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도(花郞徒)와 성(性) 그리고 태권도(跆拳道)
화랑세기花郞世紀, 18세 풍월주風月主 춘추공春秋公(7)
보스톤코리아  2020-11-16, 11:40:50 
고타소는 김춘추의 장녀이다. 김춘추는 문희를 부인으로 맞이하기 전에 이미 정궁부인이 있었다. 보라궁주317) 가 그 주인공인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보라의 이름 조차도 등장하지 않는다. 화랑세기에만 나온다. 그렇다면 화랑세기(필사본)가 위서인가? 역설적이게도 그 필사본이 진서를 보고 필사했음이 보라의 등장으로 오히려 한번 더 입증할 수 있다. 고타소는 김춘추의 딸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등장한다. 어머니의 기록이 정확하게 없으니 그냥 문희의 딸로 기정사실화 되어 있다. 화랑세기(필사본)의 출현으로 인하여 고타소가 문희의 딸이 아닌 보라의 딸임이 확인되었고, 춘추는 문희와 혼인하기 전에 이미 정궁부인 보라가 있었음도 확인되었다. 필사본의 기록만으로는 원본을 보고 필사했다는 것을 믿지 않으려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고타소를 통해서 필사본이 진서임을 확인시켜주는 부분은 화랑세기의 기록(보라가 김춘추의 정궁부인이며 고타소가 그들의 장녀)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삼국사기에 기록된 그녀의 죽음/죽임에 관한 기록이다. 고타소는 642년 8월, 당시는 선덕여왕 재위 11년이었고, 백제 의자왕 재위 2년이었다, 백제의 장군 윤충이 1만의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서쪽 40여 성을 함락시키고, 8월에 대야성(현 경남 합천)을 공격하였을 때 죽었다(죽임을 당했다). 당시 대야성 도독은 김품석金品釋이었는데, 고타소의 남편이며 김춘추의 사위이다. 성주 김품석은 싸우지도 않고 항복하였으며 가족과 함께 윤충의 군사들에게 죽임을 당했다(품석이 처자를 먼저 죽이고 자결했다는 기록도 삼국사기의 열전 죽죽편에 실려있다). 여기서 중요한 단서는 대야성이 함락되고 품석과 고타소가 죽은 642년이다. 김춘추의 장남 김법민이 626년에 태어났다318) . 그리고 일반적으로 고타소가 법민의 동생이며 문희가 어머니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고타소의 출생 연도는 빨라야 627년이다. 그리고 대야성 함락 당시 그녀의 나이는 아무리 많아도 15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미 자식(들)이 있었다. 물론 당시 고타소는 12,3세 일 수도 있다는 추산이 나올 수도 있다. 김품석의 출생 기록이 있다면 도움이 될텐데 그의 출생 기록도 없다. 당시에는 왕을 비롯하여 대부분 사람들의 출생 연도의 기록이 없다. 그렇다면 당시 김품석의 지위로 그의 나이를 가름해보고자 한다. 

삼국사기(직관지)에 보면 ‘505년(지증왕6년) 이사부를 실직주의 군주軍主로 삼았는데, 661년(문무왕1년) 총관摠管으로 바꾸었고, 785년(원성왕1년)에 도독으로 바뀌었다.’ 라는 기록이 있다. 한편 문무왕 이후 이미 도독의 명칭이 있었고, 문무왕 때 9주의 장관 명칭으로 도독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시기가 지나면서 군사적 성격이 배제되고, 단순 행정적 외관外官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642년 김품석이 죽을 당시 그의 관등은 이찬(2등급)이었으며 벼슬은 대야성 도독이었다. 그의 부모에 대한 기록이나 출생 연도는 없지만 그는 진골 집안의 후손임이 분명하다. 그것은 단지 김춘추의 사위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아무리 김춘추의 사위라고는 하지만 이찬의 관등으로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인 대야성의 성주로 나가서 나라를 지키려면 어느 정도의 나이는 들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래서 그 당시 그의 나이를 30~35세로 유추해 본다. 무엇보다 이찬의 김품석이 당시 14세 전후의 부인과 자식(들)을 데리고 있었다는 기록은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고타소는 626년에 태어난 문무왕 김법민의 동생이 아니라 화랑세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김춘추의 첫 정궁부인인 보라의 딸로 출생 연도를 622~623년으로 유추해 본다. 화랑세기의 기록에 의하면 김춘추는 602년에 태어났다. 그는 20세 전후에 보라와 혼인하여 곧 고타소를 낳았고, 625년 문희를 만났을 때 고타소가 태어나 몹시 사랑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한참 재롱을 부리는 나이인  2~3세로 추정된다. 그러니 고타소가 죽은 642년은 그녀의 나이 20세 전후였다고 보여진다. 만일 화랑세기(필사본)에 김춘추의 첫 부인 보라와 그녀가 고타소를 낳았다는 기록이 없다면, 모두 별 생각없이 그냥 고타소가 문희(문명왕후)의 딸이며, 문무왕 김법민의 동생이고, 또한 김품석의 부인으로 자식(들)과 함께 대야성에서 살다가 (12~14세의 나이에) 죽었다고 계속 믿을 것이 아니겠는가?  

당시 대야성에는 성주 김품석 휘하에 많은 화랑도들이 있었다. 특히 김품석이 죽은 뒤에도 남은 병사들을 모아 끝까지 항전한 죽죽과 용석은 임금과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다는 충신의 본보기로 김부식은 삼국사기(권47) 에 해론, 소나, 취도, 눌최, 설계두, 김영윤, 관창, 김흠운, 열기, 비령자, 필부, 계백과 함께 소위 ‘충신열전’ 의 기록을 남겼다. 계백을 제외한 12명은 모두 신라인으로 삼국사기 열전 제7권은 ‘신라 충신열전’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 죽죽과 용석과 같은 용감한 낭도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대야성 성주 김품석은 어째서 한 번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을 했을까?  

317) 보라궁주의 부모는 16세 풍월주 보종과 양명공주이다. 보종의 부모는 7세 풍월주 설원랑과 미실이다. 양명공주의 부모는 제26대 진평왕과 보명궁주이다.  

318) 문무왕 김법민의 출생연도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그는 삼국사기에 의하면 681년에 승하하였다는 기록만 있지 죽을 당시의 나이와 출생년도의 기록은 없다. 그런데 <문무대왕비> 에는 왕이 승하할 당시 56세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추산을 하면 626년생이다. 그리고 김유신과 김춘춘의 ‘재기차기’ 사건과 그날(정월 대보름) 있었던 김춘추와 김문희의 ‘최초의 운우지정’은 625년 정월 대보름으로 추산된다. 화랑세기의 기록에 보면 1년여 지나서 문희가 임신된 걸 (김유신이) 알았다고 나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 – 신라인 그들의 이야기(김대문 저, 이종욱 역주해, 소나무), 화랑세기 – 또 하나의 신라(김태식, 김영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


박선우 (박선우태권도장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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