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민 이정기(李正己) 장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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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톤코리아  2021-03-22, 11:19:48 
평로군은 안록산군의 포위망을 뚫고 발해만을 건너 등주에 상륙하였다
평로군은 안록산군의 포위망을 뚫고 발해만을 건너 등주에 상륙하였다
이정기 장군은 요동의 영주에서 고구려 유민으로 탄생하였다(732-781). 원래 그의 본명은 이희옥이었는데 33세때 당나라 대종 황제로부터 이정기로 사성을 받았다.
고구려가 멸망 당한 668년에 20만명의 고구려 유민들이 집단적으로 끌려간 곳이 영주였는데, 그는 고구려 패망후 64년 뒤에 태어난 것이다.

이정기 본인의 어린 시절에 관한 기록은 일절 없는데 이는 모든 고구려 유민들은 자신의 인생을 노예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고구려 사람들이 노예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영주에는 2만여명의 군인이 있었는데 1/3은 고구려 사람들이었고 이정기도 성인이 되어서는 군인의 길을 선택하였다. 고구려 사람으로는 많이 알려진 장군들이 많은데 왕모중은 당현종때 국방 장관 같은 위치에 있었고 왕사례, 고선지, 이정기는 모두 같은 시대의 군인으로 안록산에 대항해서 싸운 사람들이 있었다. 왕사례는 고향도 영주사람이었다.

이정기는 당시 영주를 근거지로 삼고 있던 평로군의 비장으로 자신과 내외종간이었던 후희일(侯希逸)과 함께 복무했는데, 이정기의 손위 사촌이었다. 후희일은 안록산의 난이 한창일때 안동도호 왕현지와 공모하여 안록산의 친장(親將)으로 평로 절도사로 부임한 서귀도를 죽이고 왕현지를 평로군 수장으로 옹립한다. 이로인해 후희일, 이정기는 안록산 군의 핍박을 계속 받게 된다. 그런데 왕현지가 병사하자 이정기는 후희일을 다음 절도사로 추대하였다. 당시에 절도사를 임명하는 권한은 당황실이 결정하는 것이지만 힘이 있는 쪽에서 결정하는 것이 대세였다.

후희일은 이정기의 추대를 받아 평로 절도사가 되었지만 상황이 결코 낙관적이지 못했다. 그 이유는 범양과 평로 지역은 안록산 군의 본거지였을 뿐만 아니라 후희일과 이정기가 안록산 군의 장수를 살해해서 언제라도 안록산 군의 공격을 받게 될 수 있고 당나라 조정으로부터는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거란계인 요동의 해족(奚族)까지 평로군을 공격하자 요동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들 평로군 2만명은 발해만의 묘도 열도를 건너 산동 반도의 등주(登州)에 상륙하였다(761).

