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만에 은퇴한 BSO 제1바이올리니스트 황보엽 선생과의 대화
11월 1일 웨스턴 자택에서, 치열한 음악 열정, 삶의 여정 얘기 들어
보스톤코리아  2022-11-10, 18:34:44 
(보스톤 = 보스톤코리아) 장명술 기자 = 11월 첫날 보스톤 심포니(BSO)를 49년만에 은퇴한 바이올리니스트 황보엽 선생을 만났다. 황선생의 웨스턴 자택을 방문하기 위해 30번도로를 타고 서쪽으로 달렸다. 집 인근 비터스윗(Bittersweet) 래인에서 좌회전을 해야 했다. 특이한 도로명이라 뇌리에 머무른다. 

황보엽 선생은 한국 음악 1세대에 가깝다. 음악을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한국전쟁 전후 시절 음악을 시작해 미국 5대 심포니 중의 하나인 BSO의 제1바이올리니스트에 이르기 까지 삶의 여정이 궁금했다. 대가에게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도 설렜다. 

화요일 아침, 그랜드 피아노가 놓인 응접실에서 커피한잔과 함께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약간 흐린 날씨였지만 아침 바람은 상쾌했다. 

8월 탱글우드 시즌 종료와 함께 은퇴한 그는 곧바로 고관절치환(Hip replacement)수술을 받았다. 이제 걷고 운전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은퇴 후 “여유가 있어 좋다”는 그였지만 일상의 관성은 아직 은퇴를 실감하지 못한 듯 했다. 매일 아침 ‘뭐가 없나’ 자신의 스케줄을 점검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터스윗, 은퇴의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이올린과 음악에 관한 이야기
부산 피난시절 교회에서 피아노음을 듣고 이를 악보에 적는 훈련을 했는데 만점을 맞곤했다. 합창단에서도 활동했다. 서울로 돌아온 후 황 선생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바이올린을 주문했다. 몇 번을 주문했는데 통관시 사라지곤 했으며 몇 차례 만에 드디어 바이올린을 구할 수 있었다. 

바이올린의 거장도 시작 때엔 치열한 연습의 과정이 필요했다. 황 선생은 “바이올린을 배울 때 늘 손 놓는 곳 이런 기술적인 것에만 집중하고 했다. 연습하면서 내가 하는 음악이 제대로 되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연습을 녹음하기 시작했다. 녹음해서 들으면 도저히 라디오에서 들리는 그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는 제대로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며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알려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시대 군대 군악대에서 배우거나 해서 음악을 가르쳤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리코더도 구하기 어려웠다. 리코더 테이프 이런 것은 사치성 물건이어서 구하기도 힘들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안영구 선생님에게서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오신 분이었는데 이분에게서 배운 것은 독일 음악을 하려면 독일 문화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나라 문화를 모르면 그 음악을 제대로 연주해 낼 수가 없다.” 

“플라맹고의 느낌은 그나라 음악을 연주할 때 그대로 표현된다.”는 그가 플라맹고의 경쾌한 느낌을 음과 몸짓으로 표현했는데 정말 그 느낌이 살아났다. 헝가리 음악은 한국과 유사해 모든 음악의 첫부분이 강하게 시작되는 느낌이란 것도 직접 노래로 표현했다. 

한국에서 청룡음악상, 위스컨신에서의 영 컴페티션 우승을 차지했던 그였지만 여전히 바이올린은 만족스러운 게 아니었다 보다. 

황 선생은 “미국에 유학와서 30-40대 정도 됐을 때 녹음하면 정말 내가 연주한 것이 맞나 할 정도로 훌륭한 소리가 났다. 어느 순간 악보를 받으면 코드를 보고 연주해 보지 않아도 음악이 귀에 들리는 것처럼 펼쳐졌고 어떻게 연주해야 할 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한국말로 하면 달인인 것처럼 말이다. 모든 프로패셔널 연주자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이렇게 악보를 꼭 연주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그들도 훌륭한 연주자들이다. 다시 말해 각자의 음악의 접근 방법이 다르다. 그러나 내가 연주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음악은 음식과 유사하다.”고 그는 말한다. “모두 같은 재료와 양념을 가지고 요리해도 각 요리사의 취향에 따라 요리의 맛이 다르다. 음악의 맛도 그러하다. 너무 양념이 많아도 또는 너무 양념이 적어도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음악을 정말 웅장하게 연주해도 맛이 전혀 나지 않는 그런 음악가도 있다. 물론 어떤 관중들은 이런 웅장한 음악가를 좋아하기도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데이비드 내디엔과의 인연
데이비드 내디엔(David Nadien)이란 바이올리니스트를 좋아해 개인 레슨을 받을 간 적 있다. 그는 바이올린을 가르치던 첫날 당장 오케스트라를 그만 두라 했다. 

