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계절
보스톤코리아  2023-05-08, 14:31:05 
참으로 다사다난했던 2022년이었습니다. 
미사일을 자주 쏘아댄다는 북한발 뉴스를 비롯하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엔 동족끼리의 전쟁이, 트루키예 지역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가공할만한 지진은 물론, 가뭄과 폭우, 폭설과 폭풍, 대형 산불까지 지구 곳곳마다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에 의한 자연 재해 등. 오는 듯 가는 듯 "코로나 19" 전염병은 여전하여 세상을 두렵고 혼란스럽게 하였으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엔 철따라 계절의 변화가 아름다웠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아름답다"라는 표현은 어떤 상황이나 사물의 내용을 "아는 것 같다"라는 풀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봄이 되면 겨우내 얼어 붙었던 물의 해빙과 아울러 기지개를 켜는 수많은 생명들, 부드러운 봄비를 맞으며 피어나는 연두빛 나무잎과 꽃들의 잔치뿐 아니라
"꽃등인양 창앞에 한그루 피어오른 살구꽃 연분홍 그늘가지 사이로
작은 멧새 하나 찾아와 무심히 놀다 가나니..." (후략)
희미한 기억 속에서나마 옛 시인이 노래한 봄의 정취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여름이면 치열한 성장의지로 푸르른 엽록소 나무에 달린 여러 장의 잎 중에서 몇 장은 자신의 성장에, 또 다른 몇 장은 숲의 다른 생물을 위한 것이라니 우리 인간들도 서로 나누고 도우며 살라는 자연의 교훈이라 하겠습니다.
여름 나무 우거진 골짜기나 공원에 앉아 "푸른 멍때리기"를 하는 것도 심신을 건강하게 하는 명상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데.."아니 벌써 서늘한 바람인가?"
더운 여름에서 곧장 추운 겨울로 가지 않고 중간에 서늘한 가을이 있음은 분명 겨울을 준비하라는 신의 관용입니다.
봄에도 가을에도 나름대로의 꽃이나 잎이 아름답기는 마찬가지인데 특별히 가을에 열리는 풍성한 열매가 귀하다는 의미에서 일까? 코스모스나 노란 국화 등 소박한 가을꽃과 울긋불긋한 단풍, 거기에 열매가 어울어진 가을빛을 일러 "勝似春光(승사춘광)" 즉, 가을빛이 봄빛을 능가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표현에 공감하게 됩니다.
열매는 그 식물 자체에게는 종족보전의 씨앗이 되는가 하면 사람에게는 좋은 먹거리가 되기도 하는데, 여름내 푸르렀던 식물에 '안토시안'이 많이 형성되면 감이나 사과같이 붉은 열매와 잎이 나타나고 '카로티 노이드'라는 물질이 많이 생기면 은행잎이나 달콤한 과일인 배처럼 노란색 계통으로 나타난다고 하는 사실을 어느 문헌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단조로운 갈색 단풍이 많았던 예년에 비하여 붉은 색과 노란 단풍이 유난히 선명한 2022년 가을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빛깔의 향연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먼 산으로 단풍구경을 떠나고 홀로 남은 나는 뒤뜰에 서 있는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었습니다만, 아쉬운 것이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수년 전에 겪은 뇌경색의 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내게는 여러모로 배려해 주는 친절한 이웃들이 여러분 계십니다.
한인신문에 연재되는 나의 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시다는 이든이 할머님도, 황송하게도 늘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 주시는 어르신도, 나의 글에는 깊이가 적다고 평가하시는 어른도 나에게는 찐 독자가 되기에 그분들이 들려주는 어떤 음성이라도 나에게는 더 좋은 글을 쓰라는 격려가 되어 왔습니다.
남이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 좋은 음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솜씨 좋은 권사님이 나누어 주시는 음식은 나의 기력을 회복해 주는 보약이 되었으며, 만날 때마다 자신의 큰 형님을 본 듯이 반기시는 교회 어른의 미소는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가!
연세 많으신 전직 교사님께서 전해 주시는 유익한 글이나 음악, 때로는 잘 구운 계란 몇알도 내게는 기쁨이었습니다.
"숲 속에 숨어 있는 집들이 외로움이 아니라 행복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우수수 떨어져 뒹구는 낙엽이 슬픔이 아니라 결실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후략. 이금자 시인)
시 쓰는 친구의 의미 깊은 시어(詩語)에서 받는 가슴 울리는 감동 역시 내게는 치유의 에너지가 되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지요. 더운 날씨에도 나의 불편한 거동을 부축해 주시던 노란 모자 쓴 권사님의 친절을 내 어찌 잊으리요!
봄, 여름 지나 이제 가을이 되었으니 겨울과 함께 어김없이 연말이 될 텐데 나는 그분들께 무엇으로 보답할 수 있을까?
내가 받은 넘치는 사랑에 이해가 가기 전에 보답하고 싶은 나의 소망은 나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무엇이던지 간절히 원하면 하늘이 도와주신다고 하던가. 즉, "사람이 하는 계획을 이루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경전 말씀처럼 어느 날 바람 쏘이러 나갔던 남편이 두손 가득 알밤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두어해 전에 그로서리에서 사다 먹던 밤 몇톨을 뒷마당 한켠에 묻었는데 그것이 어느 틈에 싹을 틔어 올해는 밤이 제법 많이 열렸다고 했습니다.
크고 싱싱한 알밤을 보자 나의 눈이 번쩍 띄었습니다.
돈 주고 가게에서 사오는 밤보다 크고 싱싱한 그 밤들은 내가 사랑의 빚을 진 어르신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선물이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비교적 넓은 터전으로 이사 와서부터 복숭아나 사과 묘목 등 몇가지 과일나무를 심어 보았지만 번번히 실패, 아마 이곳 토양이 맞지 않나 보다는 생각으로 창가에 앉아 한탄만 하고 있는 동안 마당 한구석에서 조용히 알밤을 키우신 하나님 - 참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는 참으로 아름다운 계절 2022년 가을이었습니다.

