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76
보스톤코리아  2015-04-13, 11:46:06 
‘신의 손(God’s Hand)’라고 불리던 가라데의 대사大師, 오오야마 마스타쓰大山倍達는 태평양의 작은섬 오키나와에서 탄생한 가라데(당수)를 일본 열도는 물론 전세계로 전파한 인물이다. 그는 가라데 종주국의 일본인이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다. 최영의崔永宜, 최배달崔倍達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한국인이다. 상당히 아이러니칼하게도 일본의 가라데(공수)가 그들이 멸시하던 한국인에 의해서 전 세계로 보급되었다. 전라북도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적부터 무술을 연마하였고 해방전 어린나이에 일본으로 가서 근대 가라데의 창시자 후나고시 기친으로 부터 공수를 사사받았고, 조형주 밑에서도 본격적으로 무도의 정수를 전수받았다. 18개월 동안의 문명을 등지고 ‘입산수도’한 최영의는 자신의 무도세계를 득도한 후 하산하여 50여 마리의 황소와 겨루고 세손가락으로 동전을 구부리는 등의 초인적인 저력과 경이적인 무술의 기예로 전일본 열도를 매료시켰다. 그리고 최영의는 당시의 가라데 수련방식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기에 자신이 고안한 ‘극진가라데’(당시 일본의 공수는 상대방 앞에서 멈추는 ‘No Contact’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최영의는 실전에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그가 창시한 극진가라데는 급소공격, 손에 의한 안면공격 등 몇가지의 금지사항만 있을뿐 ‘가혹하다’ 하리만큼 실전위주의 격투기인 ‘Full Contact’ 스타일이다)를 보급하기 위하여 열도 전역의 무림의 고수들과 대결하여 연승을 하였다. 

그리고 1952년 일본의 유도 대표 엔도오 코오키치와 함께한 미국순회시범은 미국인들에게 신비한 동양무술을 완벽하게 각인시켰으며 ‘가라데’가 ‘무술’을 대신하는 일반명사가 되었다.(현재도 용어의 고착화로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가라데’는 무술/Martial Art를 대신하는 용어로 쓰인다. 태권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일부의 무술 경험이 있는 미국인들이 가라데는 단지 일본(오키나와)에서 발생하여 전래된 무술의 하나라고 인식시키고 용어 정상화에 노력을 하지만 ‘최영의의 효과’는 반세기가 넘어도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1960,70년대의 초창기 태권도 지도자들은 ‘코리안 가라데’ 라고 간판을 걸고 관원들을 모집하였다. 그것은 단지 무도인의 절개를 꺾었다기 보다는 현지인들에게 생소한 용어인 ‘태권도’보다는 익숙함을 유도하기 위한 ‘상술’이었음에 더 가깝다)

최영의는 미국순회시범을 하면서 미국의 프로복서와 프로레슬러, 프랑스 전통무술인 사바떼(Savate), 브라질의 전통무술인 까뽀에이라(카포에라, Capoeira) 등의 세계유수의 전통무술(격투기)의 고수들과 대결하여 연승하였다. 그의 경이로운 무술실력에 감탄한 미국인들은 그를 ‘신의 손(God’s Hand)’라 불렀고, 그의 대결장면이 TV에 방영되면서 그에 의한 신비한 동양무술의 월등한 기예의 입증은 물론, 자신은 최고봉의 가라데 대사大師(Grand Master)로 입지를 구축하였다. 그의 특출한 기예는 세계인들을 감동시켰고, 훗날 스페인의 카를로스 국왕, 요르단의 후세인왕, 모로코의 하산왕 등이 그의 지도를 받았다. 
또한 최영의는 1954년에 3개월간 동남아를 순방하며 극진가라데를 보급하였으며, 이때 웰터급 타이킥복서의 맹주 블랙 코브라(Black Cobra)와 겨루어서 첫회 2분여만에 턱을 으스러트려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20세기 무도역사에 명실공히 국제적인 거인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의 명성은 1970년대 브루스 리(李小龍)의 출현 이전 까지는 가히 절대적이었다. 최영의는 1956년 자신이 득도한 가라데를 정립하고 정통성의 보급을 위하여 도쿄에 도장을 개관하였고 1961년에는 자유롭고 거친 쿠미테(助手, 맞장 대련)를 강조하는 ‘극진회極眞會’를 창립하였다.113)  

1959년과 1962년 미국을 다시 방문하여 뉴욕과 시카고 등지에 분관을 설립하고, 30여장의 기와장을 일격에 박살내는 등 특이한 시범을 계속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더욱 집중시켰다. 1962년 유럽 순방 후 소련과 동구권에도 분관을 설립하여 현재 약 520개가 넘는 ‘극진회관’이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뿐만아니라 무도의 이론정립에도 힘쓰면서 자신의 전기를 비롯한 80여권의 책을 발간하였다. 그는 한국인이란 신분으로 인하여 일본이 그의 명성과 가라데의 일인자라는 것을 부정하면서도 그의 전기는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으며 일본 국적항공사(JAL)가 극진가라데를 일본의 대표무도로 지원하고 있었음은 상당히 아이러니칼하다. 그는 모국인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인정과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94년 70의 나이로 비흡연자였는데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113) WUKO(세계가라데조직연합)의 시합은 다칠 위험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최영의의 극진가라데는 급소공격과 손으로 안면공격 등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호구(보호 장비)도 없이 자유롭게 공격이 허용돼 대련(겨루기) 도중 부상자가 속출한다. 약 120개국에 극진회 지부가 있으며 2천여만의 수련생들을 보유하고 있다.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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