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 인디언의 역사 : 5. 조상의 땅을 사수하라 (6)
보스톤코리아  2015-09-14, 12:22:12 
블랙호크 전쟁(Black Hawk War) (계속)
미국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는 링컨(Abraham Lincoln)은 약 석 달 동안 민병대 지휘관으로 블랙호크 전투에 참전하였다. 그는 참전 공로로 미국정부로부터 땅을 증여받기도 하였다. 그는 한 중대를 지휘했는데, 이전에 아무런 전투경험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능력 있는 지휘관으로 평가받았다고 한다. 

플로리다 세미뇰 부족의 수난
플로리다는 처음 스페인의 식민지로 개척되었다. 1754년부터 1763년까지 지속되었던 영국과 프랑스와의 7년 전쟁에서 스페인은 프랑스 편에 서서 영국과 싸웠는데 프랑스 연합군이 패배함으로써 플로리다의 지배권이 영국으로 넘어왔었다. 그러나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영국이 식민지세력에 패배함으로써 전쟁에서 식민지 편을 들었던 스페인이 1783년 베르사이유조약에 의거 플로리다를 되찾게 된다.

플로리다 지역의 중심 부족은 세미뇰(Seminole)족으로 그들은 매우 개방적이어서 크리크 전쟁에서 후퇴한 붉은 막대기(Red Stick) 지파를 비롯하여 도망쳐 나온 아프리카 출신 흑인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미국을 빠져나와 플로리다 세미뇰 부족의 영역으로 많이 모여 들었다. 세미뇰 부족의 품으로 들어온 흑인들은 블랙 세미뇰이라 불렀는데 이들과 인디언간에 결혼하는 경우도 많았다. 플로리다 지역 인디언들이 이따금 국경을 넘어 조지아나 캐롤라이나 정착민을 공격하자 미국은 플로리다를 침범하여 세미뇰 족과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은 1814년부터 1819년까지 계속되었는데 흔히 제1차 세미뇰전쟁으로 불린다. 이 전쟁의 결과로 스페인은 텍사스에서의 기득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플로리다의 지배권을 미국에 넘기게 된다.

1835년 말부터 1842년까지 세미뇰족은 미국과 두 번째 전쟁을 치렀다. 앤드루 잭슨이 대통령이 된 후 본격적으로 밀어붙인 인디언 격리정책에 따라 플로리다의 세미뇰족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강제 이주시킬 것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세미뇰은 이 정책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 인디언들의 격렬한 저항은 전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세미뇰족과의 2차 전쟁에서 미국은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 7년간 쓰인 전쟁비용은 2천만 내지 4천만 달러로서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규모였다고 한다. 이 시기에 약 3천명의 세미뇰 인디언과 약 8백 명의 흑인 세미뇰이 강제 이주를 당했다고 한다. 끝까지 저항한 수백 명의 인디언들은 남서부에 마련된 비공식 인디언보호구역으로 수용되었다.
1855년 말에는 제3차 세미뇰전쟁으로 불리는 충돌이 또 발생하였다. 이 전쟁은 1858년까지 비교적 작은 규모로 진행되었는데 전쟁의 결과로 163명이 뉴올리언스행 배를 타고  강제 이주의 길에 올랐다.

6. 체로키의 눈물의 길
체로키족의 수난
전쟁영웅으로 이름을 날렸던 앤드루 잭슨이 1828년에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인디언들은 혹독한 시련의 계절을 만나게 된다. 잭슨 재임 시절의 미국은 인디언과 흑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영토 확장과 국력증강에만 골몰하는 백인 정착민들의 전쟁국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조지아 주가 체로키족의 존재를 원천적으로 지우기를 추진하고 나섰다. 조지아 주 방위군의 지원 하에 금을 채굴하려는 백인들이 마음대로 체로키 영토를 침범해 들어왔다. 1830년에 앤드루 잭슨의 인디언 강제이주법(Indian Removal Act)이 북부 출신 양심 있는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연방의회에서 근소한 표차로 통과되었다.

체로키 부족은 촉토, 치카소, 크리크, 세미뇰족과 함께 소위 ‘5개의 문명화된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이다. 연방정부에 의하여 인디언 강제이주가 추진되자 체로키족을 제외한 나머지 4개 인디언 부족들의 대부분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을 받아들여 1830년에서 1832년에 걸쳐 그들의 고향을 떠나 오늘날 오클라호마(오클라는 붉은색을 뜻하고 호마는 사람을 뜻하는 인디언 말)에 있는 인디언의 땅(Indian Territory)으로 이주하였지만 체로키족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부에서 온 헌신적인 우스터(Worcester) 선교사 등의 지원을 받으며 또 법률적으로 대항하면서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1828년에 대추장으로 뽑힌 존 로스(스코틀랜드계 아버지와 체로키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남)는 강제 이주에 끝까지 맞서 싸우기로 다짐하고 워싱턴으로 달려가 연방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연방 대법원장 마셜(John Marshall)은 역사적인 두 재판, 곧 1831년의 ‘체로키족 대 조지아 주 사건’과 1832년의 ‘우스터 선교사 대 조지아 주 사건’에서 오늘날까지 미국 원주민의 정치적 지위를 결정짓는 유명한 판결을 내렸다. 첫 번째 판결에서 그는 인디언은 외국인과는 다른 내국 속민이라고 판결했는데 인디언과 그들의 영토는 연방 정부 하에서 연방 소속의 개별적인 주들과 병렬적으로 존재하는 준독립보호령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두 번째 사건에서는 조지아 주의 법률은 체로키족의 영토에서는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이때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어허 마셜이 그런 판결을 내렸다고? 그럼 자기가 그렇게 집행해 보라지!(John Marshall has made his decision; now let him enforce it!)” 이쯤 되면 오늘날의 잣대로 보면 탄핵감이 될 텐데, 당시의 시대상황에서는 별로 문제 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다음 호에 계속)


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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