글 : 민유선




나의 어머니

과수원에 사과가 익어가는 가을이 되면 어머니께서는 늘 사과를 끓이셨습니다. 사과 쨈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요. 저는 쨈이 완성되기 전 물 속에서 끓고 있는 사고 쪽 먹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어느 때는 쨈이 될 사과도 남지 않을 정도로 다 먹어버리기도 했지만 어머니는 꾸중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사과 물'이라는 새로운 요리 이름을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을 정해진 틀로 보지 않는 창의적인 생각을 가진 어머니셨지요.
어느 해 봄, 어머니께서 참가하시는 주부백일장에 따라 간 적이 있었습니다. 지방의 소도시에서 미리 참가 신청을 한 후 기차를 타고 당도한 서울, 햇살에 빛나는 신록 사이사이에 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고궁의 잔디밭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쓰고 계신 어머니와 많은 주부들의 모습이 제 평생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음은 자기 개발에의 열정이 충만한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대한적십자사에서 근무하고 계실 때였습니다. 주부들로 구성된 봉사단에서 떡을 해가지고 군부대 위문 행사를 하기도 했지요. 어머니께서는 당시 초등학교 학생이었던 저와 저의 친구들을 모아서 작은 공연을 계획하셨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피리불기와 무용으로 강원도 산골의 군인장병들 앞에서 공연을 하였는데 위문 받는 군인 아저씨들보다 공연하는 우리들이 더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이 역시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갖고 계신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미국과 한국으로 떨어져 지내던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요즈음, 이런저런 옛 기억들이 새로운 인생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언제까지나 젊고 예쁠 것 같던 어머니의 얼굴에서 70여 년 연륜의 주름을 보며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한 여인을 실감하게 되는 오늘입니다. 어머니는 참 강하게 살아 왔고, 지금도 강하게 살고 계시구요! 그러한 어머니의 딸인 나는 과연 어떻게 살고 있는가?
수년간, 즐거울 때나 슬플 때나 몸이 아파 쓰러졌을 때에도 일주일마다 뉴잉글랜드 한인회보에 글을 써 오신 어머니의 의지에 존경심을 드립니다.
먼 곳에서도 인터넷으로 어머니의 글을 읽으며 마음으로 공감과 사랑을 느끼는 것이 저에게는 큰 행복이고 기쁨이었습니다.
이제 한 권의 책으로 간직하게 되니 더욱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2년 가을 큰딸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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