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의 아들 주몽과 고구려 건국 6.
보스톤코리아  2007-09-16, 22:19:36 
백린 (역사 학자)


-북부여 와 동부여-

광개토 호태왕의 비문에 고구려의 시조 주몽이 북부여 에서 나와 비루곡의 홀본으로 와서 기업을 일으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북부여가 도대체 어디냐는 것이다.
여러 문헌을 조사하여 보았으나 이렇다 할 확신을 주는 기록을 찾지 못하였다. 한국 고대사인 삼국사기 에는 북부여의 명칭만 보일 뿐 그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하지만 북부여는 주몽의 탄생과 고구려의 건국배경을 확실히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주기 때문에 간단하게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일연의 삼국사기 는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북부여와 동부여에 대한 사적을 간단히 설명해 주고 있다. 이에 의하면 본래 북부여의 왕은 해부루였다고 한다. 왕은 상제(하느님)의 명에 따라 도읍을 동부여로 옮겼다. 하지만 동부여라고 해서 본래 나라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또 북부여 와 의 경계선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해부루가 북부여에서 나와 동쪽으로 와서 새로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옮겼기 때문에 해부루왕의 도성을 동부여 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해부루가 하느님의 명에 따라 왕도를 동쪽으로 옮겼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도읍을 쉽게 옮길 수 있느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분명히 어떤 중대한 사건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증빙할 자료가 없어서 그 동기를 밝히기가 어렵다.
삼국유사는 전하기를 북부여왕 해부루의 제상 아란불이 말하기를 자기의 꿈에 천사가 내려와서 이르기를 장차 내자손으로 하여금 이곳에 나라를 세우게 할 것이니 너희들은 다른 곳으로 피해가라. 동해바닷가에 가섭원 이라는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짐으로 왕도로 삼기에 적당하다고 하였다면서, 해부루 왕을 권하여 도읍을 그곳으로 옮기도록 하고 국호를 동부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삼국유사 가 인용한 이 전설을 해부루 왕이 북부여 에서 쫓겨나 동쪽으로 와서 새로 나라를 세웠다는 사실을 전해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삼국사기 는 그 후의 사실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다. "그 옛 서울에는 한 사람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지 못하나 자칭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고 하면서 그곳에 도읍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 해모수는 어떤 위인이며 그리고 "북부여가 창건된 연대는 확실히 언제이냐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삼국유사 는 북부여의 창건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해주고 있다. "전한선제(前漢宣帝) 신작 3년(BC57년) 4월 8일에 천제(하느님)가 오룡기를 타고 홀승골성 으로 내려와 도읍을 세우고 왕이라 일컬으며 국호를 북부여라 하였다.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라 하고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고 하였는데 해(解)를 씨로 삼았다." 라고 하여 그 창건연대를 확실히 말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해부루왕이 동부여로 피해간 후 곧 해모수 라는 위인이 나타나 그곳에 도읍하고 국호를 북부여 라고 하였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북부여의 왕 해모수의 아들 부루와 동부여로 피해간 해부루 왕은 전혀 딴 인물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삼국유사 는 전하기를 "왕(부루)은 이후에 재상의 명에 따라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라고 하여 마치 북부여왕 해모수의 아들 부루가 동부여로 도읍을 옮긴 것 같이 말해주고 있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인용한 고기는 그 기사가 거칠고 애매한 데가 많아서 이해를 엇갈리게 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고려의 김부식도 「삼국사기」를 지어 올리는 글에서 "고기(古記)는 문자가 거칠고 잘못된 데가 있으며 사적이 빠져서 없어진 것이 많다" 고 평하였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전해온 사료를 수집하여 편찬한 고기는 그때까지 한국의 상고사를 말해주는 것으로써 그것을 앞서는 기록이 없었던 것 같다.
어쨌든 북부여가 창건된 것은 서기전 57년으로 그것은 주몽이 탄생하기 22년 전 일이다. 그리고 주몽의 어머니 유화가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사통했다는 그 시기와 도 같은 때가 된다. 그래서 광개토호태왕의 비문에도 동명제(주몽)가 북부여 에서 나왔다고 기록한 것 같이 보인다. 이에 따라 천제의 아들 북부여왕 해모수가 곧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 주몽의 사실상의 아버지였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사실은 천제가 오룡차를 타고 홀승골성에 내려와 도읍을 정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홀승골의 골(骨)은 두무골, 산골, 밤나무골 이라고 하는 곡(谷)의 한문자 표기 이다. 어쨌든 천제가 홀승골성에 내려와 나라를 세웠다는 전설이 얼마나 장엄한 장면인가. 그것은 하느님의 권능이 임재 하셨다는 영광 북부여의 창건을 전해주는 아름다운 전설이라 자랑할만한 일이다.
한국은 단군이래로 천제 즉 하느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세웠다는 성스러운 신화와 아름다운 전설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고전인 시경, 서경, 예기 등 에서는 도시 천제라는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하늘의 권능을 뜻하는 천명, 황천, 천자, 상제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으나 그것은 천인 상관설에 의한 것으로 하느님이라는 신격을 지칭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천제 하느님이라는 존칭은 오직 한국의 고대사에서만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삼국사기 삼국유사는 단군, 해모수, 주몽 등의 설화에서 모두 천제의 자 즉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나는 천제를 하나님이라고 번역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하느님 이라고 번역했다. 이 같은 고대 한국인의 천제 즉 하느님 숭배 사상은 체질화하여 그것은 오늘날 한국인의 기독교 신앙에 자극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북부여왕 해모수가 자칭 천제의 아들 이라고 하면서 해(解)를 그 씨로 삼았다고 하는데 해씨 그것은 분명히 하늘의 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日)를 한문자로 표기한 것이라고 본다.
중국의 사마천은 그의 저 사기에서 일, 월(日, 月)을 천자와 태후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보았다. 해모수의 해씨는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는 태양숭배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것은 천제 즉 황실을 의미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군림하여 나라를 세웠다는 그 북부여의 위치가 지금의 만주 어디냐는 것이다. 필자가 관계문헌을 찾아 조사한 바 그것은 지금의 길림성 구태(九台)즉 장춘 부근의 길림 지방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하여는 논의가 좀 길어지게 될 것이므로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겠다.
<2주 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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