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
화랑세기花郞世紀, 19세 풍월주風月主 흠순공欽純公(3) |
보스톤코리아 2021-01-18, 13:06:24 |
김흠순은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의 증조할아버지인 보리의 서녀와 결혼했다.326) 김흠순은 어린나이에 화랑에 입문하였고, 뛰어난 그의 재능을 인정 받아 18세에 전방화랑이 되었다. 전방화랑은 풍월주와 부제에 이어 화랑을 통솔하는 수뇌부의 일원이다. 그래서 상선(전임 풍월주)들을 방문하여 ‘신고식’ 을 하게 되었다. 물론 12세 풍월주를 지낸 보리공도 찾아 갔다. 그는 거기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같은 낭자를 보게 되었다. 아마도 하절기였는지 김흠순은 보리를 정자에서 배알하였다. 그 때 16세의 빼어난 아름다움을 풍기는 보리의 딸은 연못가에서 동생과 놀고 있었다. 이에 김흠순은 눈을 떼지 못하고 그녀의 미모에 넋을 잃고 있다가 보리공에게 작별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허둥지둥 정신없이 돌아갔다. 그 후 그는 선녀처럼 아름다운 낭자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 며칠을 뜬눈으로 지내다가 다시 보리공의 집을 방문하였다. 화랑세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흠순공은 18세에 전방화랑前方花郞이 되어 상선上仙을 두루 배알했다. 나의 보리菩利 할아버지를 찾았을 때 예원공의 서매인 보단낭주는 바야흐로 나이가 16살이었고 예원공은 9살이었다. 공은 보리 할아버지를 정자 위에서 배알하고, 보단이 예원공을 데리고 정자 아래 연못가에 있었는데, 요조함이 마치 신선과 같았다. 공은 곁눈으로 오랫동안 보다가 갔다. … 수일 만에 와서 보리 할아버지를 만나 뵙고 사위가 될 것을 청했다. 보리 할아버지는 그 …을 장하게 여겨 …하며 말하기를 “남자가 삼가야 할 것은 색이다. 네가 나의 딸을 사랑하되 다른 여자들을 많이 거느리지 않으면 곧 줄 수 있고, 그렇지 아니하면 줄 수 없다” 했다. 공이 맹세를 했다. 보리할아버지는 이에 보단을 공에게 시집보냈다.] 위의 인용문에 보면 ‘보리 할아버지’ 가 몇 차례 등장하는데, 원문에도 ‘조祖’ 라고 기록되어 있다. 화랑세기를 김대문이 집필했다면 증조할아버지로, 김대문의 아버지 김오기가 집필했다면 할아버지로 봐야 한다. 김대문의 조부인 김예원에 대해서는 호칭 없이 이름만을 기록했기에 명확히 누가 집필했는지 알 수 없다. 김흠순은 첩을 많이 두거나 어색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보리의 사위가 될 수 있었다. 선녀같은 보단낭주를 아내로 맞은 그는 늘 행복해 했다. 그의 형 김유신은 큰일이 있으면 집앞까지 왔다가도 그냥 돌아가서 처리한 반면 김흠순은 늘 박식하고 재기가 넘치는 부인 보단을 존중하며 그녀의 의견을 듣고 대사를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아들만 일곱을 낳았다. 흠순은 후처에게서도 2남3녀를 두었다. 그런데 자녀들에 대한 기록은 일부만 전한다. 3남 반굴은 삼국사기에도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반굴은 김유신의 딸, 즉 사촌인 영광令光과 혼인하여 아들 영윤을 낳았다. 반굴은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홀로 계백의 결사대로 들어가 많은 적군을 베고 전사하였다. 이에 좌장군 김품일은 아들 관창에게도 반굴의 뒤를 따르라고 명하였고, 화랑 관창도 반굴의 뒤를 따르니 신라군은 사기가 충천하여 파죽지세로 백제군을 공격하였고 마침내 사비성을 함락하였다. 그리고 넷째 아들 원수元帥와 여섯째 아들 원선元宣은 중시를 지냈다. 또한 후처 이단利丹의 소생인 아홉째 (막내)아들 원훈元訓도 중시를 지냈다. 삼국사기에는 원사元師가 신문왕 8년(688년) 에 대장大莊을 이어 중시를 2년간 지낸 기록이 있는데, 아마도 이 원사元師가 김흠순의 넷째 아들 원수元帥임이 틀림없다. 그리고 2년 후인 690년(신문왕10년) 에 선원仙元이 중시를 지낸 뒤 여섯째 아들 원선元宣이 692년에 중시에 올랐다(효소왕 원년). 그리고 3년 뒤인 695년에 노환으로 물러났다. 막내 아들 원훈은 702년(성덕왕 원년)에 중시에 올랐다. 한편 삼국유사에는 당시 신라에 초호화 개인주택인 금입택이 35채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실제 기록은 39채이다). 그런데 그 중 17세 풍월주 김염장이 살았던 ‘수망택’ 만이 화랑세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수망택에 대한 규모나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묘사가 없다. 그런데 보리가 소유한 주택이 금입택의 하나였지는 알 수 없으나 단편적으로나마 집안의 구조가 묘사되어 있다. 연못과 정자가 출현한다. 연못은 분명 인공으로 조성된 원지苑池일 것이니 나름 주택의 규모를 상상해 볼 수 있다. 326) 보리는 12세 풍월주를 역임하였다. 보리의 아들은 예원이고, 예원의 아들이 오기이며, 오기는 김대문의 아버지이다. 김대문이 화랑세기 후기에 기록하였듯이 화랑세기는 오기가 저술을 시작하였다. 그런데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기에 김대문이 관직에 있으면서 자료를 모아 보충하여 아버지의 계고稽古의 뜻을 이엇다. 그런데 김대문이 어떤 분량의 자료를 모아 보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울러 후세 풍월주로 내려올수록 기록의 양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다가 27세 김흠돌 부터는 아주 미미하다. 이것은 ‘김흠돌의 난’ 의 주모자인 흠돌과 공모한 역적들의 기록을 후대에 남기고 싶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냥 아버지 오기공이 남긴 자료를 모아 책만 편찬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심지어 김대문은 28세 풍월주를 지낸 아버지 오기공에 대한 기록도 별로 남기지 않았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 보스톤코리아(http://www.bostonkorea.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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