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32세 풍월주風月主 신공信功(17)
보스톤코리아  2023-04-24, 11:30:00 
신라의 삼보三寶(三奇) 중의 하나인 옥피리, 신문왕이 용의 예언에 따라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안의 가뭄과 홍수가 없고, 또한 외적마저 막을 수 있었으니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졌다는 피리이다. 그래서 그것을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불렀다. 그런데 이 귀중한 보물을 신문왕의 아들인 효소왕 대에 그만 분실하였다. 설화적인 요소가 가미된 삼국유사에서 잃었던 그 피리를 화랑 부례랑에 의해 찾게되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부례랑夫禮郞, 그의 아버지는 사찬(8등급) 대현이다. 부례랑은 692년(효소왕 원년) 9월에 화랑이 되었다. 당시 그를 따랐던 화랑의 무리가 1,000명이었다. 부례랑이 692년 화랑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그때 화랑에 입문을 한 것이 아니라 화랑의 수장인 국선이 되었다는 뜻이다(681년에 자의태후가 ‘흠돌의 난’ 을 일으킨 주모자들이 풍월주 출신들이며 많은 화랑도들이 개입하였기에 화랑을 폐지하였다. 그러나 태후는 동년에 사망하였고 화랑의 풍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화랑도를 이끌던 수장이 풍월주에서 국선으로 바뀌었다. 국선 또한 그 때 이름 된 것이 아니고 설원랑이 7세 풍월주를 역임할 당시에 이미 있었다).441)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국선 부례랑과 되찾은 만파식적의 내용을 간략하게 보면, 693년3월에 부례랑은 낭도들을 거느리고 금란金蘭(현 강원도 통천)으로 유람을 떠났다. 그런데 3월11일 북명北溟(원산시 부근으로 추정)에서 부례랑은 적인狄人442) 들에게 납치되었다. 그러자 부례랑의 벗 안상安常이 적인들을 추격하여 부례랑을 구하러 쳐들어갔다.  
한편, 국선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은 왕위 귀에도 들어갔다. 그래서 효소왕은 만파식적을 불어 부례랑을 구하려고, 그 피리를 보관하던 천존고天尊庫로 가니 상서로운 구름이 창고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 있어야 할 보물, 만파식적이 사라지고 없었다. 이에 효소왕은 창고를 관리하던 김정고金貞高 등 5명을 감옥에 가두고 나서, 만파식적을 찾아오는 자에게는 1년치 조세를 상으로 주겠다고 하였다.
또한 부례랑의 부친 대현은 아들의 납치 소식에 부인과 함께 백률사柏栗寺(현존하는 사찰로, 이차돈의 목을 베었을 때 흰 피가 솟구치고, 잘린 머리는 소금강산까지 날아 갔으며, 날아간 머리가 떨어진 곳에 법흥왕이 세운 절이 백률사라고 한다. 또한 백률사는 신라 8괴八怪 중의 하나이다) 에 가서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매일 기도하였다. 관음보살상(자비로 중생을 구하고 이끄는 보살, 천수천안千手千眼의 형상이다, 즉 손이 천개이고 눈도 천개인 불상이다) 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 주었음인가! 그들이 기도를 한지 두 달이 지난 어느날(5월15일) 아들 부례랑과 안상이 불상 뒤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그들이 어떻게 백률사까지 오게된 사연을 물어보니,
부례랑은 납치된 후 대도구라大都仇羅라는 사람의 집에서 목동이 되어 대오라니大烏羅尼라는 들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한 승려가 나타나서 자신을 바닷가로 데려갔고, 거기서 안상을 만났다. 그리고 그 승려는 들고 있던 피리(만파식적)를 둘로 쪼개어 그들에게 하나씩 타게하고, 자신은 거문고를 타고 서라벌의 백률사까지 순식간에 날아왔다는 것이었다. 이에 효소왕은 많은 공물을 백률사에 바쳤고, 만파식적을 ‘만만파파식적’ 으로 높혀 부르게 하였다. 물론 옥에 가둔 김정고 등 창고 관리들을 다 풀어주고 그들의 직급을 높혀 위로하였다. 
화랑의 우두머리 부례랑이 많은 낭도들을 거느리고 북쪽 지방으로 유람을 갔을 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이야기가 비교적 상세하게 날짜까지 기록된 것으로 보아 설화적인 부분만 제외한다면 분명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덧붙혀 몇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은 고구려 멸망 후, 발해의 건국 전까지의 중간기에 잔여 세력이 있었음이 나타나며, 또한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납치되었는데도 낭도들은 가지 않고 안상 혼자만 갔다는 것은 화랑들의 무예나 협기가 삼국통일 후 평화기를 거치면서 많이 변해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도 있다.    

441) 7세 풍월주 설화랑은 572년에서 579년까지 화랑을 이끌었다. 설화랑이 풍월주의 위에 있을 당시의 시대적 배경으로는 진흥왕 말기와 진지왕 재위를 거쳐 진평왕 즉위년까지다. 이미 그 당시에도 문노文弩가 이끄는 ‘호국선護國仙’ 이라 불리는 화랑들이 국선 문노를 따르고 있었다. 국선의 임명도 진흥왕에 의하여 받은 것이다. 그 당시 화랑의 외형적인 조직은 풍월주인 설화랑이 이끌었지만, 향가를 잘하고 청유淸遊를 즐긴 화랑도들은 설화랑을 따랐고, 무사武事를 좋아하고 협기俠氣가 있는 화랑도들은 문노를 따랐다. 그리고 문노는 설화랑을 이어 8세 풍월주가 되었다. 그 후로는 화랑세기에 국선이라는 지위는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다. 

442) 적인들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여러가지로 추정을 해볼 수 있다. 당시는 발해가 건국(698년)되기 전이기에 신라 국경 밖의 고구려 잔존세력으로 추정해 볼 수도 있고, 또는 나당전쟁(대양성 전투, 도림성 전투 등) 당시 강원도 북부와 함경도 남부 지역이 전장이 되면서 고구려인들이 피난 가고나서 공백지에 유입된 말갈족을 적적狄賊(적인)으로 칭했다는 설이 그것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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