그러나 가정이 있고 가족을 양육해야 하고 집도 페이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케스트라를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그에 따르면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가 아닌 지휘자의 연주를 해야 한다. 지휘자들은 같은 음악도 자신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게 연주하므로 하는 손짓과 지휘에 따라 음악의 강약을 조절하고 소리를 낮추거나 높여야 한다. 그렇게 지휘자의 의도대로 연주하는 것이 뛰어난 오케스트라 연주원이기도 하다. 

나중에 데이비드 내디언을 구글로 검색해 보니 그는 1970년대 유명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을 1970년에 사임했다는 뉴욕 타임스의 기사가 있었다. 흥미로워 그의 기사를 스크랩 해두었다. 

보스톤 심포니의 연주자의 일과
보스톤 심포니는 매일 하루에 5시간씩 연습한다. 일주일에 3곡을 연습해 연주하곤 하는데 연주가 없는 날은 오전, 오후 2차례 연습을 하고 연주가 있는 날은 오전만 연습한다. 보통 연주회는 화,목,금,토 있는데 다음주 연주를 위해서는 일요일에 5시간씩 연습하곤 했어야 했다. 

젊었을 때는 따로 연습을 안해도 그 때 그 때 잘 대처해 연주할 수 있었단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서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2시간을 연습하곤 했었다. 

보스톤 심포니에 들어가게 된 계기
콩쿠르에서 1위를 해서 밀워키 심포니 부악장으로 2년째 재직하던 중 보스톤 심포니의 바이올리니스트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총 5차례에 거쳐 시험을 봤다. 5번째 차례는 보스톤 심포니가 뉴욕에서 연주회가 있었기에 뉴욕에서 최종 시험을 치렀다. 당시 최종 시험에 남은 사람은 12명인데 그중에 2명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2명을 두고 향후 지휘자 내정자인 세이지 오자와가 최종 시험을 다시 봤다. 

세이지 오자와는 추후 첫 보스톤 취임에서 아시안을 선택하지 않으려 했었다고 밝혔단다. 그래도 그는 (아시안이 아닌) 황보엽 선생의 재능을 선택했다. 

심포니에도 야구의 메이저리그와 비슷한 것이 있다. 과거 보스톤, 뉴욕, 필라델피아, 클리블랜드, 시카고가 5대 심포니로 꼽혔으나 근래에는 클리블랜드 대신 샌프란시스코가 포함되었다. 야구로 치면 이 5대 심포니가 메이저리그다. 

그림, 도자기 목공예
황보엽 선생은 그림에도 재능이 남다르다. 유화 및 수채화를 수준급으로 그릴 뿐만 아니라 집에는 손수 빚은 도자기가 많다. 게다가 예수가 못박힌 십자가의 조각도 직접 했다. 황 선생은 뭐하나 하면 집중해서 며칠간이고 그것에 집중한다고 했다. 바쁜 일과를 쪼개 그 같은 예술작품 창작활동을 겸했다. 

바쁜 생활에 어떻게 이를 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바쁘지만 그 시간에도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바이올린을 레슨을 할 때 학생들은 학기 중에 연습을 했냐고 물어보면 학교, 액티비티, 숙제에 쫓겨 할 시간이 없었다고 답한다. 여유가 있는 방학 때 연습했냐고 물어보면 똑같이 다른 것으로 바빠 할 시간이 없었다고 답한다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의 양이 문제라기 보다는 결국 하고자 하는 의지에 달린 것이라는 점이다. 


황보엽 선생의 바이올린
바이올린 하나는 응접실 피아노 위에 놓여 있었고 다른 하나는 다이닝 룸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탁자위에 놓인 바이올린은 좀 낡아보여 황보엽 선생의 바이올린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하며 바이올린을 집어 올렸다. “이것은 소리가 아주 힘있고 강하다”며 “모든 바이올린은 소리가 각기 다르다”고 말했다. 피아노 위에 놓인 바이올린은 소리가 아주 아름답다고. 황 선생은 그자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는데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강하게 숨을 쉬는 듯했다. 


에필로그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은 연주회를 끝나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많은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지만 프로패셔널은 자신의 연주에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좀처럼 떠나지 않고 붙잡는다. 자신감은 스스로가 있다 없다 표현하는 자만이 결코 아니다. 필자에게 자신감이란 매일 시간을 들여 수천, 수만의 반복에서 오는 익숙함으로 해석됐다. 비터스윗 래인을 타고 나오며 표지판이 같은 글이지만 다르게 읽혔다. 고진감래(苦盡甘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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