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20세 풍월주風月主 예원공禮元公(1)
보스톤코리아  2021-03-22, 11:24:36 
법흥왕의 외동딸 지몰시혜비只沒尸兮妃(지소태후)는 삼촌인 입종과 결혼하였다. 그들은 534년에 아들을 낳았다. 그가 삼맥종으로 후일 제 24대 진흥왕이다. 그리고 3년이 지나면서 약관의 나이를 조금 지난 537년에 입종은 사망하였다.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지소는 태종(이사부)과 재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6세 풍월주가 된 세종과 숙명공주를 낳았다. 한편 진흥왕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사도 박씨를 왕비로 맞았다(사도의 부모는 박영실과 옥진이다). 그런데 지소는 사도의 인맥姻脈이 대원신통이기에 탐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진골정통의 인맥姻脈인 자신의 딸 숙명공주로 하여금 진흥왕과 또 혼인시켰다. 그래서 진흥왕과 숙명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가 정숙태자이다. 하지만 진흥왕은 숙명을 좋아하지 않았고 정비 사도를 사랑하여 장남 동륜태자, 차남 사륜(후에 제25대 진지왕)과 삼남 구륜 등 여러 공주들을 두었다. 그리고 동륜태자는 만호와 결혼하여 백정(제26대 진평왕)과 백반과 국반 등 아들 셋을 두고, 572년에 아버지 진흥왕의 후궁 보명의 치맛폭을 풀려고 월담하다가 개에게 물려서 죽었다. 졸지에 과부가 된 만호는 후일 정숙태자와 사통하여 딸 만룡을 낳았다. 이 만룡이 12세 풍월주을 역임한 김보리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20세 풍월주 김예원이다. 김예원은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할아버지이다.

한편 숙명공주는 어머니 지소태후의 명으로 이부동모 오빠인 진흥왕과 결혼하였지만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어머니의 침신寢臣인 이화랑(4세 풍월주 역임)과 눈이 맞아 야밤에 궁궐을 월담하여 멀리 도망하여 살았다. 졸지에 딸에게 정인을 빼앗긴 지소태후는 딸과 ‘사랑싸움’ 을 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결국 그들을 용서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낳은 아들들이 원광법사와 보리공이다. 이 보리가 만룡을 부인으로 맞아 예원공을 낳았다.
예원은 자라면서 9살 위인 매형 김흠순을 친형처럼 따르고 존경했다. 또한 예원은 흠순의 인도로 화랑이 되었고, 621년 김염장이 17세 풍월주에 오르면서 김흠순을 부제로 삼으면서, 그는 14~5세에 전방화랑에 기용되었다(김흠순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형 김유신의 명으로 부제의 자리를 김춘추에게로 양보하였다. 그리고 김춘추가 18세 풍월주, 김흠순이 19세 풍월주를 지냈다). 김춘추를 이어 풍월주에 오른 김흠순은 예원을 부제로 삼았다. 그리고 흠순은 부형父兄처럼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고 싶어 화랑의 모든 낭정郎政은 예원에게 맡겨놓고 변방을 돌아 다녔다. 단아하고 자상한 성격의 예원은 낭정의 대행을 성실히 수행하며 불합리한 많은 폐정을 개혁하였다. 화랑도의 조직내부에는 태동시기 부터 파벌이 있었다. 거기에는 인맥姻脈을 배경으로 하는 진골정통파와 대원신통파, 그리고 가야 출신들의 무리를 중심으로 가야파가 형성되어 있었다. 

삼국사기(신라본기 진흥왕37년, 576년) 에 보면, 그해 처음으로 원화를 받들었으며, 미녀 두 사람 즉 남모南毛와 준정俊貞을 뽑고 무리 300여명을 모아서 원화를 조직했는데 그들이 서로 아름다움을 질투하여 준정이 남모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여 억지로 술을 먹이고 취하자 강물로 끌고가 던져 죽였다. 그로 인해 원화를 폐지하고 미남자들을 택하여 곱게 꾸며 화랑이라 이름하여 받드니 무리들이 구름같이 모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데 562년(진흥왕 23년) 이사부가 대장군이 되어 대가야 정벌을 할 당시 화랑 사다함이 귀당비장貴幢裨將으로 참전하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화랑세기에 보면 그 내용이 상세하게 나오며 사다함은 5세 풍월주를 지냈다. 즉 화랑의 조직은 576년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화랑은 제23대 법흥왕의 마복자로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위화랑魏花郞의 이름에서 기원된 것으로 보아 540년에 설치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고려사절요가 더 정확한 것 같다. 위화랑은 화랑의 수장인 1세 풍월주로 화랑의 설치와 조직의 기반을 다졌다. 

또한 ‘남모와 준정의 사건’ 으로 인해 없어졌던 원화제도도 세종이 6세 풍월주로 재임할 당시 그의 부인 미실이 원화로 모든 화랑도를 장악하였다. 미실은 세종의 부인이였지만 진흥왕이 총애하였기에, 세종은 변방을 돌며 국경을 지키는데 많은 세월을 보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화랑도 내부의 파벌은 거의 없었는데, 시나브로 7세 풍월주 설원랑 중심의 운상인雲上人과 8세 풍월주 문노를 따르는 호국선護國仙으로 나누어졌다. 그들은 대립을 한것이 아니라 다만 운상인은 향가와 청유를 즐기며 골품이 있는 무리들이 주류였고, 호국선은 무사武事를 좋아하고 협기가 있는 무리들로 초택草澤의 일반 하층민도 있었다. 그러다가 화랑도는 조금더 분파가 되었다. 문노파 중에서 가장 정예인 통합원류파, 대원신통을 받드는 미실일파, 문노의 낭도이지만 진골정통으로 지소태후를 따르는 일파, 정숙태자를 따르는 이화류파, 그리고 김서현을 따르는 가야파로 파벌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자 화랑도의 내부 승진은 능력이 아니라 파벌로 나누어 가졌다. 그러다가 13세 풍월주 김용춘이 능력위주로 등용을 하면서 파벌의 구분이 많이 지워졌지만 여전히 낭도들은 낭두郎頭 등의 승진을 위해서 딸이나 누이를 풍월주에게 첩으로 ‘상납’ 하였다. 그래서 호색하는 풍월주(10세 미생, 13세 용춘, 17세 염장 등) 들은 첩들이 많았다. 그렇게 어어져오던 폐습과 폐정을 부제 예원은 19세 풍월주 흠순을 보좌하면서 일대 계혁을 단행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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