산동 반도에 상륙한 762년에 당숙종이 후희일을 평로 절도사로 임명하였다. 성덕 절도사 이보신과 연합하여 청주에서 안록산의 잔당인 사조의 난을 평정하고 평로, 치청, 기주, 제주, 해주, 밀주를 차지했다. 당시에 여러 주의 절도사들이 사조의 군을 토벌하기 위해 모여 들었는데 당나라를 돕기 위해 참전한 위구르 장수들이 오만 불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횡포가 너무 심해서 당나라 병사는 물론이고 당나라 장수들까지 채찍질을 받을 정도였다. 당나라 장군 위소화는 채찍에 맞은 장독으로 목숨까지 잃게 되었다. 이때 이정기가 나서 위구르 장군과 결투를 벌이게 되었는데, 여러 군사들이 구경하면서 "회홀이 정기를 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결투가 시작되자 이정기가 먼저 상대의 등을 내리쳤다. 결투는 싱겁게 끝나 버렸다. 회홀 장수가 겁에 질려 오줌을 싸게 되자 구경하던 군사들이 소리내어 웃었다. 이로부터 회홀 장수는 부끄러워 다시는 난폭하게 굴지 못했다. - 구당서 이정기 열전.
당시 이 결투는 많은 군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벌어졌기 때문에 이정기는 병사들 사이에서 단숨에 영웅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정기의 명성에 시샘을 품게된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그의 고종사촌 평로 치청 절도사 후희일이었다. 후희일은 이정기를 시기하고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는 이정기에게 주었던 병마사직을 박탈해 버리고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후희일은 불교에 심취하고 절을 짓는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점차 재정이 어려워지고 공사에 동원된 병사들로부터도 불평이 나오게 되었다. 가는 곳마다 점쟁이를 데리고 다녔고 미신에 빠져 있었다. 그날도 그는 무당과 함께 성밖에 있었는데 군사들은 그틈을 노렸다. 후희일이 잠시 성을 비우자 병사들은 급히 성문을 닫아 걸고 열어주지 않은 것이다. 한번 닫힌 성문은 다시 열릴 줄 몰랐다. 병사들은 그를 내치고 이정기를 받아 들였다. 이 반란을 누가 사주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당조정은 이정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765년에 당나라는 후희일을 몰아내고 이정기를 평로 치청 절도사, 해운압 신라 발해 양번사, 겸교 공부상서 겸, 어사대부, 청주자사로 임명하며, 이정기(正己)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산동 반도는 기후가 좋고 물산이 풍족해서 이정기 부대가 크게 성장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산동성에서는 소금 생산이 주산업이다. 당나라 소금의 절반은 산동 반도에서 생산하고 있었는데 이정기는 염전의 수를 계속 늘리고 있어 소금 전매로 수입이 늘어나고 있었다. 또 산동성과 서주, 연주에서는 철과 동의 생산이 각각 10%씩 되어서 전략물자 공급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산동 반도 등주지역은 그 지리적 여건으로 발해, 신라, 일본의 외교사절과 무역 상인들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곳으로 이정기가 받았던 직책 하나가 바로 '해운 압 신라 발해 영번사'로 신라, 발해, 일본의 정치, 외교, 무역을 총괄하는 관직이었다. 이정기는 이 관직을 이용해 당조정을 배제하고 발해, 신라, 일본과의 독자적인 무역을 하게 되어 이정기에게 대단한 이익을 안겨주게 되었다. 특히 발해의 명마는 모두가 탐내는 전략물자로 이정기는 한해에 만마리의 말을 사들였다고 한다(구당서). 이것은 발해가 이정기에게만 주는 특혜였다.

이정기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중국 사서 신구당서와 자치통감에 기록되어 있고 국내 문헌에는 유일하게 환단고기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환단고기에는 이정기가 나라를 세우자 대진국(발해) 문황제가 군사를 보내 싸움을 도왔다는 기록이 있다. "대흥 45년 치청 절도사 이정기는 군사를 이끌고 당나라 군대에 항거하니 발해황제는 장수를 보내어 싸움을 돕게 하였다."라고 기록하였다.

이정기가 세운 제나라는 당나라의 법이 아니라 발해와 고구려 영향을 받은 문화와 법제, 세제를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제나라가 55년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정기의 능력에 앞서, 발해가 이정기의 뒤를 봐주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독자들은 잘 모를지 모르지만 발해 무왕과 당현종은 2번에 걸쳐 치열한 전쟁을 치른 적이 있었다. 732년 발해 무왕때 산동 반도 등주성을 침범하여 이를 함락시키고 등주자사 위준을 사살하였다. 당군이 반격했지만 계속 실패하였고, 신라 성덕왕 32년에는 당나라에 가 있던 김사란을 귀국시켜 지금 함경도 남쪽 발해 지경을 침범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마침 폭설이 내려 많은 신라군들이 사망하여 신라가 철군하였다. 바로 그 이듬해(733)에는 발해 무왕이 직접 만리장성 동쪽 지경인 마도산을 공격해서 당군 만명을 사살했다. 그 이후로 당나라는 발해를 함부로 공격할 수 없게 되었고 이로 인해 발해는 이정기에게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게 되었다.


김은한 
보스톤코리아 컬럼니스트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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