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남
보스톤코리아  2006-07-07, 23:58:13 
엊그제 만난 지나라는 아이(초등/4학년)가 몹시도 보고싶어지는 아침이다. 그 아이와의 인연이 아마도 시작되었는가 싶다. 이른 새벽에 잠에서 어렴풋이 깰때면 창문 틈 비짚고 들어오는 말간 새소리가 들려온다. 단 한 번도 그들을 위해 준 것이 없건만, 그네들은 아침마다 나를 찾아준다. 고맙다고 마음으로 몇 번을 인사를 한다. 그 마음이 통했을까? 잊지 않고 찾아주는 그 이름 모를 새들이, 그러나 익숙해져버린 말간 새들의 노래를 난 아침마다 듣고있다.

"오늘은 어떤 인연의 시작일까?" 하고 궁금해하면서 새들의 지저귐을 또 그렇게 듣고있다. 지나를 만난 것은 다름 아닌, 붓글씨 클래스에서였다. 아직은 너무도 작은 공간에서의 미흡한 만남이다. 하지만 큰 감동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 아이와의 만남이 집에 돌아와서도 오래도록 난 그 아이를 떠올렸다.살결이 까무잡잡하고 야무지게 생긴 아이를, 예쁜 얼굴보다는 눈이 깊어 좋은 느낌을 받았다. 봄을 보내고 여름을 맞으려는 무렵에 좋은 인연이 시작됐다. 늘 전통문화와 전통춤에 관심이 많은€나는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배우고 싶은데,€우리 동네는 여는 지역과는 달리 그런 자리가 마련된 곳이 거의 없었다. 물론 배우려는 사람들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각자의 전공분야에만 열중을 하는지? 때론 궁금해지기도 한다.

또, 아니면 그야말로 하늘이 짝꿍(남편)의 말을 빌리자면, "돈도 안되고 시간만 가득 부어야 하는 전통문화?" 아마도 비지니스 맨의 생각으로는 정말 그럴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뭐 그리 섭섭해하지 않는다(삐지지 않고 웃음으로 받아들이는 일) 늘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남의 눈을 의식했다면 아마도 처음부터 시작은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몸의 어려움보다는 마음의 큰 뜻이 있기에 그리 힘들다는 생각 없이 늘 자리가 있으면 찾아 나서는 것이다.

사물놀이를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문득 한 신문 광고에 '전통문화 센터'라는 광고 귀절이 눈에 들어왔다. 배우고 싶은 욕심에 얼른 전화를 넣었다. 원장 선생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다.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와 한 번 만나고 싶다는 말씀을 해오신 것이다. 그렇게 우리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먼 이국 땅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서로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또한 붓글씨 얘기가 나왔다. 붓글씨 클래스를 시작하고 싶다고 하시기에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사실 한문을 배운 세대가 아니라 어렵겠지만, 한글을 원하는 기초자 분들은 함께 공부를 할 수 있겠노라고 말씀을 드렸다. 붓글씨를 좋아했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가르침도 받았다. 좋아서 밤새도록 쓰기도 하고 작품을 만들기도 하였다. 물론, 요 몇 해 동안은 글쓰기 작업에 바빠서 소홀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렇게 붓글씨 클래스가 시작되었다. 물론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연세가 드신 50 중반이 넘은 분들이시다. 열심히 노력하시고 과제도 잊지 않으신다. 그 열정적인 모습에 늘 깨닫고 돌아오는 이는 다름 아닌 바로 내 자신이었다. 나 역시도 더 들여다보고 좋은 공부가 되고 있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종강식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지막 클래스가 있는 날, 자그마한 아이가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이 끄트머리 시간을 놓치기 싫은 마음이었다. 애써서 배우려는 아이가 너무도 예뻤다. 바로, '이 끄트머리 시간'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내 가슴 깊이에 머물렀다. 놀라움의 깨달음인 것이다.

아이에게 기본의 자세와 쓰는 법을 함께 나누며 간단한 기본의 글씨를 쓰도록 했다. 너무도 침착하고 애쓰며 붓글씨를 쓰는 모습에 나는 그만 매료되고 말았다. 처음 서예를 만났다는 아이, 너무도 진지한 모습에 감동이었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내심 여름방학 동안도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전하며 아이의 기다림을 전해주고 있었다. 종강식이라고 서로에게 서운한 마음을 나누었는데, 마치는 시간이 되어가자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한다. 배우고 싶다는 아이 앞에서, 공간을 마련해 주시는 원장 선생님과 그리고 아는 것만큼 나눠주고 싶은 선생의 마음, 그리고 옆에서 바라보는 또 다른 열심이신 나이 드신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그럼, 며칠 더 생각을 해보고 또 만나자는 말씀을 드리고 종강식을 마쳤다. 아마도 그 아이의 눈빛이 하도 맑고 고아서 마음에 오래 남는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마련을 하고 싶어졌다. 그 '끄트머리 시간'을 놓치지 않고 기다렸던 침착하고 진지한 예쁜 아이를 보면서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시간의 소중함을, 만남의 귀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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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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