원의 딸이다. 배다른 오라비 비다쓰 천황의 황후였는데 소아마자가 천황으로 앉힌 것이다. 천황을 세 번씩이나 자기 집안 소생 중에서 옹립하고 눈에 거슬리는 천황을 가차 없이 제거 하는가 하면 천황의 비빈을 소가씨 여자들로 채워버리는 소아마자에게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었다. 소아마자가 스이코 천황과 상의해서 다음 태자로 옹립한 사람이 요메이(用明) 천황의 아들 성덕태자로 그는 요메이 천황과 소자군의 딸 사이에 태어난 소생이다. 소아마자는 자신의 딸을 또 성덕 태자비로 들여 보낸다. 소아마자가 무소불능의 권력을 휘두르자 이에 반발한 사람이 불교를 배척하고 신도(神道)를 옹호하는 물부수옥 대련이었다. 그러나 물부수옥 역시 불교 전쟁에 패하여 사망하자 일본은 소아마자의 1인 천하가 되었다. 이시부타이 돌 무덤 근처에 소아마자가 살던 옛날 집이 있었는데 당시에 일본에서 제일 가는 저택이었다고 한다. 후일에 소아마자의 손자인 소가노 이루카(蘇我八鹿)때 소가씨가 멸망하는데 텐지(天智)천황과 텐무(天武)천황이 소아마자의 집을 궁전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소아마자가 이룩한 업적을 들라고 하면 그가 스이코 천황, 성덕태자와 함께 위대한 아스카 불교 문화를 이룩한 것이다. 스이코 천황은 소아마자의 생질녀이고 성덕태자는 그의 외손자이면서 사위가 된다. 소아마자가 시도한 첫번째 사업은 야마도 아스카의 아스카(元興寺,飛鳥寺,法興寺 )사를 건립하는 것이었다. 588년에 시작하여 8년만인 596년에 일본에서 2번째의 절을 건축하였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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